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적 거리와 팬심의 상관관계
지난 주말, 온 가족이 친정에 모였다.
어쩌다 나온 대화의 주제는 그때 그 시절 아이돌 팬활동.
엄마, 아빠에게는 비밀이었던, 그리고 나조차 잘 기억나지 않는 이야기들이 터져 나왔다.
딸 셋과 아들 하나가 기억하는 아이돌 팬질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둘째는 god의 엄청난 팬이다.
아니다.
이제는 god보다 조성진 협연을 가겠다고 말하는, 우선순위가 달라진, 팬이었던 사람이다.
둘째가 펼쳐놓은 비밀은 팬클럽과 콘서트 이야기였다.
둘째는 god의 팬클럽인 팬지오디 3기 활동을 하며 팬사인회와 콘서트들을 다녔다고 한다.
셋째가 증언하기를 "언니랑 같은 방 쓴 내가 다 알고 있잖아. 언니가 밤에 뭐 사부작거리면서 만들면 다음날 하루종일 사라졌어."라고 말했다.
그때 도대체 서울 콘서트를 어떻게 갔던 걸까 떠오르지 않아 물어보니 당당하게 비밀을 오픈했다.
"100회 콘서트를 세 번 정도 갔는데 그건 러닝타임이 길지 않았던 데다가 막차 시간이 뒤로 밀린 때라서 시간 맞춰 올 수 있었어. 그런데 서울콘은 내가 갔다 온 거 아무도 몰랐을걸. 중 1 때였는데 아침에 버스 타고 올라가서 그날 새벽 1시에 대전 도착했잖아. 차 끊겼는데 아빠한테는 말할 수 없어서 친구랑 택시 타고 겨우 왔지."
"엄마, 아빠는 이 언니 새벽에 들어온 지도 모를걸."
부모님 모르게 조용히 팬사인회도 다니고 팬클럽 활동도 다 하고 다닌 둘째였다.
"큰 누나는 거실에서 콘서트 비디오 꺄꺄거리면서 엄청 보지 않았어?"
"저 언니도 장난 아니었어."
"쓰읍, 난 기억이 잘 안 난다. 나도 팬클럽하면서 생일파티랑 막 다녔던 거 같은데. 난 그걸 어떻게 갔던 거지?"
"그때는 대절 버스 있지 않았어?"
"맞다! 지역장? 지역회장? 왕언니가 있었는데. 그래서 학교에서 언니들이 모집해서 다 챙겨줬던 거 같아."
"언니들 덕분에 난 아빠한테 당당하게 데리러 오라고 했지."
"저 누나 완전 불효녀네. 새벽에 아빠보고 셔틀이라니."
"새벽 아니고 밤 10시였거든."
이 모든 걸 엄마, 아빠는 아예 기억을 하지 못했다.
우리는 학창 시절 돈과 시간을 어떻게 모아서 쓸 수 있었을까.
지금 생각하면 신기하고 의문 투성이다.
지방에 사는 사람에게 아이돌 콘서트와 팬클럽 활동은 고민되는 지점들이 많다.
첫째는 거리, 경기도 바깥부터는 오고 가는데 최소 5~6시간은 걸린다.
집에서 터미널로, 터미널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공연장으로 가도 가도 끝이 없다.
둘째는 교통비, 버스비와 지하철비로만 해결되면 그나마 다행이다.
부산에서 오는 사람들은 숙소를 잡아야 한단다.
셋째는 집으로 돌아오는 방법, 막차 시간이라도 놓치면 멘붕이다.
어렸을 때 차 시간 때문에 공연을 끝까지 못 보고 울면서 나오던 장면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네이버에 지방러 콘서트를 검색해 보니 나온 글이다.
요즘도 이런 고민을 하고 있구나.
팬심은 거리와 상관없이 똑같은데 물리적 거리만큼 최애와의 거리도 멀게만 느껴진다.
이번 지오디 콘서트를 찾아볼 때 느꼈던 감정이 불현듯 떠오른다.
'왜 대전은 안 오는 거예요! 중간지점에서 제발 한 번만!'
물론 전국투어의 일정을 잡는 것도, 티켓 파워의 문제도,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한다.
서울콘서트를 놓치고 그나마 가까운 대구콘서트를 예매할 때, 30대 중반인 나조차도 교통과 숙소의 금액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한편으로는 지방러들만 더 많은 비용과 시간을 지불해야 오빠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억울하기도 하다.
갈수록 수도권으로 인구가 몰리는 현상의 한 이유가 이런 문화생활권의 차이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수도권 쏠림 현상은 있었다.
인적이든 물적이든 모든 자원이 수도권으로 몰려들어간다.
사람의 문제는 마음도 작용하는 법.
마음 가는 곳으로 간다고 사람의 마음을 채우는 문화가 있는 곳을 향해 사람들은 모인다.
god와 JYP 그 때 그 시절 그리워서일까
오늘밤 같이 뛰고 같이 불러줘 우리 웃으면서 노래해
헤어질 때 우리 다시 만나자고 맹세했던 그 약속 지키려고
하늘색 풍선 가득했던 You & Me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god '하늘색 약속' 가사
연어처럼 지방러들의 상경이 고될지라도.
오늘도 우리는 그 때 그 시절이 그립고, 오빠들이 보고 싶고, 오빠들과 함께 부르고 싶어서 서울로 상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