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향 짙게 풍겨오는 아침

황금알을 낳는 나무

by 꿈그리다

이른 아침 공기 중으로 퍼지는 달콤한 향기

대체 이것은...? 어디서 나는 거지?

벚나무가 선사한 그늘길을 걸으며

나는 연신 코를 킁킁댄다.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과실수는 없는데?

살랑!~ 바람이 또 한 번 내 코를 자극한다.

왔던 길을 다시 돌아 두리번거리길 두어 번,

향기의 끝에 작은 오솔길이 보인다.

평소에 보이지 않던 작은 길을,

나는 심봉사 눈뜬 그때처럼

번쩍 띈 두 눈으로 길을 살피며

재빠르게 내려간다.

(와~이럴 때는 근사한 BGM가 필요한데 나무 뒤로 번쩍번쩍 CG도 들어갔으면 좋겠고!)

이런 내 마음을 알았챘는지

새들의 지저귐 배경음악과

싱그런 아침햇살이, 대신해서

이 황홀한 장면에 어울리는 CG를 선사한다.


"세상에! 그토록 걷던 길인데 여기에 네가?"


주렁주렁 황금빛 열매를 긴 가지가

늘어지도록 달고 있는 살구나무를 만났다.

이제야 널 보게 되다니!

황금빛 열매 주렁주렁
살금살금 다가가
살짝 손을 얹어보니
보들보들 아기 볼같아
가만히 들여다보니
솜털도 보송보송
툭!
하나 떨어지고
또 하나 투둑 떨어지네.
그 향기가 달콤하다 못해 그윽하다.
숨 깊이 들여마시고
향기를 삼켜본다.
재빠르게, 호다닥!
누가 보았을까?
주먹 안에 쏙
감춘
살구 삼 형제 _꿈그리다
작은 손바닥안에 살구 세 알 : PHOTO BY 꿈그리다

예전의 나 같으면 쳐다도 보질 않을 열매다.

살구는 나에게 복숭아도 아닌 것이

자두도 아닌 것이

정체성이 애매모호한 그저 그런 열매였다.

가끔 마트에 보기 좋게 포장된 살구를 보면 이 열매를 돈 주고 사 먹나? 마음을 갖고 있던 터였다.

썩 매력적이지 못했던 이 작은 열매가 오늘은

내 마음을 온통 흔들어 놓았다.


내 손에 가지런히 올린 이 열매들이 언뜻 보기에

삶은 달걀노른자 같기도 하고

손바닥을 간질이는 솜털들이

우리 아기 덮어주던 융털담요 같기도 하다.

잘 익어가는 황금빛 열매들 :PHOTO BY 꿈그리다
햇살에 더욱 빛을 발하는 열매들 : PHOTO BY 꿈그리다

걸음을 멈추고 잠시 망설인다.

주렁주렁 달린 열매들을 보며

"따갈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본다.

"요즘 세상에 남의 사유지 열매 따다가

무슨 봉변을 당하려고? 사실 길가 나무지만 혹시, CCTV가 나를 찍고 있을지 몰라! "

내 안의 또 다른 쫄보가 내게 속삭인다.

"나무아래 떨어져 뒹구는 열매들은 괜찮을 거야."

슬며시 누가 볼까 손 한 움큼 하나, 둘, 세엣

세 알을 담아본다.

푸드덕, '나 여기서 지켜보고 있다!'

높은 가지 위에 있던 물까치가

내게 경고를 울려준다.

바닥에 흐트러지게 떨어진 살구 열매들을

산과 들에 사는 친구들에게 양보한 채


살구 세 알을 소중히 모시고 왔다.

텀블러 안이 환해진다.

향긋한 살구향이 가득 찬다.

쉿!

황금알을 낳는 나무의 장소는 비밀~


산책을 마치고 살구 세 알을 친구 J에게

자랑을 하자

카톡 너머로 보내준 그녀의 사진

나보다 더 살구부자 : PHOTO BY 플로리몽

감사하게도 저녁 무렵엔 어느새

살구쨈이 되어 내게 왔다.

정성껏 졸여 탄생한 살구쨈 : PHOTO BY 꿈그리다
볼빨간 살구 : PHOTO BY 꿈그리다

삶을 살아가는 동안

멈추지 않으면 놓쳐버리는 소중한 장면들이 있다.

어쩌면 오늘 나에겐

아침의 오솔길 끝 살구나무

역시 그중 하나였을지도 모르겠다.

잠시 멈춤의 시간이

더 큰 삶의 기쁨을 발견하게 한

'선물'같은 오늘을

꼭 기억하고 싶다.

짙은 살구향과 함께.


By 꿈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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