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바람이 불었을까. 거실 등이 아니라 베란다 등을 켠 채 일기를 쓰기 위해 노트북 앞에 앉았다. 베란다와 마주 보고 놓인 책상에서 바라본 베란다 등의 불빛은 거실등과 전혀 다른 분위기를 만들었다. 거실등만 켰을 때는 방이 환한 공간이기만 했는데 베란다 등만 켜놓으니 밤의 분위기를 잔뜩 머금고 있었다. 그 분위기가 좋아 방안으로 은은하게 쏟아지는 빛과 빛의 대비를 차분하게 느꼈다. 몹시 편안했다.
오늘 베란다 등에 새삼스러운 감정을 느낀 이유가 있다. 나는 평소에 이 등을 밤에 TV로 영화를 볼 때, 눈이 피로하지 않기 위한 것 말고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TV를 잘 보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의 분위기가 내게 생소하게 느껴지면서도 새로웠다.
생각해 보니, 커튼을 활짝 걷은 것도 한몫했다. 가로가 3m 정도 되는 큰 베란다 통유리 문에 있는 커튼을 대략 30% 정도 가린 채로 생활했었다. 창밖에 보이는 건너편 아파트 복도에서 내 방이 보이는 게 싫었고, 동향으로 된 베란다 창문에서 들어오는 햇빛이 오전에 잔뜩 쏟아지는 것도 싫어서 이 각도를 유지했다.
그런데 그것도 베란다 전등처럼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갑자기 다 걷어버렸다. 잠잘 때는 책상 뒤에 놓인 침대에 태양이 완전히 닿지 않게 커튼을 절반만 치고, 아침에 일어나면 활짝 걷는다. 그렇게 지낸 지가 일주일 채 되지 않았는데 베란다 등까지 이렇게 분위기를 만들어주니깐 아주 좋았던 것이다.
늘 유지한 커튼의 각도가 마음에 들어 커튼에 대한 지론을 글로 써놓기까지 했는데 이렇게 또 생활방식이 달라진 것에 대해 스스로에게 놀랬다. 그때는 그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들이 지금은 다르게 보이는 것이. 뭐랄까. 참 사람 마음은 갈대구나. 내가 아는 것이 전부는 아니구나. 지금 이렇게 표현한 내 생각이 나중에는 또 바뀌면 어떡하지. 아 그래서 사람은 겸손해야 한다고 하는구나.
갑자기 내 입과 몸이 조심스러워졌다. 훗날 이 글도 나중에 어떻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는 이렇게 지내는 것이 좋다. 시간이 흐르면서 변해가는 감정이 당혹스럽기도, 새롭기도, 신기하기도, 좋기도 한 것이 사람의 감정은 참으로 오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