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라이브 단상
아이가 묻습니다.
"책을 읽으면 어떻게 돼?"
질문이 책을 읽으면 '뭐가 좋아?'가 아니라 '어떻게 돼?'라서 잠시 멈칫했습니다. 아이의 질문이 책의 유용함을 향하고 있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좋은 질문이 좋은 대화로 이어지려면 아이의 호기심이 다른 곳으로 가기 전에 좋은 대답을 해야합니다. 다행히 '좋은 책이란 무엇인가'라는 강연에서 들었던 내용이 반짝 떠올랐습니다.
"다시는 그 책을 읽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지. 그 책을 제대로 읽었다면 말이야."
"왜 다시 못 돌아가. 책을 덮으면 되잖아."
"그 책을 제대로 읽었으면 읽기 전의 너와 읽은 후에 너는 생각이 달라져 있으니까. 책을 읽기 전의 너랑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달라져 있는 거잖아."
"난 똑같은데. <축구선수 윌리>를 읽기 전이랑 지금이랑 그냥 똑같은데. 생각이 달라진 것도 없어. 그냥 아~재밌다, 아름답다 이렇게만 하는데."
"그게 달라진 거야. 그게 재밌고 아름답다고 그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책을 읽고 그 생각을 하게 됐으니까 달라진 거지. 네 마음속에 재밌고 아름다운 게 하나 더 생겼잖아. 씨앗이 심어진 거나 마찬가지야. 계속 책을 읽으면 그 씨앗에서 싹도 나고 꽃도 펴서 너도 재밌고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가는 거야. 자기가 읽은 책을 닮아 가는 거지."
아이의 질문에 좋은 대답을 하려고 했던 것인데 생각하지 못했던 말들이 제 입에서, 마치 제가 계속 그렇게 생각했던 것 마냥 자연스럽게 흘러나왔습니다. 제가 어디선가 듣고 읽었던 말들이 아이의 질문이라는 응결핵에 붙어서 구름이 만들어지듯 만들어진 말들인 것 같습니다. 특히 '자기가 읽은 책을 닮아간다'는 말이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책을 읽다가 어떤 부분에서 주파수가 맞아서 공명을 하듯이 제 마음에 큰 울림이 남을 때가 있습니다. 그 울림을 내 안에 가두기에 벅찰 때는 그냥 눈물이 나기도 했습니다. 슬퍼서, 아름다워서, 쓸쓸해서, 의젓해서, 당당해서, 뜨거워서, 답답해서. 갖가지 이유의 벅참이 가득 찰 때 울었습니다. 울면서 책에 밑줄을 긋기도 하고 옮겨 적기도 하며 책에 활자로 남은 그 이야기를 꼭 '기억'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기억이 저를 그 책을 읽기 전과는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좋은 책을 만나서 가슴이 뜨거워질 때마다 저에게 저는 더 좋은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읽으려고 가져온 책들, 읽고 싶은 책의 목록, 읽어야 하는 책의 제목들이 쌓여가고 있습니다. 냉장고에 맛있는 음식들이 한가득 쌓인 것 같은 기분입니다. 제 때에 먹지 않으면 그 음식들은 제대로 음미하지 못하고 먹어치우거나 입에 넣어 보지도 못하고 버려야 하겠죠. 나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유기농 재료들이 가득 있는데 자꾸 인스턴스 식품에 눈이 갔네요. 유튜브는 왜 이리 시간을 순식간에 먹어 치우는지, 그 알고리즘은 왜 그렇게 나를 잘 알고 있는 것인지....!
음식이나 책이나 내 몸으로 들어오는 것은 매한가지네요. 내가 먹는 음식이 곧 '나'이듯, 내가 읽고 소비하는 매체가 곧 '나'이겠죠. 한번 입 안으로 들어온 음식을 억지로 게워낼 수 없듯이 한번 읽거나 본 것들은 내 뇌에서 도려낼 수 없습니다. 좋은 음식을 골라 정성껏 요리하고 정갈하게 담아내어 한 끼 식사를 하는 마음으로 나에게 좋은 책을 골라 맛있게 읽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