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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네 May 12. 2022

II. 오직 짧은 글로 유추해야 하는
트루바이리츠의 삶

디아 여백작 | 제2편

돌로 지은 거대한 성벽을 따라 걸으며 각 돌에 새겨진 사연들을 상상하는 이 여백작의 이름은 디아가 아니다. 중세 시대의 작명법은 오늘날의 작명법과 조금 다르다. 이름을 이루는 성을 작명할 때 오늘날처럼 고결한 의미를 담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닌 그 아기가 태어난 출신지의 이름을 사용한다. 그러기에 이 여성을 지칭하는 '디아 여백작'의 '디아'도 이 여성의 출신지가 '디아'라는 도시를 가리키는 것이며 따로 이 아이를 위해 만든 고결한 이름은 아닌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여성의 이름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여성이 태어난 해는 대략 1140년대. 중세의 유럽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건, ‘흑사병’이라는 고통에 몸부림을 친 14세기보다 앞선 12세기와 13세기를 걸쳐 활동한 인물이다 보니 그 기록조차 제대로 남아있지 않은 까닭이다. 이로 인해 이 여성의 이름은 유추해낼 수밖에 없다. 다행히 유구한 도시의 통치자들의 계보를 따라가다 보면 이 여성의 이름을 대략적으로 짐작해볼 수 있다. 학자들은 이 여성 음유 시인의 계보는 아마도 디아의 이주아 2세 백작 Count Isoard II of Diá의 가지에서 뻗은 딸이었을 거라 추측하였다. 그래서 그 당시의 작명을 따라 이주르다 Isoarda라고 짐작한다. 


혹은 베아트리츠 Beatritz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이었을 것이라 유추하기도 한다. 옛날의 기록에 등장하는 베아트리츠라는 이름을 가진 한 트루바이리츠가 언급되는데 바로 이 베아트리츠라는 인물이 디아 여백작을 가리킨다고 학자들은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여성을 이주르다라고 부르기보다는 베아트리츠라는 이름으로 이 여성을 부른다. 라틴어로 베아트리츠는 '기쁨을 가져다주는 사람'을 뜻한다. 당시 한 도시에서 태어나 평생 그 도시에서 살아가야 했던 보편적인 중세 시대의 사람들에게 바깥세상의 이야기를 아름다운 노래로 탄생시켜 기쁨을 안겨주는 것이 사명인 트루바이리츠인 이 여성에게 가장 어울리는 이름이 아닐지 생각해본다.




그럼 이 여성 음유시인의 인생은 어떠하였을까. 이 트루바이리츠의 인생 또한 공식적으로 남겨진 기록은 없지만 간접적으로 남겨진 기록물에서 그 인생을 유추해볼 수 있다. 바로 디아 여백작이 손수 자신의 손으로 기록하여 남긴 한 편의 산문에서 말이다. 오크어로 '생명' 혹은 '전기 傳記'라는 의미를 지닌 '비다 Vida'. 이 단어는 옥시타니아에서 활동한 음유시인들의 손으로 거치면 '짧은 산문학'으로 그 뜻이 바뀌게 된다. 음유 시인이라면 당연히 피해 갈 수 없는 이 짧은 산문학을 디아 여백작도 자신의 손으로 아름다운 문체로 지어내었고, 다행히 이 중 몇 편은 살아남아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 여성이 직접 자신의 삶을 기록한 한 짧은 비다에 따르면 이 여백작은 발랑티누아 주 County of Valentinois 통치자들의 계통수 系統樹의 한 가지를 차지하는 '푸아티에 가의 빌리앙 William of Poitiers'과 결혼하여 삶을 영위하였다고 한다. 혹은 이 비다의 내용에 입각하여 조금 더 다른 가설을, 학자들은 제시하기도 한다. 핀란드의 언어학자이자 프랑스의 중세 언어 학자인 아이모 사카리 Aimo Sakari는 디아 여백작의 배우자는 푸아티에의 빌리앙이 아닌 그의 아들, '푸아티에의 아데마르 Ademar de Peiteus'로 예측하기도 한다. 만약 푸아티에의 아데마르가 디아 여백작의 남편이었다면 우리는 디아 여백작의 진짜 이름을 알게 된다. 푸아티에의 아데마르가 차지하는 계통수에 기록된 그 아내의 이름은 바로 필리파 드 페이 Philippa de Fay. 바로 디아 여백작의 또 다른 이름이 될 수 있는 이름이 바로 이 이름이다.


트루바두르와 트루베르의 가사와 시가 기록된 필사본, '샹소니에 Chansonnier'에 삽입된 랭보 도렝가의 삽화


이 여성의 결혼 후 인생은 어떠했을까. 중세 시대의 결혼 풍습을 생각하면 아마도 디아 여백작 또한 이익으로 맺어진 정략결혼이었을 거라 추정해본다. 왜냐하면 이 여성이 만들어 낸 비다에는 자신의 고결한 사랑을 바친 사람이 따로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이름은 바로 랭보 도렝가 Raimbaut d'Aurenga. 트루바이리츠인 디아 여백작과 같은 직업을 가진 이 트루바두르는 오늘날에도 약 40점의 작품이 남아있어 오크어 문학을 파악하는 귀중한 사료로 사용되고 있다. 오렌자 Orange  오믈라스 Aumelas의 영주였던 이 남성은 자신의 재산으로 아름다운 해안도시 프롱티냥 Frontignan과 미레발 Mireval을 포함할 정도로 부유했으며, 자신이 가진 이 풍요로움을 누리며 어느 트루바두르보다 복잡한 시의 형식과 자신만의 운율을 가지고 자신만의 시와 노래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풀어내었다고 한다. 자신만의 당당함으로 펼쳐낸 그의 오묘한 시와 문학을, 디아 여백작은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샹소니에에 삽입된 디아 여백작의 삽화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디아 여백작이 남긴 이 비다에 대한 의문성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비다'는 '전기'라는 뜻을 지니고 있지만 트루바두르와 트루바이리츠가 사용하면 '짧은 산문'으로 그 의미가 변하게 된다. 이 사실을 한 번 더 언급한 이유는 바로 음유시인들의 손을 거치면 사실만을 기록해야 할 '전기'가 한 편의 '소설'로 변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비다의 내용 그대로 이 음유시인들의 삶을 표현하며, 만약 실제와 다르더라도 어느 정도 자신들이 살아온 삶을 기반으로 작성되어 신뢰를 가질 수 있다는 견해로 바라본다. 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거짓과 진실 사이에 선 자, 트루바두르가 만들어 낸 신뢰할 수 없는 전기라고 생각한다. 


프랑스의 권위 있는 오크어 시인이자 작가인 장 모젯 Jean Mouzat은 자신의 외할머니로부터 직접 배우며 자신의 고향인 튈 Tulle의 거리의 어디서나 쉽게 들을 수 있는 오크어를 사랑하였다. 특히 그가 사랑하는 언어는 바로 오크어의 방언 중 하나인 리무쟁 Limousin 지방의 방언이었다.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리무쟁 지방의 방언은 바로 트루바두르의 최초 발생지, 그리고 트루바두르들의 언어를 결정지었던 것이다. 그래서 장 모젯은 자신이 사랑하는 리무쟁 방언의 정수를 담은 트루바두르의 문학들을 사랑하였고 이윽고 빠져들게 되었다. 트루바두르 문학의 권위자인 이 시인이자 작가는 트루바두르가 남긴 비다를 향해 자신의 지식에 비추어 그 특유의 단호한 성격이 드러나는 입술로 조소를 날렸다. 거짓과 진실 사이에 선 트루바두르들은 단지 '터무니없는 보헤미안이자 피카레스크 한 영웅'들을 대표하는데 어떻게 그들의 머리에서 나온 비다를 믿을 수 있겠냐고 말이다. 트루바두르의 악랄한 상상력에 동의한 프랑스의 중세 언어학자 알프레드 장로이 Alfred Jeanroy 또한 이들의 비다를 가리켜 '현대 소설의 조상'이라고 칭할 정도이니 트루바두르의 악명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확실한 실증에 입각하여 쌓아 올려야 할 현대의 학문에서 이들이 비록 거짓의 입술로 자신의 전기를 기록해 나갔다고 해도 오늘날까지 남은 확실한 기록의 일부이니 설사 학자들은 이들의 농간에 놀아난다 고해도 이들의 이야기를 따라야 하지 않겠는가. 이 트루바이리츠가 남긴 비다 또한 사실이든 아니든 디아 여백작이 직접 남겨 오늘날까지 힘겹게 전해진 이 기록을 믿어야 하지 않겠는가. 어쨌든 이 여성의 인생은 예술적인 삶은 배제하고는 참으로 소박한 인생이었다. 프랑스 남부의 한 유서 깊은 디아라는 도시에서 태어나 다른 영주와 결혼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따로 두며 아름다운 문학을 창작하며 여생을 보낸 이야기. 그 시대를 살아간 여타 다른 음유 시인처럼 소박한 인생을 살아간 이 여성의 짧은 이야기를 굳이 상세하게 언급하는 이유는 오직 이 여성이 남긴 단 하나의 유산 때문이다. 디아 여백작이 남긴 유산은 바로, 현재까지 얼마 알려지지 않은 약 20명의 트루바이리츠들이 직접 만든 음악 작품 중 유일하게 온전한 악보를 간직한 채 살아남은 단 한 편의 노래다. 현대까지 힘겹게 살아남은 여성 음유시인이 작곡한 한 편의 노래. 여성의 시각으로 사람들 간의 사랑을 노래한 이 트루바이리츠의 유일한 노래. 절절한 마음으로 듣는 모든 이들에게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아득한 이 노래를 소개하기 위해 이 지면을 빌렸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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