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품은 흑진주

버찌

by 꿈그리다

영롱하게 까만 네 얼굴에 반해

발걸음을 멈추고 살짝

기울어진 너의 가지 끝에 손을 얹는다.

잘 익은 열매에 '반짝'

나의 얼굴이 비추인다.

마알간 너의 열매가

유독 이 아침에는

더욱 아름답구나.


하늘거리는 꽃 뒤에 만난 버찌

2월의 꽃샘추위 이기고 나와

핑크빛

터널을 선사하더니

어느새 이리 귀여운 열매들을 달았구나!

'천천히!'

라는 푯말이 무색하게도

눈부시게 아름답던 꽃잎들을

부리나케 떨구고,

그 떨군 자리에

하나둘씩 쏘옥 나온 버찌 열매들

너의 모습은 마치

조개가 오래도록 품어 준

흑진주 같아

숲길에서 만난 흑진주 버찌!

한 잎 베어 무니

혀끝에 달달함이 묻어난다.

큰 벚나무 옆구리에 빼꼼

아침 이슬을 잔뜩 머금은 채

까무잡잡한 너의 얼굴을

맘껏 뽐내고 있구나!

빛나는 너의 얼굴에

온갖 동네 비밀이야기 다

품었구나.


앞집 사는 일곱 살 영희

간밤에 이불에

지도 그린 이야기.

건넛마을 진구의 짝사랑 이야기

이틀 전, 이웃집 경미가

몰래 제 동생 저금통 털은 이야기

옆집 철수랑 몰래 데이트하고 있는

삼거리 양장점 수희네 언니

-바람에 나부끼는 동네이야기들을

네 열매 속에

깊이 품었구나.


아침이슬 머금은 버찌 두 알
붉다 못해 까만 열매
눈부신 여름햇살
버찌가 익어가는 과정이 한 눈에
한때는 이토록 붉었던 너
누가누가 더 빛나나

완두콩 만한 초록열매가

빨강, 보라, 흑진주 빛깔로

반들반들하게

무르익어가는 계절!

버찌길

길 위로 떨어진 열매들이

깔아준 이 검붉은 버찌길!

자연이 선사한 레드카펫이로다.


글, 사진 : 꿈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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