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절댓값이 너의 방패가 되리라

by 연꽃 바람

열대야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밤새 에어컨을 틀고 며칠 잤더니 아이의 코에서 바로 콧물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에어컨을 끄면 조금 덜 한 것 같아서 아이기 잠이 들면 에어컨을 끄고 선풍기를 틀고 자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 수면의 질이 떨어졌습니다. 자다가 중간에 일어나 에어컨을 끄고 선풍기를 켰고 자다가 다시 아이가 뒤척이면 너무 더운가 싶어 다시 에어컨을 켜기를 반복했습니다. 저는 잠귀가 밝은 편이 아닌데 아이의 뒤척임에 바로 반응하게 됩니다.


누군가의 필요에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저의 몸이 저에게도 참 낯섭니다. 단잠을 깨우는 뒤척임이 밉지가 않고 뒤척임에 반응하는 제 몸의 기민함이 다행스럽습니다. 아이가 편안히 잘 수 있게 늦지 않게 조치를 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 저의 움직임은 반사적이기 때문에 어떤 에너지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판단과 의지가 개입할 여지가 없이 즉각적으로 움직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반응의 이름은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랑은 절대적 사랑입니다. 수학 시간에 배웠던 절댓값이라는 것이 떠올랐습니다. 값 앞에 붙어 있는 positive 양수도 negative 음수도 전부 고유의 거리값으로 보는 수학의 약속입니다. 값의 앞과 뒤에 방패를 세운 것처럼 생긴 기호로 절댓값을 약속합니다.


http://www.zoefact.com/assign/index.html


'0'이라는 세상의 기준에 의해 어떤 것은 긍정적으로 어떤 것은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상대의 모든 모습에 절댓값이라는 방패를 씌우고 고유의 값으로 상대를 바라보는 절댓값의 시선을 갖는 것이야말로 절대적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가하는 시선을 거두고 양수(+)니 음수(-)니 하는 구분 짓기로부터 고유의 모습을 지켜주기 위해 방패를 씌워주는 일이 사랑이 아닐까요?


그리고 제가 받고 싶은 사랑도 그런 사랑 같습니다. 선물을 주고 칭찬을 주는 사랑도 좋지만, 그냥 나를 나대로 받아들여 주고 '발전'과 '평가'라는 세상의 기준으로 나를 어느 한쪽으로 몰고 가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관심이나 조언은..... 폭력적.... 일 수 있습니다.

'0'이라는 세상의 기준도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그 기준은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일부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합의한 세상의 '0'에 의해서 어느 한쪽으로 구분 지어지기 싫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존재도 그가 합의하지 않은 세상의 '0'에 의해 한쪽으로 구분 지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세상에 나 하나라도 절댓값의 방패로 막아주고 싶습니다.


언제까지 저의 방패가 아이에게 힘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이가 자랄수록 아이의 세계는 세상의 '0'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아이가 세상의 '0'에 대해서 어디까지 이해하고 받아들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원래 그런 거야'라며 세상의 '0'을 그냥 받아들이는 존재가 아니라 세상의 '0'을 비판하며 자신만의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훗날 아이도 누군가에게 절댓값의 방패를 씌워줄 수 있는 절대적 사랑을 하는 존재가 되기를 바랍니다.


저도 좀 더 단단한 방패가 될 수 있도록 세상의 '0'에 의문을 품고 좀 더 괜찮은 '0'을 찾는 노력을 계속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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