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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네 Mar 08. 2022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이하여

서양음악사의 이면에 가려진 여성 음악가들을 기억해주시길

오늘은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이다. 


음대에 재학 중인 시절, 클래식 음악에 대한 애정도 당연하지만 작곡가들의 생생한 삶과 그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서양음악의 역사와 전공인 피아노의 역사가 담긴 문헌과 같은 역사 과목을 좋아하여 교재에도 언급되지 않은 작곡가들의 더 생생한 생애를 열심히 더듬어가며 탐구열에 불태운 시절이 있었다.─물론 지금은 직장 생활로 인해 그때만큼 시간을 할애하여 탐구를 할 시간은 줄어들었지만 그 열정은 사그라들지 않았다고 자부한다.─ 


오래된 고서 사이에서 발견된 양피지 악보가 현대의 기보법에 따라 다시 재탄생하여 고스란히 현대로 전해지는 중세시대의 음악과 그 음악을 이끌어 온 귀도 다레초 Guido d'Arezzo와 죠스캥 데 프레 Josquin des Prés와 같은 위대한 음악가들의 알려지지 않은 신비한 생애들, 오랜 중세 시대의 끝에 새롭게 시작되는 르네상스의 정갈한 음악과 존 던스터블 John Dunstable과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 Claudio Monteverdi의 단아한 생애, 바로크 시대의 화려한 음악의 건축을 쌓아 올린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Johann Sebastian Bach와 안토니오 비발디 Antonio Vivaldi, 최고로 아름다운 형식미를 장식한 고전시대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Wolfgang Amadeus Mozart와 루트비히 판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을 거쳐 드디어 형식에서 벗어나 시간의 예술을 펼치기 시작한 낭만주의 시대의 프란츠 슈베르트 Franz Peter Schubert와 프레데릭 쇼팽 Fryderyk Chopin과 수많은 작곡가들, 그리고 현대를 맞이하면서 클래식 음악이 상상할 수 없는 수많은 아이디어로 여러 갈래로 갈려지며 등장하는 수많은 작곡가들까지. 서양음악사를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그들의 독창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아이디어와 드라마틱한 인생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나열한 서양음악사의 작곡가들을 나열하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들지 않는가?


왜 서양음악사에는 여성 작곡가들이 없는가? 


 



학교를 다닐 때에는 저 단순한 의문을 가질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여성 작곡가가 서양음악사에 없는 건 너무나 당연했기 때문이다. 내가 서양음악사를 탐구할 당시 교재에서 등장하는 여성 작곡가는 어림잡아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일 것이다. 중세 음악을 공부하며 예시로 등장하는 성 카시아 St. Kassia,  낭만주의 시대를 공부할 때 언급되는 슈만의 아내 클라라 비크 Clara Wieck, 멘델스존의 누이인 패니 멘델스존 Fanny Mendelssohn 정도로 말이다. 서양 음악사를 이끈 작곡가들과 서양 고전음악을 이루는 표준 레퍼토리 작품들, 즉 '정전 Canon'은 결국 남성들의 머리와 열 손가락 안에서 탄생한 것이다. 오죽하면 거장 레너드 번스타인 Leonard Bernstein의 후학인 세계적인 지휘자인 존 마우체리 John Mauceri는 서양 고전음악을 '백인 남성 유럽인이 주도하였다.'라고 정의를 내릴 정도였을까. 




서양 고전 음악의 역사는 고대 그리스의 음악이라는 단단한 뿌리에서 자라난 유서 깊은 음악이다. 그리스 철학가들의 말을 빌려 '불완전한 여성'이 이성적이고 고차원적인 예술 활동을 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발상이었고 이를 어기는 것은 반역과도 마찬가지 었다. 이 철학은 서양음악사라는 단단한 뿌리에 붙어 함께 자라나 여성들은 꽤 오랫동안 음악계에 발을 들이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분위기 었다. 인간은 남녀노소나 신분을 막론하고 '음악'이라는 특별한 예술에 마음이 반응하고 천차만별의 감정을 느끼며 삶의 환희를 경험한다. 그럼 똑같은 인간인 여성들이 과연 '음악'이라는 아름다운 예술을 그대로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을까? 어느 순간 이 사실을 깨달은 나는 표준적으로 알려진 서양음악사의 뒤편을 찾아보기로 결심하였다. 그리고 이윽고 서양음악사의 틈 사이에서 보석같이 숨겨져 있는 아름다운 음악과 그 음악을 작곡한 작곡가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중세시대의 고서 사이에 발견된 양피지에는 힐데가르트 폰 빙엔 Hildegard von Bingen과 디아 백작부인 Beatriz de Día 이 존재하여 오늘날까지 신비로운 이야기를 전해주었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 르네상스 시대에는 카테리나 아산드라 Caterina Assandra와 마달레나 카술라나 Maddalena Casulana가, 아름다운 건축물을 보는 듯한 구조적인 음악이 돋보이는 바로크 시대에는 안나 본 Anna Bon과 바바라 스토로치 Barbara Strozzi가, 형식미의 최고봉을 보여주는 고전시대에는 그 모차르트마저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본 마리아 테레지아 본 파라디스 Maria Theresia von Paradis와 마리아 시마노프스카 Maria Szymanowska, 음악이 더 이상 형식에 얹매이지 않는 낭만주의 시대로 오게 되면 클라라 비크 Clara Wieck, 패니 멘델스존 Fanny Mendelssohn 을 비롯하여 루이즈 파렝 Luise Farrenc, 앨리스 메리 스미스 Alice Mary Smith를 비롯하여 오늘도 맞이한 귀중한 여성의 날을 위해 직접 거리로 나서 서프러제트 활동을 서슴지 않은 에델 스미스 Ethel Smyth까지. 그리고 현대로 오면 올수록 넘쳐나는 아이디어로 서양 음악계의 뒷면에서 함께 음악사를 이끌어 온 다채로운 여성들의 삶을 만나는 순간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 누구보다도 뜨거운 삶을 살아간 여성들의 인생을 전달하기 위해 브런치 작가를 바라보게 되었고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이하여 이 여는 글을 쓰게 된 이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부디 나와 함께 서양음악사의 이면을, 그리고 숨겨진 이 이면을 바라봄으로써 더 확장된 시야로 서양음악사의 진면목을 바라볼 수 있는 여정에 함께 해주셨으면 한다. 


서양음악사에도 여성들은 존재했다. 그리고 존재한다.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이하여 서양음악사의 이면에서 세상에 나오기를 기다리는 이 여성들도 함께 기억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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