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우리는 종종,
타인의 깊은 상처를 두고도
제 손톱 옆에 올라온 거스러미에
온 신경을 쏟기 마련이다.
누구도 쉽게 부정할 수 없는,
또한 그런 자신이 사무치게 답답하더라도.
그러지 않길 바라나,
매번 발견하고 만다.
조금의 손해도 보지 않으려
연신 침을 묻히던 그 입술을.
길게 보면 결코 아무것도 아닐
사소함에도 굴하지 않고
필사적으로 물어뜯었으리라.
마치 그의 잘남이
당신의 큰 손실이라도 되는 것 마냥.
사갈 같은 그 입술이
얼마나 구릿한 냄새를 풍기는지
얼마나 더 독을 품은 채 되돌아올지
당신이 과연, 생각이나 해 본 적 있을까?
아무리 고민해 봐도 짐작조차 하지 못하겠다.
그 알량한 자존심이 도대체 무어길래,
스스로를 소실시키려 하는지.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한 가지 바랄 수 있다.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 했으나,
그로 인해 다른 이에게 어떻게 비치는지
상대에게 어떤 상처가 되는지
미처 알지 못해
당신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말을
하게 되었던 건 아닐까, 하고.
상대방,
특히 마주치고 싶지도 않은 이에게라면
누구나 당연히 그럴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면 우린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나는,
모르겠다.
사실 나의 해답을
넌지시 건네 볼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않으려는 건,
내가 찾은 답이
오직 내게만 좋을 ‘애착인형’과도 같을 것이기 때문에.
그렇기에 명확히 하지 못하고
다만, 그대의 마음에 닿고자 이 글을 적은 것은,
그의 잘남은 그대와 아무 상관없다.
그에게 좋은 일이, 결코 그대에게 나쁜 일이 될 수 없듯.
그의 어떤 것도 그대에게 닿을 수 없음을
그대가 꼭 알았으면 한다.
설령 그것이
그대의 아이디어로 일군 성과라 할지라도.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이었다.
무슨 대회였는지 확실하지 않으나
베낀 아이디어가 우수상이 되어
기쁜 표정을 짓던 ‘흐릿해져 버린 너’를,
말없이 바라보던 나를,
지금은 그 실루엣만 남아있다.
기억 구석구석을
한참 동안 더듬은 끝에야 떠올릴 수 있었다.
당시에는 분명히 화가 났던 것 같은데
어느샌가 그때를 까맣게 잊고 살았더라.
누구보다 억울했을 내가.
이 한 가지만 예로 들었을 뿐,
살면서 어찌 억울한 일이 이것뿐이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단언할 수 있는 건,
제아무리 가슴 사무치는 일도
시간에 묻히고, 새로운 사건에 밀리고
결국, 아무것도 아닌 채
그저 지나온 길이 되어버릴 거란 걸.
이전에 지나쳐온 수많은 굴곡과,
앞으로도 숱하게 파도가 몰아칠 테지만,
가시밭길을 앞두고 있는 지금의 나는,
잘 살고 있으니.
쉽지 않을 여정이지만
결코 무너지지 않도록,
스스로 불행을 만들 때마다
되뇌는 질문이 있다.
[그 사람이 뭐길래 내가 기분 나빠야 하는 거지?]
[왜 내가 나를 좋아하지도 않는 그 사람 때문에
이 행복하기 바쁜 인생을 고달파해야만 하는가.]
이 질문의 해답을 구하는 것은,
온전히 그대의 몫일 것이다.
독을 품었던 그대에게 조심스레 전한다.
그런 사람 때문에 불행해지지 말길.
결국, 보지 않으면 그만인 사람이니까.
스스로 불행에 엮여들지 말고
좀 더 넓은 세상에서
마음 맞는 사람과 함께
끝을 바라보길.
혹 그 길이 가시밭길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