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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Jul 17. 2022

꿈꾸는 학생에서 진짜 간호사가 되다!

#좌충우돌 실습 이야기

“합격을~”

“저는 (응급실은 말고요) 정형외과보다는 내과에 가고 싶습니다.”

국가고시에 합격 후 첫 직장에 들어갔다. 간호과장님이 원하는 부서가 있냐는 질문에 의사 표현을 했고, 내과와 일반외과가 있는 병동으로 결정되었다.     

응급실, 중환자실 같은 집중 치료가 되면서 보호자 출입이 제한되는 곳을 최대한 피하고 보호자들이 출입이 자유로운 병동을 그것도 정형외과보다는 어쩌면 내 몸이 더 피곤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내과를 택했다.


합격을 이라는 소리를 듣기 1년 전이였던 5월.

좋아했던 젝스키스가 해체한다는 소식에 큰 슬픔을 겪었던 화창한 봄.

파란 하늘을 좋아하던 나에게 그런 하늘이 위로가 되지 않는 일들이었다.

그보다 더 큰 고민에 빠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대학병원 마지막 실습이 응급실이었다.

나는 응급실 간판만 보면 두근거렸다. 설렘이 아니라 공포에 가까운 떨림이었다.

누구에게나 그런 느낌이 있는 물건, 장소들이 있는 것처럼 나에겐 응급실이 그랬다.     

전날 긴장한 탓에 잠도 설치고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남들 다하는 일이 나에겐 왜 이렇게 쉽지 않을까?’ 자책이 들었다.

응급실 실습생 OT가 시작한 지 얼마나 됐을까. 속이 울렁거리면서 어질어질하더니 결국 주저앉았다. 걱정했던 일이 일어났다. 잠시 안으니 괜찮은 것 같아 일어나려고 했더니 (팀장님이) 얼굴이 하얗게 질렸으니 집에 가서 쉬라고 했다. ‘오늘 실습 시간을 채우려면 더 나와야 하는데...’ 집에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아마 실습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학교에 대한 이미지를 내 몸보다 먼저 고민했던 듯하다.

실습 OT부터 역사를 쓰게 된 나는 오후 실습이었던 한 주 동안 매일 한 시간씩 일찍 가서 시간을 다 채웠다. 


<응급실의 위급환자 우선인 것을 기다리다 지쳐서 이해 못 하시는 이야기>

“아니, 그러니까 지금 당장 여기부터 봐주라고? 몇 번째 기다리라고만 하라고 하냐고?”

“보호자.. 지금 저기 구급차 들어온 거 보이시죠. 죄송하지만 저분이 더 위중하다고요.”

“아니, 저 사람만 환자야? 우리는. 우리는. 우리는 왜 안 봐주냐고?

언제까지 기다리기만 하냐고?”


<대학병원과 일반병원 응급실에 치료비 차이로 인해 생긴 이야기>     

“지금 환자분이 다친 곳을 보니 여기서 치료하는 돈은 근처 병원에 가면 두 명이 치료할 돈이 나와요. 그러니 근처 응급실 있는 곳으로 가셔도 되고, 내일 바로 치과 전문병원으로 가셔도 돼요. 현재 응급상황은 아닙니다.”

“아니, 여기 왔으니 그냥 치료해주면 되니 뭔 말이 그리 많아. 의사가 가운만 입으면 되냐, 왜 돈타령이야, 누가 내 돈 걱정해주라고 했어?”     


<누워서 안정을 취해야 되는데 담배 피우러 나간다고 한 분의 이야기>     

“아니, 나는 여기 누워있을 사람이 아니라고... 못나게 하면 나 진짜 여기서 소변봐버린다... 진짜... 에라.”

“허거덕... 허거덕.. 저... 저...”

진짜로 서서 바닥에 소변을 봐버리는 분도 있다. 보호자가 말릴 틈도 없다.     

이런 일들도 있지만.

그러나 한편으론 다른 사연도 있다.     


<가지고 있던 우울증으로 순간 잘못된 선택을 한 분의 이야기>

“선생님, 저 살 수 있죠?”

“아. 지금 치료 중이니 좀 더 지켜봅시다.”

그런데... 정말로 치명적인 약물을 드셔서 2~3일 내로 돌아가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다고 사실대로 “아니요. 죽습니다.”라고 말을...     

정말 진상 환자, 보호자들이 힘들게 한 부분도 있었지만, 후자가 안타까움을 느끼게 하는 분들 때문에 밤에 실습했던 2일이 더 나를 방황하게 했다.

낮보다 밤에 고요함 속에 정말로 그분들의 아픔과 슬픔, 절망과 희망을 모두 느끼게 했던 시간이 나에겐 고민의 나락으로 빠지게 한 원인이 됐다.     


응급실

빨간색 네온사인

아프면 갈 수 있는 곳

우리가 평상시에 느낄 수 있는 응급실의 느낌은 저 정도겠지만, 의료인이 되기로 한 나에게 응급실은.


‘빠른 판단과 우선순위 속에서 누군가의 생명이 뒤바뀔 수도 있고, 가끔은 폭언, 멱살잡이 같은 폭행은 견뎌내야 하는 곳’으로 정의됐다.

(이 상황은 20년 전의 일들이고, 지금은 의료진에 대한 폭언, 폭행에 대한 부분이 강화되고 의료진 위급 시 벨을 누르면 관할 파출소로 바로 연결되는 시스템도 있습니다. 오해하지는 마시길 바라는 마음에 부연해 설명합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밝고 목소리는 크지만, 눈물도 많고 마음은 여렸던 나이기에, 벌레 한 마리를 죽이지 못해 아빠를 부르고 엄마를 불렀던 내가.

생과 사, 갈리는 그곳.

정신없이 바쁜 틈에서 실수 없이 제대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나이팅게일이 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만 가득 남긴 채 실습이 마무리됐다.     

내심 이 정도 각오도 없이 내가 간호사가 되려고 도전한 걸까?

나에 대한 의구심마저도 불신으로 자리 잡기에는 실습을 마치고 돌아온 학교는 매일 시험과 공부로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오월의 고민을 마음속에서 지워내지 못한 채 12월이 다가왔고, 국가고시에 대한 대비를 위해 계획표를 세워서 잠자는 시간을 쪼개가며 한 달을 보냈고 이듬해 1월 간호사가 되기 위해 시험을 봤다.

결국 합격과 동시에 나는 간호사가 됐다.     

나는 이제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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