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편지/ 황동규
즐거운 편지
- 황동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背景)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 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姿勢)를 생각하는 것 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이 시는 고등학교 때 정말 좋아했던 시. 이 시를 볼 때마다 사랑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내릴 수 있을까 싶다. 사랑이란 본시 그 깊이가 다르니 시나 소설에서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룬다는 것은 힘들지 않을까 싶다. 인간애도 사랑이고 부모에 자식사랑도 사랑이고 연인간의 마음도 사랑이니 사랑이라는 추상명사가 이렇게 방대하니 정말 사랑이라는 단어는 깊이가 깊다.
연애를 해 본 사람이라면 이 시가 얼마나 깊은 마음을 표현했는지 알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가, 뜨거운 커피를 앞에 두고 시를 곱씹어 보고 곱씹으면 사랑이라는 단어가 쓰다. 그리고 그 쓴맛에 단맛이 나온다.
가을에는 시를 읽기 좋은 계절이다.
하루 한 편은 못해도 일주일에 책 두권은 읽으려고 노력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