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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수ONSU Oct 26. 2022

왜 산천어축제에 가지 않는가

커지는 오락산업에 이용되는 동물들

결론


인간은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려고 불가피하게 다른 생명을 취한다. 식물은 생명이지만, 지각이 없다. 고통을 느끼거나 표현하지 못한다. 이런 이유로 인간은 식물을 취해 삶을 영위할 수 있다. 하지만 날짐승ㆍ길짐승은 생명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또 죽음의 고통을 느끼고 표현한다.


"동물을 잡거나 먹지 말란 것이냐?"


누군가는 이렇게 되물을지 모르겠다. 나는 동물의 생명을 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놀이와 오락으로 동물을 이용하는 것을 말라는 주장이다.


동물 중에서 사람을 해치는 동물은 이치상 잡아 죽일 수 있고 또 사람이 기르는 가축들은 사람에 의해 길러졌기에 사람에게 그 생명을 내줄 수 있다. 사람이 키우는 동물, 곧 가축은 본디 먹기 위해 키운 것이기에 사람이 그 생명을 취할 수 있다. 그러나 동물의 생명을 제한 없이 취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동물을 이용하는 축제 외에도 동물은 일상적으로 인간의 오락과 유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사람들은 동물원, 야생동물카페, 동물관광상품 등을 별다른 비판의식 없이 여가활동으로 즐긴다. 실내 카페에서 너구리, 도마뱀 등 야생동물을 접촉할 수 있는 야생동물카페는 이색 데이트 장소로 떠오르며 서울 홍대 거리 등에서 급속히 확산되었다.


화천 산천어축제를 사례로 다양한 층위에서 작동하는 인간-동물의 관계와 생명정치의 전개양상을 살펴보았다. 다수의 생명정치의 장은 서로 타협하거나 마찰하며 정치생태학적 논의를 발전시켰다. 이 과정에는 인간・비인간 행위자와 기술, 담론, 실천 등이 관계하고 있으며, 지속적인 변화의 흐름 속에서 산업, 축제, 담론은 (재)형성된다. 산천어는 생명정치 안에서 ‘판매될 상품으로써의 산천어,’ ‘유희의 대상 혹은 먹을거리로서의 산천어,’ ‘고통받지 않을 권리를 지닌 생명체로서의 산천어’ 등 다양한 존재로 위치하였다. 물론 초기에 산천어는 ‘양식 산천어’로서 야생산천어-인간의 관계와는 다른 관계적 양상으로 나타났지만 결론적으로 산천어축제에 사용되는 산천어의 생명정치와 그 명확한 논리 및 목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논리와 인간-동물의 관계 설정은 이론들에 따라 차이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 동물 학대 방지라는 목표를 공유한다. (한국지역지리학회지 제27권 제2호(2021)


화천 산천어축제에서 물고기를 잡는 행위가 생존을 목적을 하지 않으면서 동물에게 고통을 주고 놀이를 하는 측면은 생각해보고 개선해야 하는 점이다. 예를 들면 개미를 실수로 밟아서 죽인건 학대라고 보기 어렵지만, 재미로 개미로 돋보기로 태워 죽인다거나, 개미를 토막내서 죽이는 건 학대인 것처럼 말이다. 결국 인간의 기준으로 학대이냐 아니냐를 결정하지만 적어도 살아있는 생명체를 인간에 의해 불필요한 고통을 주는 건 잘못된 방식이다. 산천어를 먹는거에 대해 뭐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산천어를 인간의 즐거움과 재미때문에 고통을 주는 방식은 바꿔야할 필요성이 있으며 개선되어야 할 문제가 있는건 확실하다. 한국에서도 축제가 다양해지고 있는 만큼 시대의 변화의 따라 동물권 침해 문제나 환경 보호를 고려하는 축제로 거듭나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것은 분명히 가치 있는 고민이면서 화성시를 포함한 우리가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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