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이 서로 다르지만 ‘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것과 잃게 되는 것들에 대한 정서는 서로 통하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무려 14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 <맘마미아>를 떠올리면 여전히 귓가에 생생하게 들리는 노래가 있습니다. 결혼식 준비를 하는 소피를 뒤에서 바라보며 부르던 도나의 ‘slipping through my fingers’입니다.
성장하여 자신의 품을 떠나게 될 딸에 대한 이상한 아련함과 거부할 수 없는 죄책감이 담긴 가사는 미리 보는 미래 같은 느낌이 듭니다. 아무 생각 없는 미소로 굿바이라고 말하며 책가방을 손에 들고 집을 나서는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은 벌써 긴 떠남을 예감합니다. 엄마 없이 홀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지는 성장의 과정에는 분명 함께 하지 못해 미안했던 아이의 아픔과 상실이 있었겠지요. 잠시 숨을 고를 사이, 정말 찰나 같은 순간인데 아이는 어느새 이렇게 자라 버렸습니다. 아마 곧 이별이 다가오겠지요.
엄마도 처음 겪는 엄마의 시간을 헐떡이며 보냈고 어리게만 느껴졌던 딸도 때로는 무언가를 얻고 또 무언가를 잃으며 '독립'이라는 시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엄마의 마음은 아무 생각 없이 웃으며 책가방을 손에 들고 굿바이라고 인사하던 딸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이번 안녕은 긴 안녕이겠지요.
아이와 함께한 시간과 내 안에 있는 아이의 모습들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만 같습니다. 방금 식탁에 앉아 함께 밥을 먹었고 지금은 늘 있던 그곳에서 잠들어 있지만, 바로 눈앞에서 잡을 수 있는 이 모습들도, 영원이 이곳에 멈춰 있고 싶은 순간들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갑니다.
아이의 성장은 자연스럽고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알지 못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엄마의 눈에는 위기인데 아이는 자연스러운 성장이라고 말할 때도 있습니다. 아이가 맞이하는 삶의 변곡점마다 정말 도라에몽의 타임머신을 타고 얼른 10년 뒤로 잠시 다녀오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미래를 알 수 있다면 위기인지 성장인지 기회인지 분명히 알 수 있을 텐데 알 수가 없어 우리는 갈등하게 됩니다. 그리고 엄마는 답이 없는 '만약에'가 사는 미로에서 홀로 외로운 길찾기를 하기도 합니다. '만약에'는 미로 속에서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괴물 같기도 합니다. 아이가 뱃속에 있었던 오랜 과거로부터 아이가 살아보질 못할 미래로 이어지는 길고 긴 미로라서 끝이 없습니다. 미로에서 길을 찾은 것 같아 기뻐하고 탄성을 지르고 편안함을 느끼다가도 어느 순간 '만약에'라는 녀석이 꼬리에 꼬리를 물듯 집요하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면 이내 무릎을 꿇어 머리를 뜯게 됩니다.
엄마가 미로 속에서 외로운 길찾기를 하는 동안에도 아이는 아이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아이와 엄마가 사는 시공간은 다른 것 같습니다. 시공간이 서로 교차하는 지점도 있지만 아이가 성장할수록 교차점은 점점 줄어듭니다. 그것이 성장이고 독립이 아닐까요? 아이의 홀로서기를 지켜보며 갑자기 밀려드는 익숙한 슬픔입니다.
내가 이미 겪었던 인생의 슬픔을 겪기 위해 떠나는 것이며 그렇게 가버리면 딸의 진짜 세상에 나는 들어가 볼 수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아이 보여 줄 세계는 단편적이지만 엄마는 아이가 보여주는 그 세계의 단편만으로 추리하고 추론하며 아이의 현재와 미래를 떠올려봅니다. 그냥 지켜보고 기다려야 할 때인지 나중에 내가 이 일로 죄책감을 느끼게 될 테니 당장 결단이 필요한 일인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그 답답함과 고민 속에서도 시간을 흐르겠지요. 엄마가 멈춰 버린 시간 속에서 고민과 후회 사이에서 서성일 때 아이는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요? 알고 싶지만 완전히 이해하고 들여다볼 수 없는 아이의 세계.
이 글을 쓰며 다시 노래 가사를 음미하며 들어보니 마음이 울렁울렁하여 제 눈도 도나의 눈을 닮아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