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간호사에서 진짜 간호사다 되다
출근해서 오후 근무를 순회하고 오던 후배가 “선생님”하고 불렀는데.
마스크를 쓴 상태였는데도 “왜 그래? 어디 아픈 거야, 어지러운 거야? “
1시간 전 모습과 상반되게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후배와 함께 외래 진료를 받게 내려보냈고, 이석증 검사 등등을 하고 신경외과 진료까지 봤는데 다행히 크게 이상은 없었다.
하루 쉬라고 해도 괜찮아졌다고 처방받은 약을 먹고 근무를 이어가는 후배를 보면서 나를 흔들리게 했던 그날이 떠올랐다.
“간호사 국가고시에 합격하셨습니다!”
그때는 전화로 확인하던 시절, 자정이 넘은 시간에 확인하고 혼자서 환호성을 질렀다.
(웃기지만. 야밤에 소리 지르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렇게 나는 간호사를 할 수 있을까?라고 고민했지만, 취업은 돼있는 상황.
누구나 첫 출근은 긴장이 가득할 수밖에 없다.
동기가 있어서 다행이었고 그 동기가 언니여서 나는 더 의지가 된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첫날 인수인계 시간에 동기가 주저앉았다.
아, 나만 긴장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는 자신감을 가지기로 했다.
그렇게 트레이닝 기간 동안 새벽에 출근 저녁에 퇴근이 반복됐다.
드디어 혼자 단독으로 해야 되는 날이 다가왔다.
인수인계가 거의 끝날 무렵 긴장과 수면 부족으로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던지 나도 모르게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빈 병실로 옮겨서 혈당과 혈압을 잴 때쯤 눈을 떴다. 괜찮냐는 수십 번 들었을 때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일을 마무리했다.
그날 집에 오는 길에 생각을 했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도망’이 아닌 간호사로서 끝까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처음 택한 부서니 여기서 제대로 시작해야 되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국시까지 합격해놓고 간호사는 나랑 안 맞는다며 계속 뒷걸음치던 이전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쓰러지긴 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내게 주어진일을 하나씩 마무리하던 내 모습을 돌아봤다.
아마, 도망치고 싶었다면 그 쓰러진 순간에 집에 가겠습니다. 했어야 됐다.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입으로는 말하면서 내 몸은 알아서 할 일을 하는 것이었다.
적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왜 아니라고만 했을까?
포기를 할 거였으면 이렇게 출근도 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 마음은 왜 겉도는 건데..
누구한테 하기 싫다고 떼쓰는 거였나?라는 생각까지 들고 나서,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달았다.
(친한 친구랑 같은 병원을 가지 못한 안타까움과 그 친구가 얼마 버티지 못하고 그만뒀다는 사실에 나 역시 흔들렸으나. 내 몸은 학창 시절처럼 정직하게 학교를 다니듯이 직장에 충실하고 있었다.)
이미 출근 도장에 발을 쾅쾅 찍어놓고, 못하겠어요라고 말하고 나갈 자신이 없었던 게 아니고 그런 말을 할 생각조차 없었던 거였다는 걸.
“오늘은 푹 자고 와! 너무 긴장 안 해도 돼!”
라는 말까지 들은 내게 더 이상 아니라고 할 이유가 없다.
그렇게,
국시까지 합격해놓고 간호사라는 타이틀이 내게는 어울리지 않다고 했던 나의 태도가 한 달도 되지 않아서 전면 수정됐다.
오히려 적극적인 태도로 바뀌게 되니.
더 다르게 보였다. 처음부터 대충인 건 아니었지만, 여기서 최소 1년은 버텨야지 라는 생각을 하고 나니 더 열심히 달려들었던 것 같다.
누구에게 가르침을 배우냐도 중요하지만, 배운 것을 어떻게 내 것으로 소화해야 하는지.
“처음에 배울 때 제대로 배워야 한다, 안 그러면 나중에 힘들어”
처음에 이 말 한마디만 하셨던 그 선생님의 말씀이 그때는 그렇게 무서웠는데, 저 말이 어떤 뜻이었는지를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는...
그리고 정말 간략하게 의미심장한 말 한마디였다는 사실.
내가 운이 좋았다고 인정한다.
무서웠지만 뒤에서 지켜보다 아닌 부분을 조용히 알려주는 선배님,
다 마무리되고 집에 가는 길에 이런 부분을 이렇게 하면 더 나을 거라고 조언해주는 선배님,
직속 후배라고 항상 챙겨주던 선배님까지.
아마도, 내가 생각을 바꾸게 됐던 것들이 짧았지만 그분들의 마음이 조금은 작용했던 듯하다.
좋은 선배님을 만난 운 좋은 나.
그렇게 나는 간호사를 할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을 던져버리고, 간호사라면 실전에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 직접 체험하고 내 것으로 만드냐는 질문으로 방향을 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