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여있는 짐들을 정리하고 입지 않던 옷들과 너무 오래된 책들을 한바탕 정리하고 책상 하나를 들여 '내 방'이라는 이름을 붙였었다. 그리고 했던 몇 가지 다짐 가운데 하나가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서 보자'였다. 빌려서 보며 공책에 메모해 두고 사진으로 찍어 두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때마침 '매일 책 읽는 사람'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어 매일 주변 도서관을 돌아다니며 대출 최대 권수를 채워 가며 책을 빌리고 읽고, 일부는 눈으로 훑고 반납했다. 책 보따리를 들고 도서관으로 대출이 허락된 2주가 되기 전에 오고 가는 일상이 좋았다. 덕분에 책을 더 넓게 보게 되었다.
그동안 책이 내 손에 닿는 세 가지 경로는 도서관, 온라인 서점, 지역의 대형 서점이었다. 몇몇의 지역 대형 서점들도 점차 규모가 줄어들고, 책 대신에 문구점 같은 굿즈들이 계산대 주변에 점차 영역을 넓혀가는 것이 불편해서 자주 가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오직 도서관에서만 책을 접하는 생활이 꽤 길게 이어졌다.
그러다가 '독립 출판' 수업을 듣게 된 것이다. 그 수업은 매주 토요일 동쪽 끝의 작은 마을에 위치한 독립 책방에서 이루어졌다.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오갈 때마다 다른 독립 책방도 알게 되었다. 북토크를 진행하는 곳도 독립 책방인 경우가 있어서 방문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책방'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독립 책방이라는 이름으로 묶기에는 각각의 개성이 뚜렷했다. 한 달에 한 번 여는 책방, 일몰 시간 이후에는 문을 닫는 책방, 필사하는 공간을 두어 느리게 머물 수 있는 책방, 서로 다른 색깔과 주제로 큐레이션이 되어이 있는 책방의 시그니처 서가들, 책의 표지와 내용을 알지 못하도록 선물처럼 포장된 책이 있는 책방. 아직 많은 책방을 다녀보지는 못했지만 거기가 거기 같은 곳은 아직 한 곳도 없었다.
거기가 거기 같은 비슷한 대형 서점들의 모습과 달리 그 경제 논리에서 멀리 벗어나 오롯이 자신만의 '책'을 드러내기 위한 책방 주인의 노력과 손길이 묻어나는 공간이었다. '책'도 있지만 책을 돋보이게 하는 소품이나 공간 구성이 참 좋았다. 책방 전체가 하나의 '책'처럼 다가왔다. 그 수고로움과 열정은 한 권의 책을 쓰는 것만큼의 공들임이리라.
'책방'이 어떤 곳인지 알게 될 때 인스타그램을 시작하게 되었다. '매일 책 읽는 사람' 프로그램에 이어 '책스타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책을 읽고 피드를 올리며 연결망을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독립출판, 독립책방의 소식들을 접하게 되었다. 참으로 열심히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책'이라는 세계를 다듬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에게 다가온 책방들을 직접 찾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주말에 조금 멀리 외출을 하게 될 때면 꼭 근처 책방을 검색해 본다. 독립 책방은 열고 닫는 시간, 휴무일도 매우 독립적이기 때문에 운이 맞으면 방문을 할 수 있다. 아니면 괜히 그 앞으로 차로 지나가 보기라도 한다. 시골집을 개조해서 꾸민 독립된 공간들이 많아서 아이와 함께 가기 좋은 곳도 있고, '이런 빌라 사이에 책방이?"라는 감탄을 하게 하는 책방도 있다.
독립 책방에는 대형 서점에서는 볼 수 없는 책방 주인의 시선이 담긴 큐레이션을 볼 수 있어서 좋다. 다른 사람의 책장을 보고 있는 느낌이다. 더 많은 사람에게 가닿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책들이 반짝반짝 거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 같다. 그렇게 몇 장을 들추어 보다 보면 어느새 카드를 내미는 나를 발견한다.
새로운 원칙을 세운다.
"사야 할 책은 책방에서 사서 본다."
책방에 가서 책을 만나면 '사야 할'의 이유는 매번 바뀌지만 매번 분명한 '사야 할'이었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나의 책장으로 옮겨진다. 세상은 넓고 책방은 도처에 있으며 읽어야 할 책은 많다. 이렇게 책이라는 세계에 몸과 마음을 담글 수 있도록 멋진 신세계를 만들어 주는 책방 주인들이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