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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그리다 Sep 23. 2023

 산밤

뾰족 가시너머 빛을 품다.

땅위의 성게같은 밤송이들: by 꿈그리다

만물이 익어가는 계절이 제법 깊어갑니다.

들녘은 어느새 황금빛 물결로 채워지며

수확의 계절이 다가옴을 알리고 있습니다.

가을햇살은 오늘도 세상의 모든

열매들을 향하여 사력을 다해 볕을 내리쬡니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진 요즘,

각종 열매들은 추석이 오기 전에 밥상 위에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익어갑니다.


너른 논의 쌀도

높은 가지 위의 감도

뾰족뾰족 가시를 세우고 있던 밤도

한낮의 가을볕을 흠뻑 충전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근처 나즈막한 산 근처에 다다르니

툭! 투툭! 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또르르, 동그란 알밤 하나가 발 앞에 멈춰 섰네요.

세상에! 방금 밤송아리를 탈출한

밤톨이네요!

어쩜 이리 반질 반질 윤이 나는 건가요?

땅 위의 소식이 궁금했을까요?

세상에서 제일 신나는 비행을 한 듯한 밤톨이

부드러운 껍질을 자랑합니다.

이렇게 예쁜 밤톨이기에

뾰족한 가시를 그리 세우고 있었을까요?

작고 동그란 밤톨이 단단해질 때까지의

여정이 눈에 선합니다. 

밤꽃이 한창인 유월 내내

꿀벌들이 꽃가루를 이 꽃 저 꽃 옮겨주어

 이토록 예쁘고 광나는 열매를 선물해 주었네요.

익어가는 밤: photo by 꿈그리다

여름내 동그라미 열매주머니를

키워가며 영글고 있었겠지요.

이제 연둣빛 가시 돋친 열매가

 짙은 갈색의 열매로 변신했습니다.

제법 무거워진 밤송이들은 밤알들을

여행 보낼 준비를 합니다.

"아이고 무거워라! 이젠 곧 우리가 작별을 해야 할 시간인가 보다."

서서히 밤송이 끝자락의 문을 열기 시작합니다.

사이좋게 알밤 삼 형제가 나란히 가시 가득한 밤송이 안에 단단히 붙어 있습니다.

"우왓! 드디어 낙하시간입니다!"

"모두 꽉잡앗! 이제 땅으로 행이닷!"

툭!

       슝~~~

단단한 바닥에 밤톨들은

한 몸이 되어 떨어집니다.

 녀석은 나뭇잎 깊이 숨어 봅니다.

사람도, 숲동물도 만나고 싶지 않은가 봐요.

"바스락 나뭇잎 사이에 숨어 있으면,

아무도 모르겠지?"

오~ 바닥을 보니 이렇게 세상을 향해

낙하해 온 밤톨 형제자매들이 엄청 많구먼요.

납작 한밤, 둥근 밤, 뾰족 한밤, 세모난 밤

까무잡잡 한밤, 흐릿 한밤, 여물지 못해 하얀 밤

모양도 색도 모두 다 다릅니다.

하지만 모두 그 고유의 반짝임을 가지고 있네요.

계절을 듬뿍 담고

가시너머 깊은 빛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단조롬하게 나란히

줄 세워 봅니다. 잘 살펴보세요.

정말 같은 모양, 같은 색이 하나도 없지요?

정말 신기하기도 하죠.

올망졸망 밤톨들 : photo by 꿈그리다
예쁜 소녀얼굴 모양의 햇밤톨 : photo by 꿈그리다

 중 제일 광나고 동그란 밤톨입니다.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운 가을열매

많이 사랑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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