겨우 3일, 아직 3일

걷기, 아일랜드 위클로웨이 3일 차

by 달여리
Lus Mór~글렌다락유스호스텔(≈16.8km)


역시나 절로 눈이 떠지는 아침. 7시가 되기 조금 전이다. 9시간을 내리 푹 잤다. 뭔가 '기네스'스러운 꿈도 꾼 것 같았다. 널브러뜨린 놓은 짐을 챙기며 스트레칭도 좀 했다. 찌뿌둥한 몸이지만 이왕이면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하려 했다. 하지만 막 들어온 메일 하나에 정신이 그만 혼미해지고 말았다. 내일 묵으려 예약해 둔 글렌멜류어호스텔에서 온 메일이었다. 갑작스러운 사정으로 문을 못 열게 되었다는 일방적인 통보였다. 안 그래도 4일차 종점 인근의 숙소는 모두 풀부킹이라 6.1km를 따로 더 걸어가야 되는 곳임에도 무리해서 잡아둔 것이었다. 이제 그마저도 못 가게 된 거다. 망연자실. 도무지 방법이 없었다.


다른 지역에 일이 생겨 호스텔을 비워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미 한참 전에 예약을 했는데 왜 하루 전에야 연락을 준 건지 따졌다. 잠만 잘 수 있는 공간이라도 마련해 줄 수 없는지, 혹시 근처의 숙소를 잡아줄 수 없는지 등도 하소연해 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반복된 sorry 뿐이었다. 복잡한 심경으로 조식을 먹으며 정보 검색에 서둘렀다. 5km 정도 떨어진 곳에 숙소가 하나 있긴 했는데 너무 비쌌다. 더군다나 망설이는 사이 그 방마저도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거기가 유일하게 아고다와 부킹닷컴으로 검색되는 숙소이자 빈방이었는데 난감했다. 그런 마음으로 길을 시작했다. 계속 이 문제만 붙들고 있을 수는 없어 일단은 길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벌써 9시 반이었다.

<창문 너머 아침의 빛>

어떻게든 되겠지, 와

어쩌면 좋지, 사이에서도


오르막길은 힘들었다. 숙소에서부터 위클로웨이 지점으로 돌아가는 1.8km의 길은 내내 오르막이었다. 처음부터 땀을 뺐다. 딱 30분을 걸어 10시에서야 오늘의 시작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정은 시작도 안 됐다. 벌써부터 힘들어서 큰일이었다. 복잡한 마음마저 그랬다.

<멀리 댄 호수가 보이는 길>

5분만 쉬었다 다시 걸었다. 왼쪽 멀리 댄 호수(Lough Dan)가 보였다. 풍경에 눈길을 주고싶지만 아무래도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다. 숙소 구하느라 틈틈이 지도를 찾아보고 몇 군데 메일도 보내고 그랬다. 안 그래도 심각한데, 심하게 파리가 꼬여 더 심란했다. 마주 오는 노부부는 아예 망이 달린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마주치는 사람마다 모두가 인사하는 이 길에서, 이번에는 “헬로”나 “하우아유”가 아니라 “오! 굿아이템!”이라 인사했다. 양손의 쌍따봉에 웃음으로 화답하신다. 이 길의 필수품이 아닐까 싶었다. 지나치는 사람마다 후광처럼 파리떼를 달고 다녔다. 나도 마찬가지겠지? 쉼없이 손춤을 출 수 밖에 없었다.


어제와 달리 날씨가 좋아 다행이었다. 오르막이 은근 있었다. 원래라면 어제 걸었어야 할 이 길. 부채를 갚듯 그래도 열심히 걸었다. 내리막이 되자 시야가 확 트여 시원했다. 숙소를 찾는데 정신 팔려 길을 잠시 잃기도 했다. 어떻게든 수소문을 해봤지만 여전히 마땅치가 않았다. 어느덧 11시였다. 내려오다 보니 길은 어두운 숲으로 들어선다. 곧 너른 들판으로 다시 나왔다. 비슷비슷한 길이 반복됐다. 숙소 문제에 집중하지 않았다면,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졌을지도 몰랐다. 좀 전에 비해 파리가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귀찮게 굴고 있었다. 얘네들은 아까 걔네들일까 아님 새로운 애들일까.

<이런저런 길을 지나 올드브릿지에 도달>

11시 40분, 올드브릿지에 도달한다. 원래라면 여기가 2일 차의 끝이자 3일 차의 시작점이다. 아직 9km가 남았다. 여기서부터 길게 오르막이 시작됐다. 묵고 싶었으나 방이 없었던 위클로웨이롯지를 지난다. 잠시지만 평평한 마을 길도 나왔다. 드넓은 양떼목장을 끼고 샛길로 오른다. 언제까지 오를까? 한번 해보자는 심정으로 꾸역꾸역 걸었다. 슬슬 밥 먹을 때도 됐겠다, 이 길을 다 오르면 그때를 점심시간으로 하자. 아, 바로 저기다. 저기가 이 오르막의 끝인가 보다.


12시 반. 배낭을 벗고 나무 그루터기에 걸터앉았다. 들판과 마을이 한눈에 펼쳐 보이는 풍경에 밥 먹을 맛이 제대로 났다. 어제 미리 주문해 둔 점심 도시락을 꺼내는데 어라 이거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다. 아뿔싸, 가방이 온통 오일범벅이었다. 도시락이라길래 당연히 샌드위치 종류일 거라 생각했다. 정성스럽게도 메뉴가 파스타라니. 엉망이 됐다. 그래도 파스타는 멀쩡했다. 일단은 식사부터 했다. 함께 챙겨준 사과와 주스는 마저 먹었다. 과자도 있었는데 그건 먹지 않고 챙겨뒀다. 난리난 가방은 지금 당장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오일 범벅이 된 도시락 잔여물을 다시 가방에 넣을 순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손에 들고 가기로 했다. 어디에도 버릴 곳이 마땅찮았다. 물론 물티슈 같은 것도 없었다. 미끌거리는 손은 그냥 흙바닥에 슥슥 문질러 닦았다.

<이런저런 길을 지나 그래도 점심>

1시에 다시 출발했다. 맨발로 쉰 덕에 발의 피로가 약간은 회복이 되어 있었다. 죽은 나무들을 지나 고사리밭을 내려간다. 'Mountain Meitheal'이라 적힌 비박용 브러셔 갭 헛(brusher gap hut)에는 웃통을 벗은 건장한 청년이 야생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방을 못 구하지 못하면 나도 저런 데서 자야 하는 거 아닐까 생각했다. 야영 장비도 없긴 하지만, 아무래도 그럴 자신까진 나지 않았다.

<비박용 브러셔 갭 헛. 비를 가릴 수 있는 오두막 정도다.>

수월하게 내려간 고사리밭이 끝나자 다시 산속이다. 곶자왈 같은 곳을 또 지난다. 숲-도로-다시 숲. 물소리가 들린다. 짙은 갈색의 냇물을 다리로 건넌다. 막판의 오르막인가. 숲에서 나오자마자 시작된 자갈 오르막이 상당히 지루했다. 힘겨워서 더 길게 느껴진 걸지도 모르겠다. 2시 10분. 결국 가방을 다시 한번 바닥에 내팽개쳤다. 어깨가 부서질 것 같았다. 무릎을 짚고 허리를 숙였다. 뚝뚝 떨어지는 땀을 닦고 한숨을 돌렸다. 하아, 하아. 어쩐지 절망적인 숨소리였다. 한 번 힘들다고 생각하고 나면 그만 더 힘들어지고 만다. 괜찮아- 괜찮아. 다독이고 또 다독였다. 하지만 이미 지친 마음을 다스리는 건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걸은 지 겨우 3일째였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오후 두 시가 심리적 상태의 기점이었다. 그 시간이 넘어가면 불안과 피로가 배가 되어 몰려왔다. 이제 내리막만 남았을거란 희망회로를 돌렸다. 아주 잠깐씩 오르막이 있긴 했다. 그래도 이만하면 걸을만은 했다. 지겹디 지겹던 오르막 임도에서 드디어 빠져나간다. 음산해서 오히려 몽환적인 어둠의 산길을 통과했다. 한참을 내렸다. 말그대로 무념무상이었다.


난데없이 숲이 끝나 순간 어리둥절했다. 눈앞에 웬 마을이 떡하니 나타나 있었다. 글렌다락(Glendalough). 오늘의 종점 마을이었다. 절로 환호가 터져 나왔다. 와, 드디어 다 왔다. 하마터면 만세까지 할 뻔했다.

<들판과 숲을 지나 드디어 글렌다락 도착>

호스텔까지는 200미터가량을 더 걸어가야 했다. 유적지 같은 곳엔 사람들이 꽤 많이 모여있었다. 기념품 상점에 푸드트럭까지 있다. 여독을 푼 뒤 다시 나와보기로 하고 숙소로 먼저 향했다. 2시 50분, 체크인을 마쳤다. 계속 들고 온 도시락 쓰레기를 이제야 버릴 수가 있었다. 로비의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세수를 했다. 팔다리를 휙휙 돌려 피로를 얼마간 털어냈다.


내일의 숙소 문제부터 해결을 해야 했다. 별다른 대안이 없지만, 걸으며 생각해 둔 방도가 있긴 했다. 부족한 영어로 리셉션에 도움을 요청했다. 하루 더 연박이 가능한지 그리고 픽업·드랍이 가능한 택시를 예약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내일 길을 다 걸은 뒤 예약한 택시로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가, 그다음 날 같은 택시를 타고 멈췄던 지점으로 갈 수 있다면 그대로 길을 이을 수 있었다. 돈이야 더 들겠지만 대중교통이 없는 이곳에서 이게 거의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하루 종일 고심한 뒤 내린 유일한 결론이었다.


다행히 직원이 가능하단다. 1박 추가 요금을 결제했다. 택시와 관련된 건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본 뒤 이야기를 해 준다고 한다. 어차피 기다려야 했다. 그러지 말고 짐부터 풀기로 했다. 샤워와 빨래를 했다. 오일범벅이 된 가방을 빠는 게 보통일이 아니었다. 데스크로 나가보니 다른 직원이 있었다. 당황스러웠지만, 처음부터 다시 설명했다. 그제야 일사천리로 택시 예약이 완료됐다. 하루 온종일 끙끙댔던 문제가 갑자기 해결되고 나자 허기가 마구 밀려왔다. 허겁지겁 라면으로 배를 채웠다. 온몸에 갑자기 힘이 났다. 덕분에 마을 탐방에 나설 용기가 생긴다. 뻐근한 다리를 이끌었다. 바람막이와 카메라를 챙겨 들고 잠시 동네 마실을 나섰다.

<글렌다락 대성당의 터 유적지>

글렌다락은 초기 아일랜드 기독교인들의 정착지다. 인구의 80% 가까이가 가톨릭 종교를 가진 아일랜드인들에게 글렌달락 대성당(Glendalough Cathedral)의 터와 교회(Glendalough Roundtower, St. Kevin's Church)는 그래서 의미 있는 장소였다. 이 유적지 일대를 ‘모나스틱 시티(Monastic City)’ 즉 ‘수도원의 도시’라 부르고 있었다. 마을이라기엔 보잘것없이 작았지만, 오래된 묘지 같은 이 유적이 유명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었다.


묘한 긴장감과 편안함이 함께 있는 공간이었다. 묘비들 사이사이를 유유히 노니는 사슴들이 신기했다. 친절한 표정의 사람들이 연신 눈인사를 건네줬다. 묘지 사이를 산책하며 하루의 노고를 어떻게든 풀어본다.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서둘러 동네를 둘러보니 슈퍼는 따로 보이지 않았다. 대신 푸드트럭과 호텔 레스토랑이 하나씩 있었다. 이미 라면을 먹었으니 식사는 필요 없었다. 이제 막 마감을 하려는 푸드트럭에도 딱히 살만한 건 없었다.


내일은 걷고 나서 이 숙소 다시 돌아오면 됐다. 덕분에 가벼운 가방 차림으로 걸을 수가 있게 되었다. 이런 걸 전화위복이라 하면 될까. 호스텔 로비의 소파에 아무렇게나 앉아 그저 시간을 흘러 보냈다.


5시가 넘자 비가 제대로 내리기 시작했다.

밤이 일찍 찾아온 느낌이 들었다.



2024.08.26.

걷기, 위클로웨이 3/7

32,083보(21.9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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