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법
글쓰기가 우리 삶에 주는 가치는 글이 얼마나 유명하고 잘 팔렸는지가 아니라, 글을 쓰는 나 자신이 고민하는 과정 그 자체이기 때문이죠.
글을 쓴다는 사람들은 때론 이상해 보입니다. 곰곰이 생각하더니 종이에 무언가 휘갈기고, 자판을 정신없이 두들깁니다. 새로운 영감을 놓치지 않으려고 느닷없이 메모장을 꺼냅니다. 온종일 워드나 한글을 보며 글이 써지지 않는다며 버둥거립니다. 매일 하루에 있었던 일들과 느낀 바를 쓰겠다며 일 년에 쓰는 노트가 몇 권이나 쌓여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크기나 두께가 제각각인 노트들에 각자 주어진 역할이 있다고 떠들어대죠.
글을 쓰는 이상한 사람들 - 그들이 머리를 쥐어짜는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금까지 걸어온 짧지만 의미 있었던 길을 통해 대답해 보자면, 결국 글쓰기가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기 때문일 것입니다. 글 자체보다는, ‘글쓰기’ 그 자체가 말이죠.
글쓰기는 보이지 않는 것을 실재하는 ‘글’로 만드는 과정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생각을 ‘만들어내는’ 사람입니다.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두지 않고, 그것을 붙잡아 의미 있는, 실재하는 이야기로 만들어 내는 사람이죠.
그렇다면 정돈되고 빼어난 필력의 글을 써야만 의미가 있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완성된 글을 타인에게 보여줄 수 있습니다. 능력이 뛰어나다면 문예 창작이나 에세이 공모전에 당선될 수 있죠. 그런데 구체적인 결과를 내야지만 글의 의미를 깨닫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말하듯 ‘글이 밥 먹여주느냐’를 증명해야만 당신이 글을 계속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죠.
글을 쓰겠다고 첫 글자를 뗀 그 순간부터, 글을 쓰는 시간과 노력은 온전히 당신을 위해 존재합니다. 내 생각을, 어떤 사건을, 그 의미가 무엇인지 머릿속의 모호한 관념의 덩어리를 실체하는 것으로 만들어내는 길. 그런 과정에서 처음엔 뒤죽박죽이었던 생각을 정리하게 되고, 종이나 화면에 휘갈긴 글을 마주 보며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어떤 사람도 처음부터 완벽한 형식으로(마치 챗지피티의 답변이 입력되듯이) 쭉 글을 쓰지는 못합니다. 처음에는 문법도 맞지 않고 그냥 떠오르는 생각을 적다가 어떤 단어는 지우고, 어떤 쪽글은 살려낼 뿐이죠. 중요한 것은 글의 기술적인 완벽함이 아니라 무엇을 쓰느냐입니다. 그래서 글쓰기를 시작하기 좋은 주제는 바로 내 안에 있습니다. 오늘 느낀 것들, 행복했던 일들, 슬프고 수치스러웠던 일들 말이죠. 이런 것들은 글을 쓰기 위한 사전 조사도 공부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고통과 우울함이 느껴진다면, 회피하지 않고 왜 그런 감정을 느꼈고,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써 보세요. 괴로움을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으며 참을 때는 몰랐던 후련함이 느껴질 겁니다. 그리고 글을 쓰다 보면 어느새 ‘그럼 앞으로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를 고민하는 나 자신을 보게 됩니다. 그런 단계에 이르게 되면 어느덧 글은 나름의 양과 질을 얻게 됩니다. 그 후에는 몇 번 글을 다시 읽어보고 구멍을 메꾸면 됩니다. 고칠 부분이 없고 이대로 괜찮은지 고민된다면 골머리를 앓을 필요 없이 휴식 시간을 가지세요. 언젠가 저의 교수님이 말해주셨듯, 글(writing)보다 글쓴이(writer)가 더 중요합니다. 몇 시간 뒤, 아니면 일상을 보내다 하루 이틀 뒤에 다시 글을 보면 글을 마구 손보고 싶어지게 되기 마련입니다. 여유를 가지고 글을 어루만지다 보면 어느새 글의 완성이라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게 나중에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에 상관없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 우리는 충분히 깨달음과 즐거움을 얻으니까요.
우리가 글을 쓰다가 완성까지는 못하더라도, 글을 어디에 발표해서 등단하지 않더라도, 글쓰기는 나름의 의미를 가집니다. 글쓰기가 우리 삶에 주는 가치는 글이 얼마나 유명하고 잘 팔렸는지가 아니라, 글을 쓰는 나 자신이 고민하는 과정 그 자체이기 때문이죠. '사유의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비단 일기나 사적인 에세이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논문을 쓰더라도, 출판될 책을 쓰더라도 그 글이 미칠 영향력은 물론 중요하나, 결국 글에 전부 담기지는 못할 이야기들이 당신 안에 남아있을 것입니다. 글쓰기의 고뇌, 힘든 집필 작업에 온 정신을 쏟아부으며 깨달았을 일상의 사소한 행복들이나 올바른 자세와 운동의 중요성 같은 것들. 그런 깨달음은 완성된 글이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글쓰기라는 과정 자체를 통해 당신 안에 남게 됩니다.
참, 그리고 자신이 ‘글을 잘 쓰지 못하면 어쩌나’ 고민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의 경험상 글은 ‘잘 써서 쓴다’가 아니라 ‘쓰면서 잘 쓰게 된다’는 듯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원어민 한국인입니다. 우리는 모두 한국어를 통달한 수준으로 완벽하게 구사하죠. 한국어로 글을 못 쓸까봐 겁먹을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조금 더 어휘력을 높이고 싶다면, 전문가들의 도움(소설, 시집, 필사 노트 등등)을 받아서 더 많은 언어를 습득할 수 있죠. 그림 그리는 사람들도 자신의 그림을 그리기 전에 모작을 하듯이 말입니다. 마음에 드는 글귀를 받아적다 보면, 어느새 내가 쓰고, 말하는 어휘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할 겁니다. 그리고 내가 쓰는 언어가 나의 세상을 결정하듯, 삶 속에서 포착하는 아름다움과 그 다채로움이 일상 속으로 와닿게 됩니다. 그러니 마음껏 즐기세요.
이제 글을 쓰고 싶다면, 먼저 나를 ‘작가’라고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작가에게 어울리는 좋은 책을 읽고, 영감을 주는 공간에서 멋들어지게 글을 써보세요. 작가가 할 법한 고상한 삶의 고민을 해보고, 지하철에서도 시집을 꺼내서 읽어보세요. 글을 쓰기 이전에, 이러한 일상의 즐거움이 삶의 원동력이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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