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서 사 온 찰보리빵을 먹는다. 삼삼하면서도 부담 없는 맛 때문에 계속 입에 들어간다. 그런데 이 찰보리빵 인터넷에서도 구매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명물 먹거리는 그 지역에서만 살 수 있는 것이 더욱 매력적일 텐데. 희소성이 사라진 찰보리빵한테서 작은 아쉬움을 느꼈다.
이제 보니 희소성, 나는 그것에 대해 꽤 의식하는 편이다. 경주 황리단길을 걷다가 가차샵에 들어가 신호등 장난감을 뽑았었다. 갖고 싶은 보행 신호등 장난감이 나와서 기분이 좋아 하루 종일 만지작 거리곤 했다. 나중에서야 신호등 가챠를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해외배송으로만 살 수 있거나 가격이 더 비쌌다. 국내에서 쉽게 못 구한다는 사실에 뿌듯했다.
그런데 인터넷이 더 저렴하다고 해서 과연 내가 샀을까. 아니, 사지 않았을 것이다. 그건 소유욕만 담겨있지 추억이 담겨있지 않다. 내가 직접 매장에서 가챠를 뽑은 물건에는 그날의 추억까지 함께 담고 있는 것이다. 나는 황리단길에서 신호등 장난감만 산 게 아니라 추억까지 함께 산 셈이다. 폭염에 우산을 쓰고 걷던 길도, 예술작품이 잔뜩 걸려있던 카페에 푹신한 소파도, 쫀드기를 손과 입술에 묻히고 먹던 것도. 독립서점에 들러 가볍게 책을 읽었던 것까지 말이다.
인간은 연관성 없이는 기억을 쉽게 끄집어내지 않는다. 그래서 물건은 추억을 끄집어낼 수 있는 직관적인 매개체다. 그런 것을 잘 알기에 나는 기념품 사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꼭 하나만 사려고 한다. 단 하나의 물건이 된다는 무게감은, 그것만으로도 희소성을 띠어 오히려 더 큰 애착을 불러일으켜 소중히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산 몇 개의 물건들은 실용적인 면은 하나도 없지만 저마다 추억하나쯤은 다 담고 있다. 특히 기념품으로 냉장고자석을 사곤 하는데 냉장고에 붙여있는 자석들을 볼 때마다 그때의 추억이 떠올라서 뿌듯하다.
사람의 경험은 다 자신만의 희소성을 띄고 있는 것 같다. 찰보리빵한테 느낀 작은 아쉬움이 아무것도 아니게 됐다. 찰보리빵을 사기 위해 보문호를 쭉 돌아다닌 것도. 고풍스러운 담벼락과 배롱나무를 감상한 것도. 대구로 가던 길 차 안에서 찰보리빵을 나눠먹은 것까지 다 떠올랐다. 비록 찰보리빵은 뱃속으로 사라졌지만 그날의 추억은 평생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