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안경을 끼고 물속을 들여다본다. 햇빛을 담은 물결이 해저에 그대로 비쳐 아름답게 반짝인다. 물결이 조용히 흘러가는 자태와 해초, 이끼가 가득한 돌들을 보다 보면 바닷속 세계를 찬미하게 된다. 나도 저 아름다움 속에 동화되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 찰 만큼 말이다.
문득 인어공주 동화가 왜 지금까지 사랑받는지. 바다와 관련된 이야기는 대부분 아름답고 신비로운지. 그것은 인간이 정복하지 못한 바다에는 많은 상상력과 기대 그리고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고개를 해수면 아래로 들이민 채로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움직였다. 이따금 몇 마리의 물고기를 발견하고 조용히 염탐했다. 그들은 마치 인간과 거리를 유지하는 비둘기처럼 물속에서 각자의 생활을 보내고 있다. 허리굽은 불편한 자세의 통증 따윈 잊은 채 그들을 계속 바라봤다. 보호색을 지닌 물고기가 해초를 먹거나 바닥에 몸을 기대고 있었고, 흰검줄무늬 물고기 가족은 수심 한가운데 평온하게 떠있었다. 자갈색 물고기는 이리저리 분주하게 제 갈길을 가는지 저 멀리 사라졌다.
자신보다 몇백 배 이상 큰 거대한 생명체가 그들을 내려다보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또 그들에게 우리가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질까. 몇 분이 흘렀을까.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고 하지만 결코 그들의 삶을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만 같다. 물고기와 인간, 근원적으로 다른 두 개의 종이 서로 이해한다는 건 가당키나 할까. 이 생각이 인간중심주의적 사고방식이라는 걸 깨닫자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들을 보기 위해 물안경을 착용해야 했고, 긴 시간을 볼 수 있게 입에 호흡기를 물고 산소를 들이마셔야 했다. 또한 깊은 바다에 떠있을 수 있도록 튜브를 몸에 지녀야 했다. 바다와 육지의 생명체는 결코 동화될 수 없는 것처럼 물안경에는 습기가 가득 차올라 시아를 뿌옇게 만들었다. 이런 번거로움을 견뎌낼 만큼 가치가 있는 시간이었다.
바닷가를 빠져나와 경사진 자갈 위에 펼친 돗자리에 누웠다. 파라솔이 만들어낸 그늘 속으로 몸을 욱여넣기 위해 다리를 오므렸다. 젖은 옷에서 흘러나오는 바닷물이 돗자리의 굴곡을 따라 아래로 흐르는 게 보였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하늘이었고 광활하게 펼쳐진 동해바다는 편안했다. 육지와 바다 경계에서 어린이와 어른들이 제각기 놀고 있는 모습과 반대로 쓸데없는 사색에 빠진 사람은 나밖에 없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