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보아서 미안해

by 연꽃 바람

꽃은 참 예쁩니다. 가까이에서 보아도 멀리서 보아도, 가끔 보아도 자주 보아도 예쁩니다. 그 예쁨을 가까이 두고 싶어 화분에도 심어 놓고 화병에 꽂아 둘 때도 있지만 막상 시선을 멈추고 제대로 보아주지는 못한 것 같아 미안한 생각도 듭니다. 바라봄의 대상이 되는 것이 꽃이 스스로 정한 목적은 아닐 테지만 괜스레 모두의 꽃에서 나만의 꽃으로 욕심을 내어 집안에 들여 놓은 것이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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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노랑을 온통 담고 온 꽃은 봄을 볼 수 있어 참 좋습니다. 입으로 되뇌는 노랑이라는 말에 다 담을 수 없는 봄의 노랑이 꽃에는 고스란히 담깁니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산수유, 개나리의 노랑, 이름도 이국적인 카랑코에의 노랑,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 노래가 되는 프리지아의 노랑은 모두 다르지만 모두 봄입니다.


3월 2일, 입학을 하는 아이를 위해 프리지아와 안개꽃을 섞어 꽃다발을 선물했습니다. 아이의 입학식 사진 속에 담김으로써 이 세상에 자신의 흔적을 남긴 것으로 소명을 다한 듯 프리지아는 시들기 시작했습니다. 프리지아가 아니라 봄이 시드는 것 같아서 조금 시든 듯싶으면 줄기 끝을 잘라내고 다시 깨끗한 물로 갈아주며 ‘바라봄’의 시간을 연장했습니다.


3월 13일, 화병 속에서 그래도 일주일 넘게 향기로 색깔로 꽉 찬 존재감을 주었던 프리지아가 완전히 시들어 버렸습니다. 이제 화사했던 봄의 화병에는 하얀 안개꽃만 남았습니다. 프리지어의 노랑에 가려져 있는 듯 없는 듯 ‘섞여’ 있던 안개꽃이 프리지어를 걷어내니 보이기 시작합니다. 안개꽃만으로도 ‘다발’이라 부를 수 있을 풍성한 자태를 뽐냅니다. ‘나도 여기 있었어’라고 말하는 안개꽃을 보니 정여민이 <꽃>의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내가 더 나중에 보아서 미안하다”


약방에 감초가 있다면 꽃방에는 안개꽃이 있달까요. 입학식의 프리지어 꽃다발에도 밸런타인데이의 장미 꽃다발에도 안개꽃은 화려함들 사이에서 화려함을 돋보이게 하고 부족한 듯한 볼륨감을 풍성하게 채우면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화려한 꽃들이 시들어갈 때 홀로 여전함을 과시합니다. 그제야 사람들은 안개꽃이 분명한 ‘꽃’으로서 그곳에 존재함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약방의 감초와 같은 사람, 꽃방의 안개꽃과 같은 사람도 있을 것 같습니다. 드러나지 않게 늘 그곳에 있어서 평소에는 존재감이 없지만 그가 없는 순간에는 뭔가 빠진 허전함과 완성되지 않은 듯한 빈틈이 느껴지게 하는 사람. 그리고 누군가가 아니라 혼자 있을 때는 어떤 일을 해내기에 다소 부족하다고 평가받지만, 막상 그 혼자 있을 때도 ‘꽃’으로 당당히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사람. 상상으로 그려본 안개꽃을 닮은 그 사람을 어디서든 만나게 된다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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