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서른다섯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크로크무슈 Jun 30. 2024

너의 결혼식


부쩍 주변에서 결혼을 많이 하는 느낌이다. 꾸준히 결혼 연락을 받고 참석도 했었지만, 특히 요즘이 잦다는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 내가 그런 나이가 된 탓이겠지. 지금껏 여러 결혼식 자리에 다녀왔다. 20대 때는 축의금으로 나가는 돈들이 그렇게 아까웠었다. 이 돈들이 나중에 다 돌아올까부터 시작해서, 도대체 다 똑같은 결혼식을 왜 하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은 행사가 결혼식이었다.


30대가 되고선 이전에 느던 감정에서 크게 벗어났다. 아마 제일 큰 원인은, 내가 정말 아끼는 사람들의 결혼식에만 참석하기 시작한 까닭이다. 내 사람들의 사랑의 결실. 내가 감히 상상할 수 없을 그들의 감정. 이제야 결혼식이라는 행사에 이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사자들은 하나같이 예쁘고 사랑스럽다. 어떤 이의 결혼식은 한 편의 디즈니 영화 같았으며, 어떤 이는 서사시의 한 장면 같았고, 어떤 이는 잘 만든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했다. 결혼식의 장르를 도출해 보는 이런 행동은 사실 내가 모두 같은(비슷한) 결혼식을 즐기는 하나의 방법이다. 나는 예고편을 보지 못한 한 편의 공연을 보러 온 관객인 셈이다. 


그들의 삶에 내가 어디쯤, 어느 크기로 존재할 테니, 나는 그들의 작품 속 단역이나 조연 정도였지 않을까. 그렇게 지켜보는 내 사람들의 결혼식은 그렇게 재미있고, 감동적이고, 기쁘고, 슬프기까지 했다. 이제는 축의금이 얼마였는지, 어땠는지, 굳이 따지지 않는다. (사실 그렇게 많이 하지도 않는다. 친구들아 내가 좀 더 많이 벌어볼게..)



-



며칠 전 내가 정말 사랑하는 친구 S군이 결혼을 했다. 스물세 살 때 미국에서 일하며 만난 형인데, 사람이 그렇게 순수하고 성실하고 듬직할 수가 없다. 외모마저 안경 쓴 쿼카를 닮았다. 겨우 한 살 많을 뿐인데 이렇게 어른스러울 수 있는지, 이 사람 앞에 서면 한없이 어리광 부리고 싶어진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 이 친구는 독일에서 자리를 잡았다. 내가 독일 출장이 잡힐 때는 꼭 만나러 가거나 와주었다. 애틋한 것이 이산가족 상봉이 따로 없었다. S군은 독일에서 어렵게 적응을 하고, 그 어렵다는 독일 국가공인의 시험을 얼마 전 패스했다. 이렇게 완전한 사람이 내 곁에 있어주어서 그저 고마운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이 결혼을 한다고 한다. 독일에서 인연을 시작해, 7년의 연애를 거쳐 결실을 맺은 것이다. 어쩜 그렇게 똑같이 사랑스러운 사람을 만났는지. 둘의 모습이 아주 천연덕스러워서, 그저 아름다워서, 보태준 건 없지만 진심을 다해 둘을 응원하고 있었다.


결혼식은 무난했다.

S군이 축가를 부르며 오열하기 전까진 말이다.


저 단단한 사람이 울었다. 울음이라는 행위를 상상할 수 없었던 사람이라, 내가 적잖이 당황했다. 반주만 흘러나오는 노래에는 S군의 훌쩍거림만 마이크를 통해 들릴 뿐이었고, (나중에 꼭 놀릴 거다) 사람들의 애틋하고 안타까운 탄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그때 마주 선 새하얀 신부가 한 손에 부케를 든 채, 두 팔을 벌려 S군에게 다가가 달래주었다. 여기서는 나도 꾹꾹 눌러 담고 있었던 눈물이 터져버렸다. 주책스럽게도 걷잡을 수 없이 울어버려서 가방에서 급하게 티슈를 꺼냈다.


S군은 왜 울었을까.


S군의 인고의 시간들 곁에 그녀가 함께 있었기 때문이라 감히 짐작해 보았다. 고통의 시간들을 돌파해 도달한 현재를 함께 맞이할 수 있음에 감격스러워서, 그녀의 한결같은 사랑에 고마워서, 그리고 현재에 무사히 도달했으니 앞으로의 미래가 더 기대되지 않겠냐는 신부의 눈빛이 보여서. 그날의 결혼식은 지금껏 경험했던 어떤 결혼식보다 아름다웠다. 계속 보고 싶었다. 크레딧이 올라오지 않길 바랐다. 잘 만든 로맨스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함께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S군에게 연락해 결혼식의 감상을 전달했다. 처음이었다. 주책스럽게 함께 울었다며, 잊지 못할 결혼식에 초대해 주어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둘은 곧 다시 독일로 돌아간다. 지구 반대편에서 알콩달콩 잘 살아가겠지. 그저 간간이 SNS로 근황을 전해 주길 바랄 뿐이다.


그와 그녀 같은 모습의 사랑이 하고 싶어 졌다. 마주 보며 눈을 맞출 수 있는 사람.


아름다운 너의 결혼식에 초대해 주어서 감사하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