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책을 읽게 된 경위는?
이 책은 오래전부터 읽어야지 읽어야지 했는데 정말 거짓말 안 하고 2시간 투자하고 읽었다. 정말 재미있게 읽었고 평소 나는 사물에 대한 근원이 궁금한 사람인데 아주 잘 설명이 되어 있어서 좋았다.
가끔 아니 자주 그런 경험이 있지 않나, 이 물건의 시작은 어디일까? 시초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늘 근원에 집중하려고 하는데 취지에 맞는 책이었다.
너무 쉽게 읽히는 책이라 미웠다.
Q. 사물에 대한 관심이 많은가?
아무래도 글을 쓰고 글을 읽는 사람이니 관심이 많고 자세히 보려고 노력한다. 음식점에 가서 컵을 보더라도 손때가 묻은 노포에 가면 감성이 다르지 않은가, 그래서 노력을 하려고 하는데 사실 먹고사는 문제에라는 이유로 놓치는 것들이 있기에 반성하는 부분도 있다.
Q. 사물에 관찰에 중요한 포인트는?
매우 주관적이지만 WHY이다. 필요성이 있으니 그 시초가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그게 어느 나라가 먼저다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왜 필요했을까를 생각하면 배경에는 역사가 있고 더 넓은 관점을 가질 수 있어서 좋다.
자 그럼 시작하겠다.
이 책은 정말 물건 하나하나에 대해서 그 근원에 대한 설명을 한다. 그리고 배경에 대한 역사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준다. 물론 그 근원이 여러 가지 의견이 있는 경우는 참고란을 두고서 의견을 제시한다.
매우 많은 내용을 담고 있어서 몇 가지 추려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1. 피임약
인류가 임신을 배제하려고 하는 노력은 기원전 4천 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BC4 천 연경 이집트인들은 석류 씨를 피임약으로 사용했다. 지금의 상식으로 보면 가능할까 싶지만 충부한 효과가 있었을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석류 씨에는 여성 호르몬의 하나인 에스트로겐이 들어 있다. 한마디로 석류 씨가 배란을 억제한다는 뜻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집트인들이 임신이 배제된 행동을 강한 집착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BC1550년대의 기록을 보면 다른 것이 전혀 섞이지 않은 면 즉 순면을 아카시아 액을 적셔 원통형으로 만들어 현재의 탐폰으로 만들어 사용을 했다. 이러한 관심은 비단 이집트인들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에 기로 된 수많은 지성인들도 관심을 보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페퍼민트 종류의 식물로 피임을 주장하였음여 의학의 아버지인 히포클라테스는 야생홍당무 씨가 임신을 방지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었다. 이러한 연구 결과 지난 세기 인류 역사를 뒤바꾼 발명품 121가지를 선택할 때 피임약은 당당히 이름을 올렸고 20세기 최고의 발명품 1위를 했다.
고대 이후 1929년 대공황 이후 경제의 나락에 여성은 큰 부담을 가져야 했고 결국은 하버란트는 실험을 했다. 월경의 존재와 발생이 대로와 난소가 공동으로 생산하는 성 호르몬에 의해 통제된다는 것을 증명하게 된다.
생물 또한 비엔나 산부인과 의사 펠너 역시 연구를 통해 연구를 했지만 히틀러의 세력권에 들어가면서 행방이 알 수 없게 되고 히틀러는 게르만족의 우수성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다산이 필수라고 설파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더 이상 피임에 대한 연구는 이뤄질 수 없었다. 이후 1933년 셰링사에서의 최초의 생물학적 황체 호르몬인 프로게스테론을 출시하면서 현대 호르몬을 치료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그리고 1950년 그레고리 핀커스를 만나 연구를 시작하였고 돼지를 통해 임상실험을 하게 된다.
처음의 피임약은 1960년 미국의 제약회사 지얼 최초의 피임약은 에노비드를 출시하고 출시 2년 만에 120만 명의 여성이 복용했으며 5년 후 집계는 500만 명 14년 동안 약 1천만 명의 여성들이 복용했다는 통계가 있다. 처음에는 남자들이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기혼녀가 아닌 미혼 여성들에게도 판매를 해야 하는가에 대호나 논쟁이 불붙는 순간 남성들도 관심을 가졌고 결국은 피임약이 여성의 순결을 위협할 수 이 싸는 주장 때문에 이때만 하더라도 미혼 여성에게는 피임약을 팔지 않았다. 그러다 1968년 6월에는 히피 반전운동이 퍼지면서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권력이 생기면서 피임약은 더 이상 권력에 묻히지 않으면서 널리 사용하게 되었다.
2. 하이힐
하이힐은 단순히 굽이 높은 것이 아니다. 이야기를 하려면 고대 그리스 시절까지 가야 한다. 고대 그리스 아버지 아이스킬로스가 무대 위의 배우들에게 돋보이게 하려고 코르토르노스 라는 통굽 구두를 신겼다. 이후 등자가 개발되면서 통굽 구두는 남자들의 애용품이 된다. 현대 하이힐의 시초는 16세기 베네치아 여인들의 거리의 오물을 피해 다니기 위해 신었다는 굽의 초핀이 시작이다. 초핀으로 시작된 하이필을 오늘날의 형태로 완성시킨 것은 로코코 시대의 절대왕정 루이 14세와 루이 15세의 애첩 풍파두르 부인의 영향이다. 루이 14세는 자신의 다리에 빠진 나르시시트였고 구두를 위해 수천 켤레를 구입했다. 절대왕정 이후 노출의 차이를 위해 굽은 높아졌고 결국 하이힐은 남자들의 전유물이 된다. 그리고 루이 15세의 애첩 풍파두르부인은 문화예술의 후원자였고 패션리더였다. 자신만의 굽 높은 구두를 만들고 베르사유 궁전 안의 귀족들을 압도했으며 이후 굽을 루이힐이라고 불렀고 이것이 하이힐의 원조가 된다.
3. 칫솔과 치약
불교의 법전에 보면 석가모니가 이쑤시개를 쓰고는 땅에 던졌는데 그것이 곧바로 뿌리를 내리고 나무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즉 인도에서 이를 닦기 위해 이쑤시개를 사용했다는 유추가 가능하다. 버드나무 가지를 잘 잘라서 이를 쑤시는 것을 버드나무 가지를 말하는 양지를 따 양지질이라고 불렀다. 이후 양지질은 시대를 거쳐 양치질이라는 이름으로 굳어진다. 어원이 아닌 실제 양치질의 기원은 기원전 5000년까지 가야 한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황소의 발굽, 구워서 부순 달걀 껍데기, 화산재 등을 조합해 치약을 만들었다고 한다. 최초의 양치법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치아미백인데 고대 사람들은 치아미백을 위해 소변을 사용했다. 포르투갈이 니들이 오줌이 미백에 뛰어나다는 주장이 되었고 상류층 로마여인들은 포르투갈 소변을 비싼 값을 주고 구입을 했다고 한다. 오줌에 있는 암모니아 성분이 있어서 실제로 효능이 있다고 한다.
미국 치과 협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칫솔은 1498년 중국 황제가 사용한 칫솔이다. 동물 뼈에 돼지털을 박아서 도구는 현대적인 칫솔과는 다르지만 모양과 구조는 일치한다. 1789년에 영국의 월리엄 애디스가 야생 곰이나 말의 털을 이용한 칫솔을 만들어 냈고 후손이 19세기에 대량 생산을 했다. 치약도 18세기에 이르러 대량 생산을 했고 그 당시에는 가루로 제작된 치약이 눅눅하고 보관이 힘들던 것을 편리하게 대량으로 판매하게 된다. 튜브에 치약을 넣는 방식은 1892년 미국의 워싱턴 셰필드 박사에 의해서 만들어졌으며 점점 가격도 낮아져 지금처럼 대중성을 띄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1889년 일본 라이온 사이 분말 타입 치약인 치분치약을 처음 사용헀고 1954년 튜브치약을 사용하였다.
4. 포크
포크라는 말의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단어가 그렇듯 라틴어에서 나온다. 갈퀴라는 뜻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포크의 여사는 400년이 안된다. 물론 식기로서 사용된 경우는 있다. 이집트 그리스 로마 시대 에는 예외였다. 포크는 10세기가 될 때까지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기원전 4세기경 중국은 젓가락이 대중화였고 유럽은 손으로 밥을 먹었다. 로마에서는 손가락으로 음식을 집어 먹었다. 귀족계층에서는 신분이 높은 사람들은 약지와 새끼손가락을 제외한 손가락으로만 밤을 먹는 식사법을 고수했다. 11세기 되면서 이탈리아의 토스카나 지방에서 두 갈래로 나누리 소형 포크가 등장했다. 그러나 포크는 악마의 무기라는 비판을 받게 된다. 기독교 출신들의 악랄한 비판을 받으며 포크는 마녀가 만들어낸 도구이며 이교도의 무기이자 로마 검투사들의 무기이다라고 받아들여졌다. 그러다 당시 이탈리아 귀족들은 손에 음식을 묻히지 않고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포크를 사용했고 위생 차원에서 발전을 하고 14세기가 되어 카데나라는 수저통이 상층 계급에서 유행을 한다. 그리고 개인용 스푼과 포크가 들어갔고 카트린 드 매디치가 앙리 2세와 결혼하면서 프랑스로 전파되었다.
포크가 식사 도구로 전면전에 나선건 프랑스 대혁명 이후이며 귀족들은 금 은으로 포크를 만들었으며 대혁명이 터지고 신분구조는 흔들리며 귀족들은 망명을 한다. 19세기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포크는 일반 대중들에게 사용되게 되었으며 철의 생산량이 늘게 된 게 한 이유가 되었다.
5. 자동판매기
기원전 215년 그리스의 기계학자 무리학자 수학자인 혜롱이 지은 공기역학에 하나의 기술 도해가 나온다. 이 기술 도해에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성수 자판기가 될 것이다. 이는 인류의 장구한 자판기의 역사의 시초가 된다. 고대 그리스는 동전인 드라크마 기계에 올려놓으면 그 무게로 물통의 구멍이 열리고 성수가 흘러나온다. 그러면 그 무게로 물통의 구멍이 열리고 성수가 흘러나온다. 그 무게로 지렛대가 기울어지고 동전은 돈통에 떨어지는 시스템이었다. 이후 18세기 영국에 담배 자판기가 시작을 하고 1822년 영국의 출판업자였던 리처드 칼리는 자판기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자판기의 익명성에 주목했다.
당시 카릴리는 일반 대중이 정말 읽고 싶지만 정부와 법이 금지한 책을 팔고 싶었다. 분명 수요는 있지만 법 때문에 팔지 못하는 책을 팔고 싶었다. 이 시작이 1880년 영국 런던에 등장한 우편엽서 자판기이다. 이때부터 자판기는 동전을 투입하면 상품을 뱉어냈다.
1908년 애덤스 껌 회사의 설립자인 토머스 애덤스가 뉴욕 지하철의 플랫폼에 자동차 판매기를 설치하고 껌을 팔기로 했고 1940년에 본격적으로 시작을 했다. 우리나라의 최초의 자판기는 1977 롯데산업 이 일본 샤프사로부터 커피 자동판매 완제품을 400대 수입하여 지하철 1호선에 설치하면서 자판기의 역사가 시작된다.
Q. 종합적인 느낌은?
언제나 그렇지만 늘 책은 옳다, 맹목적인 것은 아니고 역사가 있고 그 속에서 인간이 구현하는 것들이 있으니 좋다. 그래서 앞으로도 열심히 책을 쓰면서 이렇게 글을 올리려고 노력할 생각이다.
글이 늘지 않는다. 속상하다. 하지만 뭐.. 재능이 여기까지라고 생각을 하고 한 수 내린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이제 겨울입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붕어빵도 많이 드세요. 늘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몽접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