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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순 Nov 03. 2024

머릿속에 블랙홀이 찾아온 순간.

            


    글 쓰겠다고 노트북 앞에 앉았는데 뭘 써도 중구난방이길래 지웠다 썼다 반복하다가 머리가 너무 아파서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밖에서 신은 양말을 아직 벗지 않아서 발을 침대 바깥으로 빼꼼 내밀었다. "잠깐 누워서 10분만 쉬고 글을 다시 쓰자" 누워서 쉬고 나면 다시 생각이 떠오를 거라는 망상에 빠진 채 10분 알람을 맞추고 눈을 감았다. 아른거리는 희미한 전등 불빛이 거슬려서 이불을 얼굴까지 뒤집어썼다. 적당한 어둠 상태가 되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대로 잡생각은 던져버리고 조용히 호흡에만 집중하다 보니 잠들고 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밤 10시, 2시간 좀 넘게 잠들었다. “이따가 다시 잠자야 하는데 잠 안 오면 어떡하지?”라고 비몽사몽 상태에서 생각했다. 지금 분위기를 이어서 그대로 내일 아침까지 잠자는 게 좋겠지만 이렇게 그냥 잠들기엔 하루가 아깝다. 그리고 씻지도 않았다. 아까 쓰려다 못 쓴 글을 다시 쓰기 위해 몸을 일으켜 노트북 앞에 앉았다. 역시나 글은 다시 써지지 않았다. 글 쓰는 방법을 잃어버린 기분, 무언가를 잘할 수 있는 상태에서 갑자기 완전히 상실 돼버린 감각은 스스로를 나약하고 초라하게 만들어 버린다.


결국 글을 쓰는 건 포기하고 그림을 그렸다. 그림이 맘에 들어서 좀 더 그러다 보니 시간은 12시 반이었다. 아까 쪽잠을 잤기 때문에 늦게 자도 괜찮을 거라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었지만 내일 컨디션을 위해 씻고 이불속에 누웠다. 그리고 작은 화면으로 오늘 일기를 쓰고 다시 눈을 감았다.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면서 잠을 청해 보지만 전혀 잠이 오지 않았다. "자야 되는데 잠이 안 오네 하지만 잠을 강요해선 안돼 그건 어리석은 거야 마음을 비우고 자연스럽게 잠들어야 해 자야 된다는 압박감에서 멀어지도록 말이야 잠은 편안한 상태에서 찾아오는 거야 불안한 상태에서 잠이 찾아오겠어? "라는 생각이 뫼비우스 띠처럼 머릿속에서 빙빙 돌고 돌았다.


    비장의 무기를 쓰기로 했다. 잠자기 전에 독서를 하면 쉽게 잠들 수 있다. 하지만 아까 저녁 먹으면서 본 영화가 아른거리길래 책 대신 영화를 봤다. 제목은 ”카페 소사이어티“ 뉴욕 촌놈 주인공이 할리우드에 상경해서 한 여자랑 사랑에 빠지고 헤어지고 각자 다른 사람과 결혼 후에 다시 만나지만 둘만의 사랑의 도피가 아니라 현실을 선택하는 대략 그런 내용이다. (엔딩의 여운과 뉴욕재즈 ost가 참 좋으니 한번 보시길 바란다.) 아무튼 영화를 보다가 잠들어야 하는 게 내 계획인데 영화를 끝까지 다 봐버렸다. 다시 시계를 확인하니 시간은 1시 40분, 머릿속은 몇 시간을 잘 수 있을까 계산하기 시작한다. 6시 50분에 일어나니깐 대략 5시간 정도 잘 수 있다. 이 정도면 괜찮다. 강력한 수면제 책이 아직 남았기 때문이다. 잠자리에 걸맞은 책으로 요즘 읽고 있는 건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 이북으로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 새는 날아가면 아주 몇 초의 수면으로 정신상태를 유지한다거나 무슨 동물이었나 뭘 해야 할 때는 잠을 자지 않아도 멀쩡하다는 내용과 태아는 개월수가 늘어날수록 수면시간 줄지만 렘수면시간이 늘어난다는 내용까지 뭐 이런저런 잠에 관한 지식들을 머릿속에 넣다 보면 평소처럼 스르륵 기절해야 하는 게 정상인데 이상하게도 기절하지 않았다. 눈꺼풀은 점점 무거워서 시아가 흐릿해져 가는데 정신이 너무나도 멀쩡했다.


    무거운 눈꺼풀에 짓눌러 잘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눈을 감고 있었는데 이 상태가 조금 더 유지되면 잘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하지만 자세를 이리저리 바꾸고 잠을 청하지만 꿈나라에서는 나를 데리러 오지 않았다. 슬슬 머릿속이 불안했다. "과연 내가 오늘 잠잘 수 있는 걸까? 이러다가 늦잠 자면 어떡하지? 낮잠을 자는 게 아니었어.." 인간의 상상은 쓸데없는 불안과 초조함을 현실에 만들어내기도 한다. 지금이 딱 그런 경우다. 아까 책을 덮은 이유로 휴대폰을 열지 않았다. 잠을 뒤척거릴 때는 지금 몇 시인지 모르는 게 낫다. 몇 시인지 알게 되면 몇 시간을 잘 수 있을지 계산하기 때문이다. 정확하지 않지만 대략 30분 정도 뒤척인 거 같다. 그런데 갑자기 뇌 뒤에 스위치가 꺼진듯한 기분이 느껴졌다. 어둠이 내 눈까지 안개처럼 스산하게 밀려오고 있었다. 마치 블랙홀이라도 나타난 듯 나의 영혼이 머리 뒤편 어딘가에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이 느낌을 쭉 유지하고 있으면 잠들 수 있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영혼이 먼지가 되어 청소기에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묘한 감각을 기분 좋게 느끼고 있었는데 빨려 들어가면서 무슨 생각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머리에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정신이 너무 멀쩡한 게 문제였다. 치과에서 치료를 받는 도중에 혓바닥 움직이지 마세요라고 하면 내 혓바닥이 원래 어떻게 있었지라고 자각하게 되는 것처럼 어떤 마음가짐으로 있어야 되는지 모르게 된 것이다. 그래서 꿈나라로 빨려 들어가다가 튕겨져 나왔다. 마치 대량의 얇은 면발을 양쪽으로 잡아당기면 끈끈하면서도 부드럽게 서서히 떨어져 나가는 기분을 느꼈는데 솔직히 불쾌했다. 몇 분 뒤, 블랙홀은 내게 한번 더 찾아왔는데 아까와 똑같이 튕겨져 나왔다. 내 인생 30년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그 감정을 2번을 마주하고 나서야 내가 잠을 자는 법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는 잠이 내게 오라고 빌었던 마음에서 과연 잠이 찾아와도 내가 잠들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으로 변했다. 도대체 이 새벽에 침대에서 혼자 무슨 생쇼인지 모르겠다.


    어찌저찌 잠이 들긴 했는데 다음날 다시 생각해 보니 꿈나라에 들어가지 못한 2번의 경험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새롭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고 묘하고 불쾌한 기분, 잠을 잘 수 없다는 게 얼마나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건지 그날 새벽에 전부 다 느낀 거 같다. 하루에 1/3을 잠으로 생활하는 인간에게 1/3의 생활이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건 정말 슬픈 일이다. 내가 불면증 환자는 아니지만 그 사람들의 고통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이 감정을 또다시 느끼고 싶지 않다. 다시는 어설픈 낮잠을 자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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