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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평창 여행 ① 발왕산 케이블카 "계절을 넘어"

by 책방삼촌

강원 평창 여행 ① 발왕산 케이블카 모나파크 "계절을 넘나드는 통로"

# 2024년 9월 여행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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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이 되었음에도 수그러들지 않는 더위에 지쳐 맥을 못 추고 있었다. 시원하고 평탄한 숲길을 걷고 싶다, 들이마신 숨에 간절한 희망을 섞어 내뱉었다. 문득 '지금 당장 떠나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물으며 강원도의 느린 시간과 평창 오대산 월정사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그 좋아하는 월정사 전나무 숲길을 십 년 넘게 방문하지 못했나 보다. 건강 상태와 아이의 학교생활이 가림막이 되었겠지.


숙소는 월정사 앞 민박 같은 펜션의 소박한 방으로 정하고 짐을 챙겼다. 서두를 것 없이 가는 길, 발왕산을 들러가 보기로 한다. 평창군 대관령면 용평스키장 자리가 바로 발왕산이다. 오르막 걷기가 힘든 이들에게 케이블카가 아니고서는, 구름이 잔잔히 걸린 능선의 파도를 구경하는 일이 얼마나 요원한가. 발왕산에 올라 그리운 광경을 마주하고 싶다. 그러나... 케이블카는 여전히 생각만으로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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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 오르는 계단길 없이 탑승 가능한 케이블카는 아직 많지 않다. 발왕산 케이블카는 모든 경로에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가 있어 다행스럽고 고맙다.


희망 하나에 매달려 허우적 오르는 삶처럼, 케이블카는 추락하지 않을 만큼만 흔들거렸다. 지나온 시간은 줄을 따라 하나의 풍경으로 속속 모여든다. 나의 바랜 과거도 멀찍이 응시하면 이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 있을까. 발밑을 내려다보며 지금 이 순간의 나 역시, 정지된 존재가 아닌 흐름 속에 있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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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도를 웃도는 날씨였는데, 정상은 21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건물 밖으로 나서자, 따뜻해 보이는 풍경에도 불구하고 기상 실황이 거짓이 아님을 곧바로 알 수 있다. 동해를 향해 봉우리 너머 달려가는 바람이 묵은 때를 사정없이 뜯어낼 듯 강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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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달리는 길을 따라 원근이 있는 듯 없는 듯 수묵화처럼 펼쳐진 산세를 넘어가면 동해가 있다. 동해로 가는 강한 바람에 맞서는 방향은 잎을 떨구어내고, 동해를 향하는 가지에 온 힘으로 초록을 모은 천년 주목들이 이 산 정상에 굳건히 버티고 서 있다.


주목들이 살아 숨 쉬는 정상을 둘러 '천년주목숲길'이라는 데크 산책길이 조성되어 있었다. 바람의 영향이 덜한, 바다를 조망하는 능선 벽을 따라 흐르듯 설계되어 있어 찬찬히 걷기에 더없이 좋았다. 기대하지 않았던 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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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함은 결핍의 크기에 비례한다. 오래 오지 못한 평창 방문이 이토록 간절했구나. 사업의 구조나 자연 훼손 같은 문제를 안고 있을 케이블카에 대해 무조건적인 찬양을 하기는 어렵지만 이곳처럼 어떤 사람이든 함께 걸을 수 있는 배려가 담긴 좋은 길을 더 자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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