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갈대숲 사이에, 꽃 피우기 위해
세상엔
수천 년의 시간에도 지워지지 않고,
누군가의 밤을 비추는
명문(名文)들이 있다.
달도 모습을 감춘 새벽녘,
홀로 누워 예전 일을 곱씹다 보면
후회의 파도에 휩쓸린 나를
건져내 준 문구들이 바로 그런 명문일 것이다.
‘후회에 기운 쏟지 마라’
‘과거에 살지 말고 현재에 충실해라‘
‘어차피 과거는 되돌릴 수 없다’
다른 이들도 종종 이야기한다.
‘후회는 사치야’
‘과거는 과거일 뿐이지’
하지만 지금,
나는 그 말에 반문하려 한다.
그 ‘사치’가 없었다면,
‘과거’를 딛지 않았다면,
우린 어떻게 지금을 살아낼 수 있었을까?
골방에 주저앉아 흘린 우리의 이슬방울에는
정녕 아무런 가치가 없나?
나는 후회가 없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서, 과거로 돌아간다 해도 같은 선택을 할 사람이라는 게 더 정확하겠다.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싶지 않은 어느 날,
내 삶에서 가장 오래 만난 연인과 이별했다.
‘이 말이 문제였을까?’
‘이것 때문에 그런 걸까?’
‘내 어떤 부분에 더 이상 참지 못했던 걸까’
친구가 이별한 지 얼마 안 된 내게 물었다.
“괜찮나?”
나는 담담한 표정으로 그 친구에게 대답했다.
“괜찮은데, 괜찮지 않다.”
친구는 어이가 없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는지 웃으며 말했다.
“뭔 개소리야?”
개소리인지는 몰라도 헛소리인 건 맞다.
그럼에도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었던 건,
그 상황은 분명 괜찮지 않았지만,
나로선 그 이상 잘할 수 없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에서,
저 아이스크림 튀김 같은 말이 튀어나왔다.
어째, 전혀 말이 안 되는 것 같아도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때가 다들 있지 않나?
그렇게 하루, 이틀 튀어나온 조각 깎아내듯, 시간은 흘렀다.
꿈을 꿨다. 입 밖에 내고 싶지 않은 꿈을.
(맥락으로 짐작만 해주길 바란다)
‘같은 말도 다르게 표현했다면 좋았을 걸...’
‘미루어 두지 말고 확실하게 이야기해 둘걸...’
‘아, 그때의 나는 모든 면에서 여유가 없었구나...’
조금 더 현명했더라면 꿈꾸지 않았을 텐데.
그때서야 가래로나마 막아뒀던 둑이 스르르 무너져 내리고야 말았다.
나는 후회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내 선택의 결은 같을 것이기에.
그러나 지금, 후회하는 것은
같은 비단에도 품질의 차이가 있듯,
내 말과 몸짓, 그리고 태도의 품질에 따라
시종(始終)에 분명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흔들리는 갈대숲 사이에 서 있다.
아직은 하늘을 가리워둔 이 갈대숲이 내 세상의 전부일테니.
그러나 여기서 끝나지 않는 건,
홀로 들어앉아 짙은 안갯속 무거워진 공기를
이 순간, 온전히 감내하고 있기 때문이지.
골방의 이슬방울을 부끄러워하지 말자.
지금 이 후회라는 비료가 언젠가 꽃 틔울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