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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완주 아원: 시선 닿으면 예술이 되는 한옥 정원

by 책방삼촌


아원: 한옥의 세계를 예술로 담다



2024년 봄, 완주 소양면의 포근한 품으로, 자연과 예술이 숨 쉬는 '아원'을 찾아가는 길. 개천 둑방길을 따라 길게 이어진 벚나무 행렬은 장관을 이룬다. 며칠만 일찍 왔어도 만개한 벚꽃을 보았을 거라 안타까운 탄식이 절로 나오지만, 아직 남아있는 분홍빛 꽃잎과 새로 돋아나는 연둣빛 새싹이 혼재한 풍경 또한 흔치 않아 묘한 감상에 젖는다. 꽃과 잎 사이의 인사는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다음을 위한 기약 중 어떤 것일까.



이 길을 따라 조금 더 오르니 고즈넉한 고택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중 '아원'에 먼저 차를 멈추었다. 어떤 경우의 사진은 실제보다 나을 때가 있다. 반대로 실제의 깊은 감동과 분위기를 사진으로 담기에는 너무나 아쉬울 때가 있는데, 이곳 아원 고택이 그러했다. 물론 기본적으로 사진이 아름답게 나오지만, 이곳의 고유한 '결'을 담기엔 역부족이라는 이야기다. (물론 나의 형편없는 사진 실력 탓도 크지만 말이다.)



아원은 '아원뮤지엄'과 '아원고택'으로 나뉘어 관람객을 맞이한다. 광장과 마당 같은 공간을 지나 먼저 아원뮤지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동굴을 향하듯 미상의 구역으로 우리를 끌어들이는 듯한 입구는 시작부터 범상치 않은 경험을 예고한다.



그 안에서 빛과 물, 그림과 자기, 그림자와 음악 등이 기묘한 질서로 엉긴 전시를 마주했다. 현대 미술에 대한 나의 '소양 부족'을 탓할 수밖에 없었지만, 작품들이 품은 명확한 의미를 짐작하기는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간 자체가 주는 신비롭고 감각적인 배치는 그저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전시관을 나서면 차원 이동이 아닌가 싶은 계단 통로를 좁은 하늘을 보며 오르게 된다. 계단의 끝에서 뒤를 돌아보면 이 계단의 의도가 무엇인지 느낌이 온다. 호기심과 설렘 이후의 평온함, 그리고 감탄. 이토록 아름다운 지상 혹은 천상의 세계로 통하는 길이었다. 풍만하고 부드러운 능선과 각자의 곡선을 교환하는 한옥이 눈앞에 등장했다.



다시 뒤로 돌면 차분히 따라 걷고 싶은 산책로가 보인다. 야트막한 숲으로 들어가니 대나무 군집이 숨어 있다 모습을 드러낸다. 대나무 향을 맡으며 잠시 걸으면 다시 아원의 다른 한편에서 한옥 정원을 만나게 된다.


이 집들은 대부분 객실로 사용하고 있다. 나처럼 기웃거리는 한낮의 구경꾼들이 사라지고 나면, 산속 객실의 고요한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다. 어느 방향이든, 어떤 각도든 바라보면 모두 소위 '그림'이 나온다. 완주 여행에서 '아원' 방문은 필수여야 한다.



한옥들 사이에 이질감이 들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현대적 건물이 있다. '누드콘크리트 모던하우스'라는 이름의 미니멀 건축물인데, 주로 나무로 지어진 한옥과 달리 콘크리트 소재를 사용했다. 한옥과의 어울림을 위해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콘크리트의 속성을 거의 그대로 살린 것도 목재를 그대로 사용하는 한옥 건축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닐까 싶다.


'나의 정원'이란 뜻의 '아원'은 말보다는 시선과 걸음으로 조용히 즐기도록 자연스레 유도한다. 사진의 수준은 높지 않지만 텍스트 없이 잠시 휴식하듯 이곳의 모습을 바라봐도 좋겠다. 심지어 화장실 내부까지도 섬세한 손길이 닿아 하나의 예술 작품 같았던 아원. 이곳은 한옥이라는 삶의 공간과 자연, 그리고 예술이 서로 기대어 조화를 이루는, 말 그대로 '사유의 정원'이었다.



'아원'은 전주나 완주에서 반드시 가보아야 할 우선순위 여행지로 추천한다. 완주 가볼 만한 곳으로 검색되는 곳들 중에는 기대에 못 미쳐 심한 거품이 낀 경우가 더러 있지만, '아원 고택'에서의 시간은 단 1분도 아깝지 않은, 오롯이 감각과 영혼을 채우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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