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저녁식사는 언제나.

by 고순

내 저녁식사 대부분은 닭다리살, 파프리카, 연두부, 계란프라이라고 볼 수 있다. 내가 저녁식사를 똑같은 음식으로 영위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식욕, 말 그대로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욕망" 나는 그게 별로 없는 편이다. 마르고 볼품없는 몸이 되기 싫어 체중을 유지해야 하는 것. 건강한 몸으로 살기 위한 양분을 얻는 것. 내게 먹는다는 건 살아가기 위한 수단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우스갯소리로 음식캡슐이 상용화되면 잘 먹을 자신이 있다고 말하거나, 음식에 쏟아붓는 시간과 돈을 다른 곳에 쓰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걸 보면 근본적으로 나와 식욕은 그리 가까운 사이는 아닌 듯하다.


그렇다고 내가 먹는 것을 안 좋아하는 건 아니다. 기질이 그렇다는 뜻이다. 나도 보통의 사람처럼 맛있는 음식을 좋아한다. 내 돈 주고 밖에서 사 먹을 때는 오히려 괜찮은 음식을 먹기 위해 깐깐하게 따지는 면도 있다. 음식에 대한 역치가 낮을 뿐이지 고점을 못 느끼는 것은 아니기에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기분이 좋아 감탄사가 절로 나오곤 한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함께일 때 이야기에 가깝고, 혼자서 먹을 때는 식(食)에 큰 의의를 두지 않는다. 자취를 시작하고 나니, 같이 밥 먹을 사람도 없어졌다. 요리하기는 귀찮고, 밥은 먹어야 하는데, 끼니를 대충 때우자니 살 빠질 거 같아서 싫고, 배달을 시켜 먹기엔 돈이 아깝고, 건강하게 먹고 싶고... 그런 생각으로 이리저리 평일 저녁밥을 먹어 온 것이 지금처럼 자리 잡게 되었다. 집 냉장고는 내 덕분에 다이어트 중이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김치조차도 보기 힘들 정도로 텅텅 비어있기 때문이다.


내가 닭가슴살을 먹게 된 건 헬스를 시작하고나서부터였다. 그때부터 밥반찬으로 먹기 시작했다. 먹다 보니 질린 닭가슴살은 언제부턴가 닭다리살로 바뀌었다. 닭다리살은 닭가슴살보다 껍질이 있어서 덜 뻑뻑하고 식감이 쫀쫀해서 괜찮아서 지금까지 먹을 수 있었다. 이렇게 매일 닭고기를 들인 내 입은 저녁식탁에 고기의 식감이 없으면 심심함을 느끼고, 식사에 단백질이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걸 보면 그전에 내가 어떻게 먹고살았는지 모를 정도다.


밥, 계란프라이, 닭고기만 먹다 보니 식단이 건강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채소가 필요했다. 가공식품이 아닌 자연의 것을 먹어야 할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혼자 고민하던 순간, 친구가 파프리카를 먹는 걸보고 나도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따라먹기 시작했다. 파프리카의 아삭한 식감, 간편한 조리, 건강함까지 아주 마음에 든다.


파프리카를 먹는 방법은 간단하다. 흐르는 물에 파프리카를 가볍게 씻어낸 다음 칼로 4~5 등분한다. 내부에 씨앗을 툭툭 털어내고 길게 붙은 하얀색 태좌를 칼로 제거해 준다. 그다음 아삭아삭 씹어먹는다. (끼니때 파프리카 하나를 다 먹는다.) 그게 전부다. 파프리카의 가격은 1000~2500원으로 오락가락하는데, 널뛰는 가격 덕분에 누군가 내게 파프리카의 가격을 물어볼 때면 싯가라고 대답한다. 그만큼 먹을 때는 잘 먹고 비쌀 때는 잘 못 먹는 녀석이다.


동고동락한 지 반년채 되지 않는 연두부는 어느 날 갑자기 나랑 눈이 맞았다. 회사 점심으로 나온 연두부를 맛있게 먹다가 갑자기 눈이 맞은 것이다. "두부는 건강식품이잖아. 단백질도 들어있고, 식감도 괜찮고, 한번 집에서 먹어볼까." 그 뒤로 자연스럽게 함께하고 있다. 아삭한 파프리카, 쫄깃한 닭다리살, 뜨끈한 흰쌀밥에서 못 느껴지는 연두부의 부드럽고 시원한 식감은 목구멍으로 꿀떡꿀떡 넘어간다.


계란프라이와의 관계는 예전만큼 돈독하지 않다. 평소에 가스레인지 기름때 청소를 신경 안 쓰고 살았는데 기름때 청소의 중요성을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그래서 계란프라이를 하고 나면 물티슈로 가스레인지를 닦고, 뒤집개와 프라이팬을 설거지를 해야 했다. 그게 조금 귀찮았다. 연두부도 단백질이기에 계란이랑 포지션이 겹치기도 하고, 계란프라이까지 한꺼번에 다 먹기에는 너무 부잡스럽고 부담스럽다. 그래서 연두부와 계란프라이가 서로 교대근무를 하고 있다.


최적의 길로 빠져나가는 미로 찾기처럼 내 저녁밥은 여기서 더 만족할 것도 더 나쁠 것도 없이 마음에 든다. 이제 보니 이렇게 다른 식감으로 이뤄진 반찬 녀석들이 나름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몇 년 동안 자부심 부리던 계란프라이를 기름청소와 연두부 때문에 거리 두는 걸 보면, 사실 식욕이 없는 게 아니라 귀찮은 사람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그걸 인정해 버리면 너무 게으른 사람 같으니 이쯤에서 넘어가야겠다.





keyword
월, 목 연재
이전 08화지혜를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