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려는 이유
“꿈이 뭐예요?”
지금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꿈이 있으신가?
어렸을 적 돌아볼 때마다 듣던,
지금은 손뼉 마주칠 때마다 하는 이야기가
바로 꿈이다.
“너희는 지금 꿈을 꾸고 있니?”
간혹 없다는 대답이 돌아올 때면,
“그래,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다들 숙면을 하나 보구나. 멋지네.”
당연히 이리 말하지만은 않고,
“당장 꿈이 없어도 괜찮다. 다만, 정하기까지 오래 걸려도 좋으니 하고 싶은 게 대체 뭔지 고민해 보길 바란다.”
라고 말하며, 그날의 이야기를 끝맺는다.
무어가 그리 중하길래 나는 저들에게 꿈을 묻나.
그러면서도 꿈 없는 친구에겐 그저 고민해 보라는,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끊긴 드라마마냥
끝마치는 것은 대체 무어란 말인가.
나는 놀고먹는 것이 가장 좋다.
아마 긴 휴식일이 주어진다면,
방구석에 틀어박혀 휴대폰 스크롤만 내리고 있거나
정 답답할 땐, 정처 없이 이곳저곳 떠돌며
그동안 못해본 놀이를 찾아가거나
맛집투어나 해보고 있겠지.
밑그림은 모두 다를지 몰라도
이리 마음 가는 대로 선을 그으려 하는 건
다들 비슷하지 않을까.
당당하게 내밀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몇 달 일하고 몇 달 노는,
유희를 위한 그런 삶도
썩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피부에 나이테를 새기며
훗날 삶을 되돌아볼 때 나는 과연,
만족스러운 미소 지으며
영원한 숙면을 취할 수 있겠는가.
나는 죽음 앞에 미소 짓기 위해 꿈을 꾼다.
여전히 꾸벅꾸벅 졸지도 모르지만
새벽녘을 허투루 넘기지 않던
옛사람들 허벅지에 돋아난
무수한 혈점을 본받기 위해.
그러나 이 정도로 만족하기엔
꿈이란 건 쟁취하면 그뿐인
어느 깃발에 불과하다.
그저 꿈꾸는 것만으로
이 졸림을 멈출 수 있을까?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살지 않기로 했다’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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