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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사로운 인간 Apr 04. 2024

2020년 8월, 덜컥 판교에 있는 회사에 합격했다

장거리 출퇴근 서사

직장에서의 업무 도메인 경험이 제한적이었기에 가뭄에 콩 나듯 나오는 이직의 기회, 게임회사 □□기획 경력직 채용공고에 망설임 없이 입사지원했다. 우선은 항공사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을 탈출하는 게 급선무였다


당시 항공사에서도 나쁘지 않은 퍼포먼스를 보여서였는지, 부사장님으로부터 항공사의 모기업에 해당하는 인사팀장을 소개받고 그룹 안에서 이동하는 기회 제안을 받으며 또 다른 기회를 엿볼 수 있는 상황이 주어졌다.


선택권이 없던 상황에서 생긴 기회들로 김칫국을 여러 번 들이붓는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개인적인 우선순위는 그래도 애정을 가지고 있는, 존경하는 부사장님이 기회를 열어준, 항공사에 다시 돌아올 기회를 여유로운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는, 출퇴근거리도 적당한 모기업으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개받은 팀장과 티타임을 진행했다. 지주사에 계신 분이라 그런가, 아니면 사람이 급한 상황은 아니라 그런가, 또 아니면 내가 별로였던가. 지나서 보니 소개해주신 부사장님의 안면을 세워줄 정도의 격식정도만 갖춘 형식적인 자리였던 것 같다. 당장은 이동하기 위한 자리는 답보되어 있지 않으니 몇 개월 기다려봐야 할 것 같다고, 이마저도 확답은 할 수 없다고 했다. 


불쾌했다. 씁쓸함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버스에서 터덜터덜 밖을 바라보며 멍하니 생각에 잠기려는데 031로 시작하는 모르는 번호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스팸이겠지 하고 받지않았는데 계속해서 연락이 왔다. 통화버튼을 누르니 지원한 게임회사로 서류전형에 합격했으니 면접을 보러 오라는 친절한 목소리가 버스 안 소음과 함께 밀려 들려왔다.


항공사에서 버티는 선택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는 벼랑 끝에 내몰린 상황이었기에 바로 수락했다. 면접당일 버스 1번 지하철 2번, 2시간의 이 길이 내 출퇴근길이 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은 일단 미뤄두기로 했다. 일단 합격하자. 그 뒤에 생각하자.


운이 좋았던 것 같다. 1차 면접에 합격했고 이어 2차 면접에도 덜컥 합격해 버렸다. 마지막으로 입사일까지 조율하고 나니 스멀스멀 불안함이 밀려왔다.


'와이프에게는 뭐라고 하지?'

'출퇴근은 어떻게 하지?'


쿠키 스토리.

최종 면접은 회사 근처 카페에서 임원분과 15분 내외의 가벼운 자리였다. 갑자기 팀원들을 부르시더니 6명에게 둘러싸여 어색한 상견례도 아닌 면접도 아닌 그런 자리가 길게 이어졌다. 돌아가는 길에 생각했다.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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