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나 하는...
그 뒤로 나는 평소에는 입에도 대지 않던 맥주를 한 잔 마셨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춤을 췄다. 박자도 의미도 없는 움직임이었고 스스로를 미친 여자처럼 느끼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웃음이 나왔지만 즐겁지 않았고 몸은 가벼웠으나 마음은 처연했다. 그의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선명해진 것들이 있었다. 그동안 삐걱거리던 단어들을 어떻게든 수습하려 애썼던 시간들, 말이 어긋날 때마다 대신 설명하고 대신 이해하려 했던 순간들, 그 모든 노력이 한꺼번에 의미를 잃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침묵했고, 슬펐다. 그는 마지막에 쇄기라도 박듯 삼만 원짜리 헤네시를 언더락으로 마셨다. 그것도 네 잔이나 연달아였다. 마지막까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주변에서 힐끔거리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그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의자를 쿵쿵거리며 몇 차례나 넘어질 것처럼 몸을 던졌다. 계산대에서 십구만 원을 결제하고 우리는 서로 눈을 맞추지 않은 채 자리를 훔치듯 정리했다.
계산을 마치고 문을 나섰다. 밤은 아직 남아 있었고, 우리는 그 사실을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택시 불빛이 골목 끝으로 사라진 뒤에도 누구 하나 집으로 가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다음 장소를 찾으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밤의 방향만 조금 바꾸어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