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승 Aug 09. 2024

매일매일 일기를 쓰는 즐거움.


    일기 쓰는 재미를 모른 채 20년 넘게 살았다. 초등학교 시절 방학숙제로 일기를 써야 했다. 나는 방학 내내 게임하면서 놀다가 개학 전날, 방학 동안의 기억들을 억지로 끄집어내면서 일기를 썼던 게 생각난다. 일기에 대한 기억은 그게 전부다. 학창 시절 이후로 일기와는 접점이 없었고 쓸 생각도 쓸 이유를 못 느꼈다.  그렇게 난 일기와 친해질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일기를 쓰기 시작한 건 2019년부터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일기를 쓰기 시작한 이유는 정확히 기억난다. 직장에서는 늘 하던 업무만 했다. 직장 생활이 처음에는 익숙했지만 매일 반복되다 보니 의욕이 나지 않았다. 항상 퇴근시간만 바라보고 살았다. 출퇴근 왕복 2시간 넘게 걸렸고 버스에는 사람들이 항상 가득 차 있었다. 평일의 저녁은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났다. 한 주가 그렇게 계속 삶에서 소모되고 있었다. 이런 쳇바퀴 같은 하루 속에서 일종의 삶의 염증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디선가 들었던 문장이 생각났다. 그건 자기 계발 책일 수도 있고 인터넷에 떠도는 글, 성공과 행복을 말하는 유튜브 영상일 수도 있다. 그 문장은 이렇다.


하루하루가 똑같다고 느낀다면 일기를 써라, 하루하루는 절대 똑같지 않다.
 


    그때부터 나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내 일상이 똑같지 않다는 걸 스스로 확인하고 싶었고 내 삶의 이유를 찾고 싶었다. 일기 쓰는 게 어색했던 나는 오늘 하루 일과와 작은 분노를 적었다. 누구도 볼 수 없는 나만의 글이어서 마음에 들었다. 점차 일기를 쓰는 게 익숙해지자 일기에는 다양한 내 생각들로 채워졌다. 분노가 되기도 하고 반성, 다짐, 슬픔, 기쁨, 희망이 되기도 했다. 마치 인사이드 아웃에 나오는 감정들처럼 내 일기장에 다양한 감정들이 녹아들었다. 처음에는 200자도 안되던 일기가 이제는 1000자 그 이상도 쓸 수 있게 됐다. 문장의 길이만큼이나 내 생각과 감정을 글로 표현할 수 있게 됐다. 말 그대로 일기를 쓰면서 나를 그리고 내 하루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처럼 쓰는 만큼 보였다. 세상에 대해 내 주변에 대해 사람에 대해 나에 대해 말이다. 그것이 재밌어서 지금까지 계속 쓰고 있다. 일기를 쓰면서 사색에 빠진 건지 원래 그런 사람이 일기를 쓰고 나서 빠져든 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쓰기 잘했다고 생각한다.


   일기의 장점은 또 있다. 우린 타인과 대화를 통해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는다. 대화에 주고받는 말의 본질은 내 생각을 얼마만큼 문장으로 꺼낼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감정과 생각을 문장으로 치환하는 방법을 연습하다 보면 나만의 문장을 만들 수 있게 된다. 그건 일기를 통해 누구나 손쉽게 배울 수 있다. 하지만 능숙해지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일기는 대상이 없다. 그래서 퇴고를 하지 않는다. 그런 건 대상이 있는 글을 써야 능숙해진다. 그러니 일기든 글이든 쓸 수 있다면 앞으로 많이 쓸 생각이다.



 내가 일기에 쓰는 내용

반성

오늘 하루 인상 깊은 순간

다짐

배움

사색, 사유


   


    일기를 5년 넘게 쓰고 있는 지금도 나에 대해 새롭게 느끼고 있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태도가 계속해서 변화하기도 하고 나만의 규칙과 지혜를 새롭게 터득하기도 한다. 매일 밤, 노트북 앞에 앉아 일기장을 열고 오늘 날짜를 적을 때면 머리가 비상해진다. 나는 여전히 일기를 쓰는 게 즐겁다.



이전 03화 멍 때릴 수 있는 관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