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찐따의 역사.-결말-

by 몽접

어느 사이 나는 회사의 회장이 되었고 포브스지에서 정한 세계를 움직이는 50인에 뽑혔다. 모두 나의 공으로 돌리지는 않겠다. 다만 난 열심히 살았다는 건 인정받고 싶다. 시간이 없어서 잠은 비행기에서 잤고 먹는 건 거의 커피로 대신했다. 회사에서 일부는 나를 꺼려했지만 그것도 잠시 격하게 반겨주는 많은 직원들 덕분에 우리 회사는 더 큰 회사로 발전해서 지금은 세계 10대 기업에 올랐다.


우리 회사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 가기 위해서 세계 최초로 생체 인식 프로그램에서 세 가지 안구 나이와 청력 나이 그리고 뇌의 단순테스트를 무료로 휴대폰에 제공할 수 있도록 하였다.

결국은 카톡 같은 개념이 되어서 한국의 통신사들과 연계를 통해서 데이트 베이스를 더 강력하게 업데이트를 해서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카메라 기능해서 자신의 사진을 찍어 건강기능을 눌리면 하루하루 자신의 건강기능을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신기해했지만 지금은 젊은 사람들조차도 자신의 건강에 많은 관심을 두면서 웰빙이라는 단어와 함께 우리 회사는 전 국민의 AI가 되었다.


이렇게 되자 한국의 큰 병원들은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보험과 상관없이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노력했고 우리 회사와 컨텍을 해서 앞으로 웰빙을 하기 위해서 더 나은 데이터서비스를 위해서 환자 정보를 줄 테니 같이 하자는 병원들이 많이 늘었다.

회사의 주력 사업이 AI 인류 생장 산업으로 되면서 국내 병원과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병원에서는 알츠 하이머를 계산하기 위해서 들어야 하는 비용이 보험이 되지 않으니 많은 비용이 들었고 기초 비용으로 지불을 해도 우리 기술처럼 자세히 설명을 해주거나 다른 연계 병원으로의 중개인의 역할이 없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우리 회사 기술을 선호했다.


잘 되는 회사가 될수록 우리는 적들이 많았다. 적은 다름 아닌 한국의 대형병원들과의 갈등이었다. 우리는 이 갈등을 풀기 위해서 대한 의사협회장을 만나서 많은 논의를 했다. AI가 많은 것을 대신하는 사회에서 이미 병원의 수납도 치료도 대체 의학에 많은 것들이 기계가 하고 있어서 의사를 기피하는 현상까지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열정을 뿜어내는 의사들은 우리에게 고귀한 생명을 기계로 다루지 말아 달라는 도덕적 개념을 숙제로 남겼다.


우리 회사는 결국 병원과의 갈등을 수습하고자 생방송 토론회에 나가게 되었다.

"안녕하십니까 긴급 토론회 이대로도 좋은가, 사회자 김길수입니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AI지원 프로그램 일명 알츠하이머 포토 프로그램 상용화인데요 이문제가 지금 우리 사회에서 거의 90퍼센트 국민들이 사용하고 계십니다. 무료로 지원을 받고 있어서 저도 오늘 아침에 사용하고 왔는데, 병원에서는 이 프로그램으로 병원의 존패가 달렸다는 말들을 하고 있어서 어떻게 하면 풀어 나갈 수 있을지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자리에는 대한민국 병원 협회 협회장이신 이신우 회장과 프로그램 회사 대표장 김민철 회장님을 모시겠습니다. 박수 부탁드립니다"


"저는 김민철입니다. 이 프로그램을 상용화하는데 거의 10년 넘게 걸렸습니다. 많은 분들이 사용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처음 이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된 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건강문제로 시작하였고 우리나라는 안락사가 허용되지 않는 나라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디서부터 인간의 존재를 인정해야 하는가에 숙제를 안고서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알츠하이머에 연구를 많이 지원했습니다. 인간의 뇌는 늘 진보할 수 없으며 퇴화를 하고 진화를 하려면 늘 움직여야 하는데 그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결과지를 받고서 좀 더 건강한 뇌로 오래 살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지원하게 된 겁니다. 물론 병원의 입장에서는 저희 회사가 어려우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에 저희 회사는 분명 병원에 같이 손을 잡자고 했으나 거절하셨습니다. 이유는 기계에 대한 신뢰도 판단이 매우 낮다는 기준이셨고 그다음이 병원의 영리 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회사는 무료 서비스를 하게 된 겁니다"


사회자 김길수는 "그럼 병원 입장을 들어 봐야겠습니다"

"안녕하세요 회장 이신우입니다. 처음 저희가 제안을 드린 것은 환자의 정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환자의 정보는 어디까지나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철저한 관리입니다. 기계가 제안하는 내용이 100퍼센트라고 하기에는 부담이 크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아주 큰 걸림돌은 인간의 수명인데 뇌만 젊다고 해서 인간이 오래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근육이라던지 심장이라던지 다른 것들도 무시할 수 없는데 한 가지에 너무 몰입하면 그건 부담이 된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많은 논의에서 거절을 한 건 사실입니다"


사회자 김길수는 "그럼 민철 회장님은 100퍼센트 확신하십니까?"

민철" 아뇨, 하지만 우리 기술은 나날이 진보하고 있고 업데이트하고 있습니다. 최근 피검사는 AI가 하고 있어서 대체 인력을 줄이고 연구에 더 많은 투자 비용을 쏟아서 정확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피검사를 통해서 과거 13개의 병을 진단할 수 있다면 저희 회사에서는 20여 개의 병을 진단할 수 있습니다. 놀라운 성과이며 많은 회사들과의 협업을 고려 중입니다"


이신우는 "그럼 앞으로 더 기계에 의존을 하겠다는 이야기로 들리는데 저희 병원은 그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비싼 기계를 수입해서 고객을 유치하는 방식은 정말 올드한 방식이 되었고 저희와 협업을 하신다면 어떤 모색이 있으십니까?"


민철은 " 이렇게 하시면 어떠실까요? 일단 환자의 정보를 저희와 공유하시면 저희가 결과지를 드린 환자의 상태를 병원에서 다시 한번 확인하셔서 펙트 체크를 하셔서 환장 와 공유를 하시면 비용 부담도 덜어드리는 것이 되니 좋지 않으십니까? 그리고 저희가 폰 배경 화면에 병원을 넣어서 광고를 하겠습니다. "


사호자 김길수는 " 나쁘지 않은 제안입니다만.."

이신우는 "여기서 당장 결정 할 사항이 아니라서.."

민철은 이어나갔다.

"우리나라 고령인구가 결국은 전체 인구의 3분의 2가 넘었습니다. 초고령 사회입니다. 이들에게 설문지를 돌렸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나이는 몇 세인가요? 였습니다. 물론 휴대전화로 했습니다. 신뢰도는 오차 범위 2퍼센트입니다. 그때 가장 많은 나이는 115세였습니다. 저희는 궁금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 그래서 이유를 다시 물었습니다. 웰 다잉이었습니다. 인간이 태어나서 직업을 구하는 기간까지 30년 이상 걸리고 거기서 다시 결혼을 하고 그 아이가 다시 부양을 하고 결국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70이라고 보면 다시 사는 인생은 70 이 나머지부터는 정말 자신의 인생을 살고 싶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럼 115살까지는 대략 40년 인생입니다. 과연 무엇을 하시고 싶으신가요?라고 물었더니, 진짜 삶을 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과거에는 보여주기의 삶 그리고 누군가를 위한 봉사의 삶이었다면 이 이후는 자신을 위한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여기에 주목하여 문제를 풀어가기로 했습니다. "


사회자는 " 어찌 들어보면 아주 좋은 이야기입니다. 제 주변에는 안락사를 직접 알아보시는 분이 꽤 있으십니다. 그래서 저에게 물어봅니다. 당신도 관심 있느냐 그런데 전 아직은 아닙니다만.."


이신우는 " 안락사는 그리 쉽게 다룰 문제가 아닙니다. 안락사가 너무 쉽게 허용이 된다면 인간의 생명 윤리 문제는 급격하게 하락이 될 것이고 의료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럼 지금 제공하시고 계신 AI를 병원에서 하지 못하는 것들의 리스트를 만들어 협업해서 하시는 게 어떤지"


민철은 "좋습니다. 저희는 언제나 열려 있으며 지난해에도 의사 지원자 100여 명을 선발하여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것만은 확실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는 생명윤리를 무시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토로는 3시간을 달렸고 이렇게 문제를 풀어나가는데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지금은 포토로 사진을 찍으면 병원이 광고로 나오고 자신이 병원 이름과 병력이 같이 나온다. 놀라운 기술 변화이다.


이제는 폰을 구매할 때 개인정보에 우리 회사와 연동하여 개인 건강정보를 넘겨서 확인하시겠습니까를 체크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하는 지점까지 올라오자 처음에는 유출이라는 거부감이 있었지만 지금은 당연하다는 인식으로 병원에서 환자 개인정보 그리고 우리는 개인정보를 통해서 결과를 병원과 자료를 공유하면서 환자의 건강을 좀 더 케어가 될 수 있게 하였다. 우리는 AI이다. 그래서 칩을 통해 뉴런과 화학반응을 통해서 뇌의 수명을 늘려 주거나 멈추어 줄 수 있다면 병원은 그 자료를 통해서 약을 개발하는데 끊임없는 노력을 했다.

인간의 100세 시대는 이제는 200세 시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회사는 그렇게 끊임없는 변화를 받아들였고 꾸준히 말없이 나는 그렇게 회사와 함께 늙어갔다.


다음 주가 회사 창업 30년 기념이다. 이미 지상파와 해외 언론과 인터뷰가 잡혀있다. 엄마는 아직도 반찬가게를 하신다. 매일 하시던 가게는 주 4일만 하시고 재미로 주변 상인들과 꽃놀이도 즐기시며 남은 여생을 보내고 계신다. 내 생각은 우리 엄마도 우리가 계발한 옙을 통해서 더 삶의 여유를 드리고 싶지만 엄마는 자신의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시겠다고 거부하셔서 일단은 보류하고 있다.


30년 파티가 열리고 세계 방송으로 전파를 타는 날이다. 나는 말끔한 양복을 입고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안녕하세요, 메이드김 회장님 전 BBC 애매랄드 김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안녕하세요, 한글말 잘하시네요"

릴리 김은 "전 입양아입니다. 감사하게도 저희 부모님께서 저를 아주 잘 키워주셨고 제가 여기까지 오는 데는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한국이 입양국가라는 거 알고 계시죠? 저희 회사에서는 다큐 프로그램으로 만들었을 때 제가 참여를 해서 아주 반응이 컸습니다. 제목이 <작은 아이들>입니다"

나는 "그러시군요, 찾아보겠습니다"

릴리 김은 "생각해 보니 회장님과 저는 닮은 점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찐따? 찐따 맞죠? 저는 그 단어를 듣고 검색을 했습니다. 한국에만 있는 단어는 아니고 미국에도 엇비슷한 뉘앙스의 단어가 있습니다. 제가 입양아라 그리고 한국인이다 보니 미국에서 자랄 때 많이 힘들었습니다. 교우관계 그리고 사회적 비즈니스 그리고.. 음.. 네, 동양인에 대한 편견. 쉽지 않은 삶이었지만 저희 부모님은 그런 것들을 이겨내는 게 동양인의 파워라고 하셨고, 실제로 저는 저희 한국 부모님을 찾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지만 그럴 수 없어서 힘들어했을 때도 지금의 저희 부모님은 저를 많이 응원해 주셨습니다.

제가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너는 한국인이야. 그런데 부모님이 왜 미국인이지"라는 물음이었는데 그럴 때마다 어릴 때는 어떻게 해야지 답이 될까 어렵더군요. 하지만 제가 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서는 더 이상 휘둘리지 않았을 때 저희 부모님은 언제나 굿이라는 단어로 저에게 힘을 주셨습니다.

너무 제 이야기를 했습니다. 회장님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회사 30주년입니다. 앞으로의 방향을 알려주세요"


"저희 회사는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애리조나 최 전 회장님의 구호에 맞게 꾸준히 이어 나갈 것이며 저는 저희 직원들을 사랑하고 존중합니다. 이 분들이 없었다면 전 이 자리에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한 가지 이야기를 더 하자면 사족이 될 수 있는데 지금 취업이 힘들고 인생이 힘드신 분들이 계실 겁니다. 인생이 늘 해피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도 힘을 내시고 참고 기다리면 자신의 길을 걸으시게 될 겁니다. 저는 수백 통의 이력서를 냈고 떨어지고 좌절감 박탈감을 느끼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수백 번의 감정이 여기로 이끌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저희 회사에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회사는 앞으로 다가온 시대를 더 앞서 나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더 깊은 생각을 하며 AI를 발전시켜 나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릴리김은 "고맙습니다. 전 세계가 회장님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마지막 정말 마지막 인사를 부탁드립니다"

나는 힘주어 말했다. "제 인생에 찐다는 이제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찐따의 인생은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도 인생의 일부입니다. 찐따를 사랑하세요"

릴리김은 "역시 마지막까지 웃음을 주셨습니다"

모두들 박수를 치고 웃었다.

그리고 나는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래 김민철 너에게 찐따는 인생에서 가장 달콤했던 순간이었다'



그동안 찐따의 역사를 읽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작품은 신춘문예에 도전했던 작품이었습니다. ^^;;

내고 보니 얼마나 어색하던지, 부족한 글 늘 읽어주시고 라이크 눌러 주시고 관심 가져 주신 분들 모두 감사드리며 이것으로 찐따의 역사 소설을 마무리 짓겠습니다.

저에게는 소설이 늘 어렵습니다. 글이라는 게 쉬울 리 없고 늘 고민입니다. 언제 글 다운 글을 써보나 고민을 합니다.

찐따의 역사를 쓰면서 일반적인 리얼리티를 실어서 써보고 싶어서 정말 고민을 많이 하고 써봤습니다.

그동안 소설 응원 많이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직은 바람이 차니 감기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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