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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제이 Apr 10. 2024

향미

아이들이 책상 한 개를 둘러쌌다. 앉아있는 아이는 둘, 그중 한 명은 체육복으로 눈을 가렸다. 눈을 가린 아이 맞은편 아이가 책상 위 물건 하나를 손에 들자 모여든 아이들이 내던 웅성거림이 한결 잦아든다. 눈을 가리지 않은 아이가 연필을 들어 눈을 가리고 있는 아이의 코로 가져간다. 눈을 가린 아이는 연필을 앞으로, 뒤로, 옆으로 돌리면서 골고루 냄새를 맡은 후 말한다.


“12번 김성희 연필”       


연필을 들고 있던 아이가 한쪽을 바라본다. 시선을 받은 아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들 사이에서 요란한 함성이 터진다.  


“최향미, 쩐다!” 

“저게 되네?” 

“나는 못 맞춘다에 돈 걸었는데, 아오씨.”  

“쟤 뭐야? 냄새 도른자라고 하더니 진짜 돌았네 저거” 


향미는 눈을 가리고 있던 체육복을 손으로 끌어내린다. 냄새를 맞춘 자신보다 더 신이 나서 우쭐대는 맞은편 아이를 향해 향미는 손을 뻗고 손바닥을 편다. 아이는 손바닥을 보고 고개를 끄덕인 후 향미의 손에 지폐를 쥐어준다. 돈을 손에 쥔 향미는 야무지게 교복 주머니에 돈을 집어넣는다.  


모여서 웅성대던 아이들의 소리가 서서히 잦아들고 서둘러 자리를 찾아가느라 어수선하다. 그런 아이들 사이를 헤집고 교사 하나가 나타나 향미의 책상 앞에 선다. 


“최향미, 주머니에 있는 거 꺼내.”       


교사의 눈을 쳐다보지도 않고 향미는 어깨를 으쓱하고 만다. 얼굴이 벌게진 교사는 벌점을 들어서 겁을 주지만 향미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다는 투다. 교사의 잔소리가 길어지는데 향미는 그러거나 말거나 주머니에 넣은 지폐를 만지작거린다. 자신의 재능을 통해 정당하게 번 돈, 그리고 그 돈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즐거움을 떠올리며 얼핏 웃음이 터질 뻔 한 걸 간신히 참는다.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자리에서 일어서라고 내지르는 교사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향미는 정신을 차렸다. 교사의 말대로 하지만 느릿느릿 향미는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자리에 선다. 자신을 따라 교무실로 오라는 교사의 뒤를 따라 교실문을 나서고 복도를 걷던 향미는, 교사와의 거리를 좁히며 다가가 작게 말한다.  


“쌤, 근데 전담으로 바꾸셨네요? 

한동안 끊으신 것 같았는데, 

아마 저처럼 말을 들어 쳐먹지 않는 학생 때문이겠죠?”      


교사는 잠깐 멈춰 섰다가 향미를 노려 본 후 다시 앞서 걷는다. 교사에게 더욱 바짝 다가서는 향미, 할 말이 있다는 투다. 교사의 귀 가까이에 입을 가져다 댄 향미가 말한다. 


“그런데요 쌤, 요즘 3반 담임, 영어쌤 냄새가 부쩍 쌤한테서도 나는 건 우연의 일치겠죠?”       


얼어붙은 듯 멈춰 선 교사는 향미를 무섭게 노려본다. 노려보는 교사의 눈 속에 놀라움과 두려움이 뒤섞인다. 놀라움과 두려움을 애써 몰아낸 교사는 고개를 돌리고 교무실을 향해 한 발을 뗀다. 그런 반응을 이미 예상했다는 듯 향미는 교사를 앞질러 교무실 문에 손을 잡고 선 채 말을 내뱉는다.  


“쌤 와이프는 아시나 모르겠어요. 쌤이 영어쌤이랑 이렇게나 친하게 지내시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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