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라이브 단상
오늘날 교육비용의 증대는 실상 투자라기보다는 생존 비용에 가깝다. 이만큼 투자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교육비용의 과잉 투자를 이끈다.
-<우리는 왜 이런 시간을 견디고 있는가> 18쪽
바로 교육산업입니다. 영국을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라고 했다면, 사교육 시장은 '불이 꺼지지 않는 산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교육'과 '시장'이 나란히 놓일 수 있는 뻔뻔함은 아이들의 '미래'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우리 주변에 너무도 흔하게 존재합니다.
최근에 본 영화 <메기>에 등장한 대사입니다. 개미귀신이 파놓은 것 같은 빨려 들어가는 순간 죽음이 예고된 구덩이에 빠졌다면 그 구덩이를 깊이 파고들 것이 아니라 빠져나오는 일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구덩이가 어떤 구덩이인가, 구덩이가 왜 생겼을까 라는 질문이 아니라 일단 "어떻게 하면 구덩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구덩이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행동을 해야 합니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하여 진청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단꿈에 마음은 침식되어 깨지 않을 긴 잠에 든다 -자우림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불안은 에너지가 될 수 없습니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하고 누구도 깨트릴 수 없는 마음의 벽을 쌓게 만들어 긴 잠에 빠지게 합니다. 현재의 시간에 불안이라는 이름의 불쏘시개로 불을 붙여 연료로 태우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오늘날의 아이들과 청년들은 영혼에 불이 옮겨 붙은 줄도 모르고 그렇게 타들어 갑니다.
그렇게 시간을 견디며 맞이하게 될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구덩이를 계속해서 더욱 깊게 파고 들어가면 구덩이에 빠진 현재에서 더 깊은 구덩이에 빠진 미래를 맞이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잠시 숨을 고르며 구덩이를 파던 삽을 내려놓고 모두가 향하는 어딘가가 아니라 자기만의 그곳을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잠시 불안한 마음을 내려놓고 지금 발을 내디딘 곳이 어디이고 자신의 발걸음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목표를 향해 달려 나가고 잠을 줄이며 공부하는 모든 이들이 구덩이에 빠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하늘 아래 같은 사람은 없기 때문에 사람마다 욕구는 다 다를 텐데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도 하지 않은 채 곁눈질로 바라본 다른 사람의 욕구를 자신의 것인 줄로 알고 모두가 한 곳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아닌지 '질문'을 던져 보는 것입니다. 불안이라는 눈가리개를 벗고 진짜 세상, 진짜 내가 발 디딜 곳을 응시하면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서 찾은 질문을 하기 시작하면, 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내가 선택한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에도 '불안'은 있겠지만 그 불안은 세상에 대한 원망이 아니라 나의 '성장'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잡아주던 손을 놓고 스스로 걸음마를 뗄 때, 넘어졌다 다시 일어서 넘어질듯 균형을 잡아 결국 기어이 스스로 걸어나가던 그 때처럼 '불안' 속에서 균형을 잡고 나아가는 모습을 그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