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의 날들

by 책방삼촌


그대는

한 올의 실을 건네주었을 뿐

그것이 태풍을 잉태한

최초의 바람이었든,

예정에 없는 마주침의

서늘하게 피어나는 입김이었든


등에 아로새긴 죄의 앙금

그 실 놓아 버렸다면

이 지독한 무늬는 없었을까

운명이라는 뜨개질로

이미 그리 짜였을까


그 사내의 발길이 어딜 향했든

그 매듭은 결국 썩어갈 무렵

그대 손길 닿지 않은

다른 우연의 세계에서도


후회의 칼날 위를

위태롭게 걸어

우리가 살아내는 오늘

등에 새긴 낙인처럼

지울 수 없는 깊은 흔적 위에

후우, 그래도 숨을 여는

우리를 맡길 작은 확률 한 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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