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을 정리하며.

by 연꽃 바람

건조기에서 꺼낸 빨랫감을 개킵니다. 옷과 수건들 사이사이에 제각각 흩어진 양말들의 짝을 지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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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가 그려지고 주황, 노랑, 파랑의 색채를 뿜어내는 조금 작은 아이의 양말들을 먼저 짝을 지어 공처럼 말아 정리합니다. 때가 낀 것을 보면서 다음에는 꼭 애벌 빨래를 해야지 생각했었는데 늘 그냥 세탁기에 넣어 때에 때가 더해져 마치 양말 바닥의 원래 색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무심하고 게으른 엄마가 된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합니다. 한편으론 깔끔하고 야무지게 양말 관리를 하지 못하고 어디를 그렇게 다녔는지 아이를 향해 눈을 흘겨보기도 합니다.


태권도장에서 맨발로 수련하다가 맨발로 신발을 신고 양말은 대충 가방에 쑤셔 넣고 오는 날이 많습니다. 그런데 양말 양쪽을 제대로 쑤셔 넣지 못하는 날도 많아 혹시 나중에 찾게 될까 싶어 따로 모아둔 짝 없는 양말 칸에 오늘도 양말 한쪽이 더 늘어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혹시'를 기대했던 과거의 내가 너무 어리석었던 것 같아서 조만간 정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똑같은 하루를 보내고 세탁기 속으로 들어간 양말일 텐데 왠지 더 후줄근하고 발바닥이 더 헤져 있는 남편의 양말들도 짝을 지어 봅니다. 어떤 것들은 너무 헤져 구멍이 나기 직전이라 바로 쓰레기통으로 보내지기도 합니다. 신으면 불편할 것 같은 어떻게 이 쪼그라진 덩어리가 늘어나서 그 커다란 발가락과 뒤꿈치를 다 감쌀 수 있는 것인지 몰골이 말이 아닌 양말도 있습니다.


줄무늬, 초록색, 파란색, 빨간색, 회색, 검은색으로 비슷한 듯 다른 양말들의 짝은 찾기도 힘듭니다. 옷장에 옷이 많아도 한 계절을 최근에 산 비슷해 보이는 2~3벌의 옷을 교복처럼 입으며 지내는 사람인데 양말은 꽤 다채롭습니다. 입는 옷은 분명 아저씨인데 '그래도 마음은 청춘이여'를 외치듯이 양말은 20대 청년의 감성입니다. 한 겨울에 발목 양말이라니 보기만 해도 발목이 시려오는데 남편의 발목은 아직 젊은 것 같습니다.


이제는 아이의 양말보다 조금 큰 정도인 제 양말도 정리합니다. 검은색이 대부분이고 언제 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오래된 양말이지만 많이 걸어 다니지 않아서인지 버리기도 뭐한 양말들을 말아 정리합니다. 그 중에는 여동생이 보고는 이게 무슨 양말이냐며 한마디 했던 무릎까지 오는 양말도 있습니다. 겨울에는 발목이 아니라 종아리까지 시린 것 같아서 무릎까지 오는 긴 양말을 신습니다. 바짓단을 타고 올라오는 한기를 막아주는 고마운 양말입니다. 사실 그 위에 다리 토시까지 하고 다니기도 합니다.


그리고 제 지갑을 열어 사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경로로 나에게로 온 스포츠 브랜드의 양말, 꽃무늬 양말들도 있습니다. 주로 집안에서 신는 양말들입니다. 진정한 멋쟁이는 양말을 잘 챙겨서 신는다는데 요즘 양말들은 너무 튼튼해서인지 헤지지가 않아서 버릴 일이 없습니다. 멋쟁이가 되려면 멋진 양말을 사야 할 것 같은데 이미 양말이 너무 많네요. 이번 생엔 멋쟁이가 되긴 틀린 것 같습니다.


하루 동안 각자의 삶의 현장을 누볐을 양말들이 세탁기 속에서 만나 거품 속을 빙글거리며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까요? 양말들은 그렇게 세탁이 되는 1시간 동안 함께 리듬에 맞춰 돌고 돌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짝을 지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다시 힘차게 세상을 누빌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삶을 마주 앉아 이야기할 시간을 갖지 못했습니다. 세 명이 한 자리에 모여 '가족'이 되어야 하는데, 가족이라서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서 가족이 되는 것이라는데, 오늘도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함께 하지 못한 날도 있지만 함께 한 날들도 있었으니 괜찮다고, 앞으로는 함께 한 날들이 더 많아지겠지 라고 위안을 합니다.


양말을 정리하며 각자가 보냈을 시간들을 생각하며 '수고했어'를 되뇌며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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