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다음 곧 다시
위클로웨이는 끝이 났다. 7일간의 여정은 길고도 짧았다. 겨우 관문 하나를 통과한 기분이었다. 예정된 도보여행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마지막 날 다시 본 영화 <와일드>가 때마침 적절했다. 결은 다르지만 느껴지는 것들이 분명 있었다. 이번 여행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어떤 변화나 전환이 아니라, 그저 제자리 돌아오는 것임을 잘 안다. 돌아가려면 그 ‘제자리’가 무엇이었는지부터 제대로 살펴봐야 할 것이다. 관성과 의식, 거부와 집착, 의무와 잡념 사이에서 정처 없이 방황하길 이제 그만 멈췄으면 한다. 그 과정이 왜 꼭 여행의 형태여야 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 많지만, 사람이란 가장 쉽고 익숙한 길을 선택하는 법. 아직 여정의 1/4도 지나지 않은 이 시점에서 벌써 끝을 운운하기에는 한참이나 이르다. 그 끝에 아무런 발견이 없다 한들 실망하지도 않을 것이다. 시간을 다른 농도로 채운 것만 해도 사실 충분하다.
"일출과 일몰은 매일 있으니까
네가 맘만 먹으면 볼 수 있어.
너도 아름다운 길에 들어설 수 있어."
-영화 <와일드> 중
다 걷고 나니 무릎은 더 나빠졌다. 거의 기다시피 더블린으로 향했다. 주말의 인파를 헤치며 시내를 비척거렸다. 정신없이 바쁜 거리에서 나만 슬로우 모션처럼 움직였다. 기어코 그 먼 한인마트까지 걸어가 라면을 다발로 사뒀다. 갈 곳도 없고 더 이상 갈 힘도 없었다. 일찌감치 공항행 버스를 탔다. 리버풀로 가는 밤비행기는 조금 연착이 됐다. 시골과 도시, 도심과 공항 사이를 이동하며 내내 시체처럼 움직였다.
다음의 도보여행지인 CTC(Coast to Coast)는 영국 북부지방의 허리를 횡단하는 17일간의 트레일이다. 위클로웨이와 CTC 사이의 길목으로 리버풀은 딱 제격인 위치였다. 여기서 3박 4일간 몸을 제대로 추슬러야 했다. 엘튼존과 최백호의 노래를 들으며 리버풀로 간다. 비틀스는 내일을 위해 일부러 아껴뒀다. 공항 이름마저 존레넌인 리버풀에선 또 어떠한 장면들을 마주하게 될까. 과연 무릎이 나아질까. CTC를 걸을 순 있겠지? 걱정과 기대가 동시에 있다. 위안과 다짐이 필요했다.
밤이 되니 꽤 춥다.
랜딩기어 내려가는 소리가 들린다.
반짝이는 도시의 야경이 점점이 다가온다. 리버풀이다. 영국으로 돌아왔다.
여정은 아직 한참 남았다.
하나 다음 곧 다시.
씨유레이터.
회복과 걸음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