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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Aug 17. 2022

20년 정주행중입니다!

20년 차, 간호사의 견디는 힘!

간호사는 내 적성이 아닌 것 같다고 울고 쓰러지고 했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나는 여태껏 출근 도장을 찍고 있다. 급기야 작년에는 20년 차가 되어 상여금도 받고, 축하도 받았다.

이렇게 말해도 되나?

“독해서 버텼나 봐. 우리”

20년 차가 되어 얼굴을 맞댄 동기들과 조용히 속닥거렸다.

우리에게는 절대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는 걸 알고 있다.     


코로나로 모두가 힘든 시기였지만, 엄마가 간호사라 더 힘들었던 우리 아이들.

3년 전 처음으로 가족들과 해외여행을 계획했지만 무섭게 밀어닥친 코로나로 입국 거절을 당했다. 

그리고 아이들은 울었다. 

정말 가보고 싶었다고 외쳤던 기억... 을 뒤로한 채.

그 뒤로 어디도 가지도 못하고 항상 집에만 있어야 했다. 

엄마로서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큰데도 아이들은 엄마가 간호사인 게 좋단다.

장래 희망이 엄마 같은 간호사라고 말할 정도로.     

“엄마가 설명해주는 건 이해가 잘돼서 좋아요.”

“엄마는 @인 이가 어떻게 수술할 줄 알았어. 맹장은 어느 쪽인데요?”

아이들의 시점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것도 나의 일에 대한 노하우가 아닐까 싶다.

작년에 9살인 둘째가 갑자기 충수절제술을 하게 된 게 아이들에게는 아직도 신기한 일이다. 

우연히 내가 쉬는 날이었고, 다행히 아이 아픈 쪽을 바로 발견해서 초음파 검사하고 아이들이 오전 수업이 끝나기 전에 수술도 끝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어느 누가 아프고 다쳤을 때 냉정하고 신속하게 처치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게 아이들 문제라면 더 그렇겠지만.

그 일이 있고 난뒤로,

엄마 여기가 아프면 어떻게 되냐고 물어보기까지 한다.     

아이들에게는 궁금한 게 참 많으며 그때마다 알려주는 엄마가 대단해보이는 듯하다.



며칠 전, 코로나 확진 결과를 설명하는데 받아들이지를 못하는 일이 발생했다.

격리병실로 옮겼으나, 환자는 재검사를 요구했다. 

그러나 재검사하지 않고 이해시키는 방법을 찾았고 환자의 주민등록번호, 검사일시, 나이가 기재된 기록을 가지고 가서 확인시켜드렸다. 그제야 인정하게 되는 일들도 있다. 

솔직히 바쁜 회진 시간 전에 가운까지 입고 땀은 땀대로 힘들긴 하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결국에는 이해시키면 넘어갈 수 있는 일이 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마인드로 쉽게 넘어가게 된다.


"오늘도 어떻게 그게 보여요?" 라고 누군가 물어본다.

“내가 환자 입장이 돼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후배들에게 말한다.

예를 들면, 

아이가 입원하면 난간 사이로 떨어지지 않게 안전교육은 필수이며, 온돌바닥의 온도 조절까지 모든 게 내가 환자 라면 어떨까? 라는 생각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보면 된다. 

환자가 되지 않아도 어떤 게 궁금하고 어떤 게 불편할지를.     

환자를 처음 대면할 때부터의 첫인상, 인사, 그리고 처치에 대한 설명은 기본이 되는 셈이다.

낯선 곳에서 입원이 처음인 분들에게 딱딱한 어투보다는 부드러운 말투가 그래도 긴장을 낮추게 되었다고 퇴원할 때쯤, 말해주시는 분들이 있다.     

특히 바쁘다는 이유로 설명도 안 되는 행위, 이해 안 되는 처치 등은 불신을 키울 뿐이다. 

같은 설명을 반복해야 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들이다.

환자의 궁금증을 해결해주고 믿음이 가는 행동이 기본이 된다면, 간호사로서 자질은 갖춰진 거라고 본다.


환자와의 관계, 의료진과의 관계.

그 어떤 관계 속에서의 기본은 믿고 상호작용하는 거라고 본다.

믿음과 신뢰가 바탕이라면 그 어떤 일들 속에서 쉽게 깨지지 못하는 동료애도 발생할 수 있다. 

혼자만 잘하면 되는 게 아닌 우리의 일이기에, 일할 때는 동료애가 발휘돼야만 한다.

그런 것들이 나에게 있었기에 20년 동안 버티게 된 결과가 아닐까 싶다.     

처음에 나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갈팡질팡했었지만, 나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고, 아주 작은 새싹이었던 나를 20년 동안 자랄 수 있도록 이끌어준 선배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런 마음을 그대로 나도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이 되도록 나의 지난 20년을 이제 돌아보려 한다.

나를 이끌어준 선배, 후배, 그리고 엄마 같은 간호사가 되겠다는 공주들.

이 모든 게 힘든 시기를 버티게 했던 힘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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