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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녁에는 Aug 04. 2023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

양육의 공백

감기에 장염에 폐렴


아들은 아빠의 빈자리를 몸으로 느끼는 걸까? 한 달 새 감기에 장염에 폐렴까지 왔다. 7월 초 감기에 걸렸길래 약 먹으면 나으려니 했는데 감기와 함께 장염이 왔다. 하루에도 화장실을 대여섯 번을 드나들고 속옷에 묻어날 정도로 심해 어린이집에도 못 가고 꼼짝없이 평일 이틀과 주말을 아이와 함께 보냈다. 2주 후 이번에는 기침소리가 수상하다. 열이 나기 시작해 병원에 갔더니 폐렴이다. 그나마 코로나가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폐렴으로 평일 나흘과 주말을 아이와 함께 보냈다. 그저 콧물감기 정도나 달고 살던 아들이었는데 한 달 새 감기, 장염, 폐렴이 차례대로 다녀갔다.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아기는 항상 예고 없이 아프다. 아픈 아이도 걱정이지만 아픈 아이를 맡길 데가 없다는 것이 더 걱정이다. 나는 1인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어 육아 때문에 사장 눈치를 볼 필요는 없으나 교육이나 미팅, 상담이 잡혀있는 날에 아이가 아프면 난감하기 그지없다. 남편이 있을 때에는 남편에게 맡겨놓고 출근을 했지만 이제는 아픈 아이를 돌보는 일도 꼼짝없이 나 홀로 해결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난 자리가 이렇게 아쉽다.


장염 때에는 어찌어찌 넘어갔는데 폐렴 때에는 도저히 일을 미룰 수가 없었다. 처리해야 할 일도 쌓였고 강의 스케줄도 있었다. 아이를 맡길 곳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아픈 아이를 맡기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동네에 아무런 연고가 없는 나로서는 부탁할 친인척도 없다. 아들 어린이집 친구네 맡기는 것은 행여 그 집 아이한테 병을 옮길까 봐 선뜻 말을 꺼내기도 어렵고 우리 부부 속사정을 잘 알고 있는 언니네는 집에 아프신 어머니가 계셔 부탁할 수 없다. 결국 시터어플에 급하게 구인공고를 올렸다. 이틀 동안 4시간씩 아픈 아기를 봐줄 시터분을 구한다는 공고를 올렸고 몇 시간 뒤 60대 여사님께서 연락을 주셨다. 


모르는 사람에게 아기를 맡기는 심정


시터여사님이 집으로 오셨다. 처음 본 사람에게 아기를 맡기고 집을 나선다는 게 참 어렵다. 그 사람이 누군 줄 알고? 그런데 정말 이도저도 할 수 없는 막막한 상황에 닥쳐보니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 사람이 좋은 사람(좋은 사람이면 좋겠지만 나쁜 사람만 아니라도 된다.)이길 바라 볼 뿐이다. 아들이 친화력이 좋은 편이고 낯가림도 없으며 그나마 의사소통과 자기표현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위안 삼았다. 


시터여사님은 아들과 친해지려고 이것저것 말을 시키셨고 레고블록으로 만든 자동차를 보고 '와~ 멋진 자동차들이 많네. 아빠가 사주신 거야?'라고 했다. 아들은 '네 근데 이제 아빠는 안 와요.'라고 답했다. 주방에서 둘의 대화를 슬쩍 엿듣고 있던 나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아빠가 사줬냐는 말에 '네'만 하면 될 것을 그런 불필요한 고급정보를 흘리다니. 여사님도 그 대답이 당황스러웠는지 '아~ 그래' 하고 화제를 돌렸다. 아들은 아빠의 부재에 대한 혼란과 당혹스러움을 마음속 깊이 담아둔 듯하다. 아직 어리니까 그것에 대한 아픔이 아무 거리낌 없이, 어른이 보기에는 맥락 없이 툭 튀어나오나 보다. 나도 애쓰고 있지만 아들도 애쓰고 있다. 


급하게 와주신 시터여사님 덕에 밀린 일을 처리할 수 있었고 잠시나마 아기에게서 벗어나 숨을 쉴 수 있었다. 아들은 이틀째 되는 날에는 할머니(시터여사님)가 무섭다고 했다. 그래도 엄마는 일하러 가야 한다는 말에 고분고분 나를 보내줬다. 아들은 평소 자지 않던 낮잠을 두 시간씩이나 잤다고 한다. '어쩔 수 없으니 엄마 올 때까지 잠이나 자자' 이런 심리였을까? 시터여사님은 가시면서 아이가 순하다며 이런 아이면 백이라도 키우겠다고 하셨지만 오히려 그 말에 가슴이 아팠다. 


코로나가 왔다.


아들의 폐렴이 끝나갈 무렵 나에게 증상이 나타났다. 목소리가 확 가라앉고 열 때문에 머릿속에 안개가 낀 것처럼 멍했다. 아들에게 폐렴이 옮았나 했는데 병원에 갔더니 코로나였다. 선생님은 격리가 권고사항이지만 되도록 사흘 정도는 집에서 머물고 가족들에게 전염될 수 있으니 식사준비는 다른 사람을 시키라고 했다. '선생님, 집에는 저랑 5살 아기 밖에 없는데 어떻게 하나요' 말이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나는 아프고 아기는 폐렴이 다 낫지 않아 코로나까지 걸리면 안 되는 상황이다. 아들을 어디론가 보내야 한다. 이런 경우는 시터를 불러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2시간 거리 지방에 사는 엄마에게 전화했지만 엄마도 일하는 상황이라 불가능했다. 전 남편에게 아기를 데리고 시댁에 가 있는 게 어떠냐고 했더니 거기 갔는데 코로나 증상이 나타나면 어쩌냐고 했다. 그러면서 본인이 집에 며칠 와 있으면서 아기를 보겠다고 했다. '코로나보다 너 얼굴 보느라 더 아프겠다!' 어디에도 애를 맡길 수 없고 어린이집에도 보낼 수 없어 결국 코로나에 걸린 나와 함께 아기는 일주일을 보냈다. 하늘 아래 아들과 나 둘 밖에 없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아들아, 우리 잘해나갈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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