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고 기다리던 크리스마스이브가 됐다.
정확히 11월 14일에 가족여행을 확정 짓고 한 달 넘게 얼마나 설레며 준비를 했던지.
매일매일이 행복했고, 여행일이 다가올수록 기대감과 행복감은 커져만 갔다.
예전 SNS 기록을 살펴보니 9년 만이다.
9년이라는 시간 동안 볼 수 있는 기회는 여러 번 있었겠지만 그냥 살아가느라 시간이 훌쩍 흘렀다.
그러다 올해 반짝하고 전구에 불이 들어오듯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2023 god’s MASTERPIECE - 대구
크리스마스이브와 크리스마스에는 가족이 함께 모여있는 것이 우리의 규칙이다.
특별한 일정이 없이 집에서 뒹굴거리더라도 가족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자는 의미가 담겨있다.
처음 생각이 쏠렸을 때는 그 규칙을 과감히 깨버리는 선택을 하려고 했었다.
god 콘서트를 보러 대구까지 먼 거리를 오고 가는 것이 아이에게 너무 힘든 시간이 될 거라는 생각, 가족이 유의미한 시간을 즐기지 못하면 미안할 것 같다는 생각, 셋이 콘서트 하나 때문에 움직이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여러 고민들 사이에서 방황하며 갈팡질팡하던 나에게 남편이 방향을 틀어 길을 보여줬다.
"까짓 거 대구로 가족여행 가면 되지. 다 같이 가자."
그렇게 god 콘서트를 위해 가족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솔직히 콘서트 준비한다며 오빠들 노래 따라 부르고, 응원법 익히는 것에 더 정신이 팔렸어서 여행 계획은 거의 무계획에 가까웠다.
호텔만 겨우 예약해 놓고 출발 전날 급히 가족회의를 통해 일정을 정했다.
평소보다 준비된 것이 없다시피 한 여행의 시작이었는데 집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행복함이 철철 흘러넘쳤다.
대구로 향하는 차 안은 god의 노래와 우리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그 시절 누구나 따라 불렀을 정도로 명곡들을 많이 보유한 국민가수답게 god의 노래는 자칭 음치인 우리 남편도 부를 수 있었다.
딸아이는 몇 달간의 하드트레이닝으로 자기도 모르게 발을 까딱거리며 노래를 자기만의 가사로 바꿔 불렀다.
"나나나나나나 나나나나나나 하나 둘 셋 넷 신발을 신고 나나나나나나 나나나나나나 하나 된 이 밤"
(Stand up. 팬지들은 틀린 가사 찾아보시길. 저는 세뇌돼서 이렇게 부르고 있어요.)
3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엑스코는 이미 하늘색 물결이 흐르고 있었다.
그 흐름에 얼른 섞이고 싶었지만 아이와 남편을 상상체험 키즈월드로 무사히 보내야 하는 미션이 남아있었다.
상상체험 키즈월드, 이 얼마나 좋은 행사인가.
엄마는 오빠들 보러 콘서트장으로, 아이와 아빠는 실내 놀이공간으로 각자의 행복을 찾아 떠날 수 있는 행사 구성에 감사한 마음이 한가득이었다.
따님과 남편을 떠나보내고 갈 곳 잃은 나는 지정석 입장이 시작되자마자 일찌감치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잔잔하게 깔리는 god 노래에 북받쳐 주책맞게 눈물이 계속 흘러나왔다.
편의점에서 휴지를 사놓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콧물 닦으려고 했던 거였는데 눈물, 콧물을 찍어 닦게 될 줄이야.
사람은 무언가 시작되기 전에 기대감이 부풀어 오를 때 엔돌핀이 가장 많이 돈다고 한다.
오빠들이 나타나기 전까지 심장이 두근거리며 행복한 것이 그 말이 딱 맞다 싶었다.
공연을 보는 내내 행복했다.
스마트폰 카메라를 꺼낼 생각조차 못 하고 하늘색 응원봉을 흔들어대며 온전히 눈과 귀로 그 시간을 즐겼다.
노랫소리, 함성소리, 떼창소리가 뒤섞인 콘서트장의 열기가 전부 행복이라는 단어로 바뀌어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
물론 오빠들이 울면 나도 따라 울면서 여러 감정이 뒤섞이기도 했지만 그 바탕은 행복이었다.
이 감정은 어디서 오는 걸까.
이 답을 찾기 위해 콘서트 후기들과 영상들을 뒤적거려 보았다.
글을 봐도, 사진을 봐도, 영상을 봐도 귀에 맴도는 건 노래더라.
멜로디를 타고 흐르는 오빠들의 목소리가 마음을 건드리고 있었다.
이게 노래의 힘인가 보다.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 떠난 게 후회될 때 언제라도 나의 품에 돌아와도 돼'
"위로와 힘이 되는 노래, 행복이 가득 차오르는 노래를 들려주는 내 가수, god.
평범한 일상들을 소중하게 잘 지내다 언젠가 또 만나러 갈게요.
사랑해요, 그리고 기억할게요."
PS. 내 앞에 앉았던 꼬마아이에게
안녕.
내 딸아이와 같은 나이인 듯 보였는데 넌 엄마, 아빠 손을 꼭 붙잡고 god 콘서트에 온 모양이더구나.
아줌마가 자꾸 이상한 걸 외쳐서 놀랐지.
거짓말에서 "싫어 싫어."라고 외치자마자 흠칫 놀라며 날 쳐다보던 너의 눈빛이 잊혀지지가 않는구나.
놀라게 해서 미안해.
아줌마도 god 노래엔 아이로, 소녀로 변해서 말이야.
언젠가 너도, 너를 언제든 행복했던 과거로 돌려보내 줄 노래와 가수를 만나서 콘서트를 즐길 수 있기를 바랄게.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