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족이랑 사이가 좋다. 우리 아빠는 고등학교 진학 이후 지금까지 쭉 떨어져 지내고 있지만 매일 전화해 서로의 안부를 묻고 가벼운 일상을 나눌 만큼 친하다. 보통 부자간의 격식이라는 게 우리한테 조금 먼 이야기 같다. 나한테 아빠는 뭐랄까 아빠, 친구, 챙겨야 할 사람 그 어딘가 모호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우리 누나들은 대략 13년 동안 나랑 동고동락하면서 지냈다. 나랑 1살 차이 나는 작은누나는 성격이 쿨하고 관심사가 비슷해서 친구처럼 지냈고 7살 차이 나는 큰누나는 엄마 같은 성격으로 나를 잘 챙겨주고 감수성도 비슷했다. 우리 삼 남매는 함께 노래방도 가고 쇼핑도 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잘 놀았다. 이제는 각자 떨어져 살지만 서로 자주 연락하면서 친하게 지내고 있다.
부끄럽지만 나는 가족이랑 가끔(어쩌면 자주) 티격태격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내 말투와 행동이 문제였던 적이 종종 있었는데 놀랍게도 이런 문제는 다른 사람이랑 겪어본 적이 없었고 오직 가족한테만 발생했다. 그 당시 나는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사회, 회사, 친구. 가족, 애인 등 관계에 따라 제각기 다른 모습과 행동을 취하는 것처럼 그중에서 평생을 가깝게 지내온 가족에게 내 이면의 모습을 보이는 건 지극히 자연스럽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밖에서 이런 행동으로 문제없는 내가 가족한테서만 보인다면 그 원인은 나에게 있는 게 아닐까라는 고민을 깊게 하다 보니 마침내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가족한테 선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지켜할 선이 있다. 그 선은 매우 이성적인 태도를 뜻한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을 만났을 때 그 선을 지키면서 관계를 맺는다. 상대방이랑 점점 가까워질수록 그 선은 흐릿해진다. 그 선을 항상 의식하는 사람이 있는 가 하면 자주 잊어버리는 사람도 있다. 나는 후자에 속했다. 특히 내 말과 행동에서 자주 드러났다. 가족에게 무언가 내키지 않거나 불만족스럽고 짜증 날 때 말을 툭툭 던지고 쏘아대는 화법을 사용했는데 그럴 때마다 트러블이 발생했다. 내가 가족한테 선을 지켰으면 결코 나오지 않았을 행동이다. 내가 달라지면 된다는 사실을 깨닫자 가족한테 선을 꼭 지키기로 다짐했다.
이젠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처럼 가족이랑 대화할 때도 최대한 이해하고 경청하려고 하고 내 감정이 우발적으로 나를 휘감지 않도록 상냥하게 컨트롤하고 있다. 그리고 말도 조금 덜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상대방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대부분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말이라는 걸 깨달았다.) 평소 가족한테 굳이 안 해도 되는 말을 많이 하는 나에게 꼭 필요했다. 필요 이상의 말을 줄이는 건 가족 간의 관계에서 효과가 크다. 말 한마디를 신중하게 꺼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작은 노력이 한 번에 확 달라질 수 없겠지만 이런 사실을 꾸준히 의식하는 것만으로 예전과 다르게 확실히 트러블이 줄다. 선을 지키자라는 말이 단순해도 관계에 가장 기초가 되는 뼈대다. 그게 가족이든 친구든 애인이든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을 넘지 않게 더 신경 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