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석에게선 나무 냄새가 났다.
그는 하늘색 플란넬 셔츠와 물이 빠진 청바지에 흰색 아디다스 스탠스미스를 신고 걸어왔다. 어제도 내일도 그리고 평생 그렇게만 입고 다닌 것처럼 걸치고 있는 것들이 그와 꼭 맞아떨어졌다. 카페 문을 열고 향미가 있는 테이블 쪽으로 걸어와 배낭을 의자에 내려놓을 때 팔꿈치 아래 그의 팔뚝에 힘줄이 돋아났다. 향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힘줄로 손을 뻗을까 봐 양손을 마주 잡아야 했다.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향미의 비상한 후각에 대한 소문은 알음알음 퍼졌다. 그래서 향미 앞에 선 사람들은 자신에게 무슨 냄새가 나는 건 아닐까 싶어 조심스러워하거나 대놓고 자신에게서 무슨 냄새가 나는지 알아맞혀 보라고 했다. 하지만 지석은 처음부터 향미의 후각에 대해서도 자신의 냄새에 대해서도 무심했다. 향미는 그게 신기했다. 지석이 묻지 않아서 말은 안 했지만 그에게선 나무 냄새가 났다. 가로수 가지가 잘려 나갈 때 나는 냄새. 축축하면서도 상쾌한, 그래서 자꾸 코를 킁킁거리게 되는 냄새.
엄마는 늘 향미에게 당부했다. 유별난 후각을 적당히 숨기면서 평범하게 살라고 말이다. 적당히 덮어두고 묻어두는 게 낫다고, 뭐든 눈에 띄면 좋을 게 없다고. 하지만 향미는 생각이 달랐다. 보통 사람보다 다른 그것도 특출 난 능력이 있다면 활용하는 게 뭐가 어떤가. 자신이 달라고 부탁한 적도 없는 후각 때문에 피곤하게 사는 것도 억울한데 그걸 활용이라도 해얄것 아닌가 말이다. 성인이 되고부터 향미는 남다른 후각을 이용해서 돈을 벌 궁리를 했다. 학창 시절 내기를 통한 푼돈 벌기와는 차원이 다른 방법, 제대로 판을 만들고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분명히 있을 거라는 감이 왔다.
유튜브 채널 이름은 [냄새가 난다 냄새가]로 정했다.
영상 촬영부터 편집까지 정식으로 배워 본 적이 없어서 영상은 거칠고 산만했다. 얼굴을 드러내는 건 내키지 않아 코를 제외한 부분은 블러 처리를 했다. 그렇게 하니 산만한 영상이 한층 수상해 보이기까지 했다.
향미 엄마 미선 : 향미 저년 저거 쇼하고 자빠졌네.
향미 : 본격적인 쇼는 시작도 안 했어 엄마.
향미는 엄마의 말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쇼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소소한 냄새 알아맞추기 테스트로 시작한 영상은 서서히 상황극과 몰래카메라 콘텐츠로 개수를 늘려갔다. 그러다 결국 하나가 터졌다. 커플 알아맞히기 영상. 이게 터질 줄 몰랐다는 겸손의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향미는 이게 터질 줄 알았다. 왜냐, 터지라고 제대로 만든 거니까. 영상이 한번 터진 후 촬영과 편집을 함께할 프리랜서를 수소문했다. 카페에서의 첫 만남에서 프리랜서 경력이 얼마나 되냐는 향미의 물음에 지석은 솔직히 이게 처음이라고 했다. 그 솔직함이 어이가 없는데 경력대로 돈을 줄 형편도 안되었던 향미는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다. 영상 촬영과 편집에 속도를 높여가면서 노를 저으니 신기하게 물이 들어왔다. 백만 유튜버가 화제의 인물로 향미의 채널을 언급하면서 물은 더 거세게 들어왔다. 미소를 짓는 향미를 향해 자기 일처럼 기뻐하는 지석을 보면서 잔잔하던 향미의 가슴이 찰랑거렸다. 낯설고도 기분 좋은 그 찰랑임이 멈출까 봐 향미는 지석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렇게 향미는 첫 사람 지석을 향한 첫사랑을 시작했다.
지석을 향해 비스듬히 몸을 세운 후 향미는 물었다.
향미 : 너도 궁금하지 않아?
지석 : 뭐가?
향미 : 사람들의 의심처럼 내 능력이 진짜 인지 말이야.
지석 : 음.. 너는 내가 그걸 궁금해했으면 좋겠어?
향미 : 글쎄.
지석 : 별로 안 궁금해.
향미 : 그렇구나. 사실은 말이야.. 너가 안 궁금해했으면 했어. 헤헤.
지석 : 어쩐지 그런 것 같더라니.
지석의 가슴으로 파고든 향미는 그의 목덜미와 겨드랑이에서 나는 냄새를 빨아들일 듯 허겁지겁 마셨다. 간지럽다고 웃으며 몸을 비틀어 빼내는 그의 허리께로 올라탄 향미는 그의 양팔을 잡아 머리 위로 올리고 손목을 힘 있게 쥔 후 겨드랑이로 코를 가져가 숨을 들이마셨다. 지석에게선 영원히 변치 않는 나무 냄새가 날 것 같았다. 지석에게 나는 냄새가 쉽게 시들고 마는 꽃이 아닌 백 년도 넘게 산다는 나무 냄새라서 향미는 안심했다. 향미의 채널은 순항 중이고, 한번 정점을 찍은 채널은 대박은 아니어도 중박 정도의 성과를 만들어갔다. 향미는 작업실을 겸할 수 있는 곳을 구해 미선과 살던 집에서 나왔다.
지석에게 낯선 냄새가 나기 시작한 건 그즈음부터였다. 채널이 순항 중일 때, 한창 다음 찍을 영상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고 있던 어느 날.
원래도 깔끔한 편이긴 했지만 지석은 아침저녁으로 샤워를 했다. 특히 집에 들어오면 곧장 화장실로 들어가서 한참을 씻고 나서야 향미의 곁에 앉았다. 그런 그에게선 비눗물에 담갔다 뺀 것 같은 나무 냄새가 났다.
촬영한 파일을 옮기는 중에 지석은 전화를 받겠다며 자리를 떴다. 여느 때라면 별 생각이 없었을 텐데 향미는 전화를 들고 현관문을 나서는 지석을 보면서 여기서 받아도 될 텐데 라는 생각을 했다. 향미의 노트북이 갑자기 버벅댄 건 그때였다. 전자기기가 고장 났을 때 향미가 유일하게 취할 수 있는 한 가지 조치, 즉, 전원을 껐다 켰다. 그래도 인터넷 신호는 여전히 약했다. 순간 향미는 빌라 현관에 붙은 안내문이 떠올랐다. 지석이 들어오면 내려가서 공지글도 확인하고 건물을 관리하는 분께 전화를 드리라고 해야지. 그러다 지석의 컴퓨터로 옮기고 있던 영상 파일 생각이 났다.
글자들이 냄새를 풍길 수 있었다면 지석의 노트북에 적힌 글자들은 악취 정도가 되려나. 인터넷 신호는 약했지만 영상 파일은 지석의 노트북을 향해 더딘 속도로 자리를 옮기는 중이었다. 그리고 문제의 노란 창이 보였다. 친구들이라는 이름의 카톡방.
친구 1: 지석이 새끼 횡재했네.
친구 2: 야. 근데 지석아. 걔한테선 무슨 냄새나냐? 난 그게 궁금하던데.
친구 1: 무슨 냄새겠냐? 돈냄새지.
친구 2: 일단 자료를 모아 놔야 돼. 형님이 몰카 하나 세팅해 주랴?
친구 1: 지석이가 어떤 새낀데. 진즉 해놨을걸?
친구 2: 아. 부럽다, 지석이 새끼.
친구 1: 누가 아니래? 그거 베팅 제대로 해라 지석아.
친구 2: 유튜브 약빨 떨어지기 전에 빨리 공개해야 돼.
향미는 잠깐 코로 숨쉬기를 멈췄다.
집중할 일이 있을 때 코로 숨쉬기를 멈추는 건 향미의 오랜 습관이었다. 코로 몰려드는 온갖 냄새들로부터 거리 두기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그러고 있길 얼마 후 향미는 가쁜 숨을 몰아 뱉어냈다. 향미는 컴퓨터로 손을 뻗어 노란 창을 닫고, 파일 전송의 중지 버튼을 누르고, 지석의 컴퓨터에 있는 촬영 영상을 휴지통으로 옮긴 후 영구 삭제 버튼을 눌렀다. 뭘 더 누르고 어디서부터 어디를 삭제해야 할지 모르겠는 향미는 지석의 노트북을 개수대로 가져갔다. 그리고 노트북 위로 물을 콸콸 흘려보냈다. 향미의 가슴속 찰랑임은 멈추고 지석의 노트북 위로 물이 찰랑거렸다. 물을 쳐다보면서 향미는 두 손을 얼굴로 가져가 코를 틀어막았다. 두 번 다시 냄새에 속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자신이 믿을 건 냄새뿐인데 라는 생각이 따라붙었다. 그렇다면 향미는 결국 자기 자신을 믿어야 하나 믿지 말아야 하나. 카톡방 가장 위에 있던 지석의 말이 떠오른 향미는 코를 막고 있던 손을 내려 자신의 뺨을 찰싹 때렸다.
지석 : 나, 돈 줄 생김
이 글씨에서 난 냄새는 썩어 문드러진 나무의 냄새였을까, 사랑에 취한 향미의 어리석음의 냄새였을까. 그게 무엇이라도 상관없다. 모조리 과거에 묻어 둘 냄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