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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네 May 19. 2022

III. 현대에 단 한 곡만 남은
여성 음유시인의 노래

디아 여백작 | 마지막 편

Beatriz de Dia - A chantar m’er ℗ 2014 Ricercar, Outhere


최소 8세기부터 이미 사용했다고 여겨지는 아득한 시간을 넘어온 언어 중 하나인 오크어와 태어난 순간부터 이 오크어와 함께한 트루바두르의 손으로 탄생한 아름다운 문학들. 최초의 로망스 언어로 만들어진 이 논란의 예술가들이 자아낸 서정시들은 이윽고 다른 지역어의 서정시의 발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리고 서정시의 발전은 이들의 음악적 소양과 만나 아름다운 지역 음악으로 발전하게 된다. 디아 여백작 또한 이 행렬에 참가한 실력 있는 트루바이리츠 중 한 명이었다. 


난 원치 않은 노래를 노래해야 해요.
나의 사랑에게 거대한 분노를 느끼지만
난 그 무엇보다 그대를 사랑하니까.

A chantar m'er de so qu'eu no volria,
tant me rancur de lui cui sui amia;
car eu l'am mais que nuilla ren que sia:


나는 노래해야만 해요 A chantar m’er. 제목만으로도 벌써 안타까운 사연을 품은 것만 같은 이 노래가 바로 중세시대에 활동한 여성 음유시인, 트루바이리츠의 작품 중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는 단 1곡의 작품이다. 디아 여백작 스스로가 노래 속의 주인공에 이입해 사랑하는 이에게 커다란 배신을 당했지만 그 배신 속에서도 낙관을 가지고 배신 속에서 상처받은 자신을 위로하고 자신을 칭찬하는 이 노래가 바로 트루바이리츠가 오늘날까지 전해주는 단 1곡의 작품인 것이다. 고대 옥시타니아어로 '칸수'라고 발음하는 '칸소 Canso'. 초기의 트루바두르들이 많이 사용한 이 노래 형식을, 디아 여백작도 자신의 노래 가사에 채택하여 조성 음악에서 찾아보기 힘든 선법과 리듬을 사용하여 신비로운 멜로디와 함께 노래하고 있다. 마치 돌로 쌓은 중세의 성벽에 걸터앉아 한 대의 *비엘 Vielle의 현 위에 활을 걸치고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디아 여백작의 그림이 그려지는, 이 한 편이 회화를 바라보는 듯한 착각이 들게 만드는 이 음악은 아득한 시간을 넘어 우리에게 많은 영감과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래도 디아 여백작의 이 작품은 정말 운이 좋았다. 이 여성의 작품은 1270년경 자신의 형제인 '앙주의 샤를 Charles of Anjou'을 위해 직접 필사를 진행한 루이 9세의 '왕의 필사본 Le manuscript di roi'에 남겨져 오늘날까지 전해졌으니까. 이와 다르게 대부분의 트루바이리츠의 작품들은 음악이 남아있는 것조차 불구하고 단 한 조각의 시를 찾는 것조차 힘겨운 일이다.



*비엘 Vielle : 13~15세기에 사용한 바이올린과 비슷한 찰현악기. 트루바두르가 사용한 인기 있는 악기 중 하나이다.




적어도 1170에서 1260년 사이에 활동했다고 추측되는 트루바이리츠 Trobairitz는 사랑의 목적이 신이 아닌,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세속 음악' 장르에 처음으로 등장한 여성 음악가들이다. 13세기의 한 익명의 저자가 기록한 연애 문학인 '플라멩카의 연애 Romance of Flamenca'에서 처음으로 그 존재가 그려지는 트루바이리츠는 남성인 트루바두르와 다르게 옥시타니아의 귀족들과 동등하게 어깨를 나란히 견주는 궁정 사회의 일부인 고귀한 여성들이었다. 항상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남성들만의 전유물이었던 음악이 중세 시대의 프랑스에서 예외적으로 여성 또한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예술이었다. 글을 배운 궁정의 고귀한 여성들은 노래를 할 수 있었고 악기를 연주할 수 있었으며 음유 시인 사이에서 자신들만의 개성적인 시로 질문과 답변을 펼치며 논쟁하는 '파르티망 Partimen'이라는 시를 창작할 때도 트루바두르들과 함께 참여하여 동등하게 자신들의 실력을 견주었다고 한다. 항상 서양 음악사에서 축소되고 억압되고 금방 잊힌 여성 음악가들을 생각하면 이러한 점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남성과 함께 체스를 두는 중세시대의 여성 (좌) | 남성들과 함께 전쟁에 나서는 중세시대의 여성 (우)


학자들은 이러한 이례적인 현상에 대해 중세 시대의 여성들의 지위, 그리고 당시 남부 프랑스의 특수한 조건 때문이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중세 시대의 여성들은 재미있게도 서양 음악사에 다루는 유럽의 다양한 역사 시기 중 가장 많은 자유를 누렸으며 남성들과 거의 동등한 지위를 지니고 있었다. 중세 서유럽의 여성들은 재산과 토지를 소유할 수 있었고 남성들과 동등한 교육을 받으며 고대 그리스 시절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정치와 경제생활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중세의 여성들은 상당한 수학 지식을 습득하여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며 전술을 익혀 체스를 두거나 직접 칼을 들고 적과 싸우기도 하며, 문학적 소양을 갖춰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노래를 들려줄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더해 프랑스의 옥시타니아 지역은 여성의 권리가 다른 지역에 비해 더 많이 보장되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유럽 중세사를 긋는 큰 사건, 바로 십자군 전쟁 Crusades 때문이었다고 한다. 200여 년에 걸쳐 진행된 이 전쟁으로 많은 남성들이 전쟁터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으며, 자신의 사랑하는 이들을 보낸 이 여성들은 언젠간 사랑하는 이가 다시 밝은 미소와 함께 자신에게 찾아오길 바라며 고향을 지켜나가기 시작하였다. 많은 여성들이 자신들의 터전인 토지를 지켜나갔으며 행정적인 업무를 스스로 진행해나갔으며 자신의 땅을 지키기 위한 권력을 행사하며 자신의 소중한 도시들을 지켜나갔다. 이렇게 보장된 자유에는 예술과 음악에도 국한되지 않았으며 남성과 동등하게 자신들의 음악 세계를 구축하며 서로 음악적 발전에 큰 기여를 꾀할 수 있는 귀중한 인재들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남성들과 함께 활발하게 활동한 이 여성 음유 시인들의 작품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 당시 많은 여성들이 중세의 세속 음악을 이끌어 왔을 거라 추측하지만 현대에는 디아 여백작을 포함한 약 20여 명의 트루바이리츠만이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이들의 존재를 유추하기 위한 자료는 오직 그들 자신이 남긴, 약간의 거짓이 섞인 비다 Vida와 프랑스 노래 모음집인 샹소니에 Chansonniers에 기재된 노래 해석을 뜻하는 '라조 Razo'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 한 줌의 모래와도 같은 이 희박한 자료들을 통해 현재까지 유추해 낸 약 20여 명의 트루바이리츠는 지금까지 전해지는 트루바두르의 수에 비해 약 5%만을 차지할 뿐이다. 손가락으로 샘 할 수 있을 만큼 얼마 안 남은 이 여성들이 남긴 모든 시는 23곡에서 46곡까지 다양하게 제기되는데 이 또한 트루바두르의 작품의 수에 비해 약 1%만을 차지할 뿐이다. 


많은 여성 음유시인들이 활동했을 거라 예상하지만 현재까지 전해지는 이들의 이야기가 희박한 이유는 바로 음유시인들 사이에 만들어 둔 그들만의 규칙 때문이다. 바로 정형화 때문이다. 이들의 모든 시들은 고도로 정형화가 이루어져 시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 비록 여성이라도 실제로 말하는 음유시인 또한 실제로 여성인지, 아니면 여성인 척을 하는 남성인지 판별이 서지 않는다. 특히 작가 미상의 작품은 이러한 구분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오늘날에도 트루바이리츠가 과연 중세 시대 여성을 진실하게 대변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지에 대한 의구심도 제기되고는 한다. 하지만 이에 관해 한 중세시대 역사가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트루바이리츠는 많은 등장인물들의 목소리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했다.' 중세 프랑스 문학을 사랑하는 미국 출신의 전문가인 마틸다 브루크너는 Matilda Bruckner는 트루바이리츠에 대해 이러한 견해를 남겼다. 이 전문가의 말을 따르면 트루바이리츠는 트루바두르 사이에 통용되는 이 엄격한 정형시를 일부러 조작함으로써 여성들만의 목소리를 만들어 낸다고 주장하였다. 실제로 트루바이리츠이 남긴 노래의 시들을 살펴보면 트루바두르가 사용하는 시 형식에 비해 더 다양하고 자유로운 형식으로 시를 엮어 나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이에 더해 이 여성들을 발견하기 힘든 또 한 가지의 이유가 존재한다. 이들이 고귀한 여성과 정의로운 기사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궁정 연애'에 관한 시를 지을 때 '텐소 Tenso'라는 형식을 사용하였다. 칸소와 함께 트루바두르 사이에서 많이 사용된 이 노래 형식은 한 명이나 두 명의 음유시인이 다양한 등장인물들을 등장시켜 그들을 대변하며 서로 토론하면서 진행되는 형식이다. ─앞서 언급한 '파르티망 Partimen' 또한 두 명의 음유시인이 서로 논쟁하며 시를 창작하는, 이른바 텐소의 종류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거짓과 진실 사이에 서있는 이 음유시인들이 작성한 모든 텐소 형식의 시들은 서신을 교환하면서 시를 주고받거나 현장에서 토론을 통해 시를 주고받는 것처럼 기록이 남아있는데 문제는 두 명의 음유시인이 참여한 이 작품이 과연 누구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트루바두르와 트루바두르가 서로 서신을 교환한 형식으로 창작된 텐소나, 트루바두르와 트루바이리츠 사이에서 논쟁한 텐소는 많은 학자들이 많은 연구를 통해 저자들을 명확히 구분해내어 공동 저자로 인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아직도 현대의 일부 학자들은 트루바두르와 트루바이리츠 사이에서 작성된 텐소라고 해도 이 모든 텐소를 트루바두르의 작품으로 귀속시키는 오래된 관습을 따라 트루바이리츠의 존재를 지우는 관행이 이어지고 있다. 




실연당했지만 그 속에서도 자신을 사랑하는 자기애를 통해 자신을 위로하는 이야기.

사랑하는 자신의 여성을 위해 노래하는 한 여성의 이야기. 

자신을 놓치면 평생 손해를 볼 것이라고 엄포를 늘어놓는 이야기.


오늘날 얼마 남지 않는 시에서 중세 시대의 여성 음악가들의 눈으로 바라본 그들만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시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자신들의 이야기일 수도 혹은 허구의 이야기일 수 있다. 그들은 거짓과 진실 속에 서 있는 자들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이야기 속에는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는 자유로운 여성의 영혼이 담겨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고 있다. 


자신을 사랑하며 그 누구의 간섭에도 굴하지 않으며 독립적으로 활동한 디아 여백작 및 역사의 뒤편에 숨어있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트루바이리츠들을 상상하며 이 아름다운 음악을 감상하였으면 한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세상을 붉게 물들이는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만났을 때 아득한 시공을 뛰어넘어 찾아온 이 여성의 노래를 떠올렸으면 한다. 디아 여백작이 고담한 자신의 고향을 가로질러 뻗은 돌담 위에 걸터앉아 바라본 저녁노을과 오늘 우리가 바라보는 저녁노을은 다 지평을 향해 달려가는 같은 해에서 만들어내는 풍광이니까. 


디아 여백작이 살아온 프랑스 디 die 지역. Wikipedia Commons ⓒ M.Minderh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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