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자 실러 | 제4편
한 발만 잘못 디뎌도 잔인할 정도로 온 몸을 할퀴는 차가운 호수 밑바닥으로 가라앉을 것만 같은 살얼음판 위를 걷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 독일의 총통이 된 히틀러의 치하 아래 음악 하나만을 바라보며 버틸 수 있었던 비 아리아인 음악가들의 심경은 어떠했을까. 엘자 실러와 줄리아 로테 슈테른은 서로의 손을 의지한 채 아슬아슬한 음악제국소라는 배를 타고 칼바람이 부는 겨울 같은 시대의 항해에 함께 하였지만 얼마 되지 않아 그들은 배 바깥 아슬아슬한 살얼음판 위로 내쳐지게 되었다. 나치는 저 간악한 유대인들의 음악 또한 불결하고 퇴폐적인 음악으로 규정하며 하나하나 규제하고 추방시키고 있는데 그 음악의 뿌리를 이루는 유대인 음악가들 또한 얼마나 쳐다보기 싫었을까. 1935년 8월 19일, 오직 음악만을 바라보며 쳐다보기도 싫은 제국음악소에 가입한 한 줌의 유대인 음악가들이 꼴도 보기 싫었던 괴벨스는 자신이 설립한 제국문화회의소의 법률을 면밀하게 살펴보게 되었다. 그 결과, 독일 제국문화회의소법 제1조 시행규칙 중 제10항을 찾아낸 그는 예상했지만은 갑작스럽게 유대인들을 향해 '독일 문화생활의 탈유대화'를 선언하게 되었다. 제국문화소라는 한 배를 탄 이들은 결국 배 밖으로 내쫓겨 살얼음판을 조심스럽게 디디며 앞으로 전진하게 되었다. 물론 엘자 실러와 줄리아 로테 슈테른도 함께 말이다.
제10항. 해당자가 업무 수행에 필요한 신뢰성과 적합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사실이 입증될 경우, 그 해당자는 본 기관의 입소를 거부하거나 제명할 수 있다.
-독일 제국문화회의소법 제1조 시행규칙 중 제10항
독일의 음악의 위대함을 선전하는 제국음악소의 의장이 바그너의 후계자로 지목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Richard Strauss에서 이제는 프란츠 리스트를 존경하는 음악연구가이자 반유대주의 지휘자인 피터 라베 Peter Raabe로 교체되며 급속하게 진행된 유대인 추방은 유대인 음악가들에게 큰 상처로 남았다. 가증스러운 피터 라베. 유대인의 친구라 자청하며 쇤베르크의 작품은 초연하며 말러의 교향곡들을 사랑한 그가 이제는 반유대주의자 히틀러의 지지를 호소하며 자신의 손으로 정성스럽게 지휘한 그 유대인 쇤베르크와 말러의 교향곡들을 금지시키다니.
엘자 실러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신뢰성과 적합성을 갖추지 못했다니 얼마나 황당무계한 경우인가. 신뢰성과 적합성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자기가 아니라 오히려 언행불일치를 선보인 저 제국음악소의 의장이 아닌가. 엘자 실러는 즉각 항의하기 시작하였다. 자신의 삶과 같은 음악을 더 이상 못한다는 것은 자신의 팔과 다리가 잘리는 것보다 더 잔인한 일임을 알기에. 만약 그들이 자신의 삶에 음악을 도려내 무채색의 단조로운 삶을 선사한다면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리라. 하지만 자신의 호소는 그저 높은 산 위에 힘껏 외쳐봤자 아무도 듣지 못한 채 되돌아오는 메아리에 불과하였다. 결국 엘자는 자신의 불만을 피터 라베를 포함한 제국음악소의 위원들에게 꾸준히 항의한 지 두 달 후 들을 수 있었던 답변은 '기각'이라는 단어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엘자가 음악만큼 소중하게 여기는 줄리아 로테 슈테른은 다시 음악가의 삶을 되찾았다는 것이다. 베를린 음악계에 큰 발전을 이룩하는데 도움을 준 슈테른 가문에 큰 감사함을 느낀 의장 피터 라베는 엘자 실러가 한창 자신의 무고함을 호소할 때 줄리아 로테 슈테른에게는 다시 음악제 국소의 회원 자격을 '특별 허가'하여 음악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엘자는 비록 자신의 손과 발에 보이지 않는 족쇄가 채워졌지만 적어도 자신의 뮤즈가 노래하는 모습은 지켜볼 수 있음에 감사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 얼마나 황폐한 사회인가. 저 미국에서 한창 부상하고 있는 아프리카계 음악가들의 손으로 탄생한 재즈도, 서양 고전음악의 새로운 탈피를 알리는 12음기법의 아방가르드한 음악도, 그리고 서양 고전음악의 한 주춧돌인 폴란드와 프랑스의 음악조차 금지당한 채 오직 찬란한 순수 독일 작곡가들의 음악만 흐르는 사회라니. '독일 문화생활의 탈유대화'가 진행됨에 따라 많은 유대인 음악가들이 오케스트라에서 떠났다. 풍부한 지식과 지혜를 가진 많은 음악 교수와 교사들은 해고당하며 자신들의 설자리를 잃었다. 이제 거리에서 유대인의 풍부한 유산이 응축된 유대어 시로 이루어진 노래를 듣기가 힘들어졌다. 설 자리를 잃은 유대인들은 즉시 생계에 큰 타격을 받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힘들수록 뭉치는 그들의 연대는 끝이 없는 탄압과 고통 속에서도 밝게 빛나는 한 떨기의 희망을 잃지 않게 단단히 묶어주었다.
엘자 실러 또한 생계를 유지시키기 힘들 만큼 적은 수입으로 삶을 연명하였다. 다행히 끊임없이 추락할 것만 같은 그의 손에 같은 유대인인 줄리아 로테가 내민 구명줄로 그 또한 한 떨기의 희망을 가슴에 고이 품을 수 있었다. 하루하루 연명하기도 힘든 엘자는 유대인임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음악 활동을 전개할 수 있었던 자신의 뮤즈, 줄리아 로테의 제안으로 길 한복판이 아닌 그가 소유한 아파트에 포근한 보금자리를 꾸릴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피아노에 손가락 하나만 올려도 주변의 눈치를 받는 처지이지만 언젠간 이전의 풍요로운 색채를 다시 한번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며 이제는 연주 대신 그가 가지고 있는 음악 지식으로 음악 수업이라는 직업을 계속 이어가며 자신의 음악을 지켜나갔다. 하지만 나치는 그의 조그마한 한 떨기의 희망도 약탈하고 싶었을까. 탈유대화가 이루어지고 2년 후, 자신의 조그마한 낙이었던 음악 수업을 진행할 수 있게 도와준 교사 면허가 박탈되며 그는 음악에 대한 삶을 완전히 놓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제 엘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줄리아 로테의 아파트의 이중 천장 밑에서 자신이 소유한 벡슈타인 그랜드 피아노와 노이페르트 하프시코드에 가라앉는 먼지를 닦아주는 일밖에 없었다. 더 이상 삶의 의지를 구할 수 없었던 그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하는 찰나 문득 하나의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비록 교사 면허는 없지만, 그 면허가 없어도 가르칠 수 있는 성인 학생을 받으면 되지 않을까? 이윽고 엘자의 입에서는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렇게 엘자 실러는 줄리아 로테와 보금자리를 꾸려가며 무면허 음악 교사의 새로운 생활을 품어나가게 되었다.
제1조항. 유대인과 독일인의 성관계와 결혼을 금지한다... 제1조항을 어길 시 강제노동형에 처한다.
뉘른베르크 법률 중 독일인의 혈통과 명예를 지키기 위한 법률
유대인과 장애인, 그리고 동성애자를 증오하며 오직 아리아인만 진정한 인류의 미래라고 외치는 독일의 총통은 폴란드 침공을 시작으로 세계의 정세를 뒤바꾸고 있었다. 라디오에서는 항상 전시상황을 알리며 그 속에서도 독일의 성공을 확신하는 진행자의 목소리로 가득하였다. 전쟁이 시작되고 유대인들은 그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조심스럽게 걸어가는 살얼음판이 깨져 보이지 않는 심연의 차가운 호수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엘자와 줄리아 로테가 음악계에서 추방되었던 1935년 나치가 뉘른베르크 전당 대회에서 히틀러가 직접 서명한 새로운 법, '뉘른베르크 법'에 의거하여 유대인들은 이제 길을 지나가는 무명의 아리아인이 이유 없이 죽여도 아무도 지탄하지 않는 시궁쥐보다도 못한 처지로 전락하였다. 자본주의에 오염된 많은 유대인들이 독가스라는 효율적인 살인 시스템이 갖춰진, 혹은 더럽고 미천한 혈통이지만 독일 의학의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명목 하에 자행되는 인체실험을 위해 각지에 세워진 수용소로 끌려갔다. 많은 유대인들은 얼마 되지 않는 재산을 챙겨 독일을 빠져나가기 시작하였지만 미처 떠나지 못한 유대인들은 각 도시의 아파트마다 비치된 비밀 장소에 숨어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숨죽인 채 전쟁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 엘자의 영원한 음악 동료, 줄리아 로테 슈테른은 슈테른 가문의 후광에 힘입어 '1/4 유대인 혈통'이라는 혐의를 받았지만 조사는 흐지부지된 채 전쟁 중에서도 강제 수용을 피해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영광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 말인즉슨 엘자 실러도 안정적으로 그의 아파트 이중 천장 아래에서 조용히 숨어가며 음악 교습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비록 전시 상황에서 풍족한 삶을 지내기는 힘들었지만 간간히 그 여성의 귀에 들려오는 아름다운 엘토의 목소리와 피아노 소리는 어느 무엇보다도 엘자의 마음을 풍요롭게 채워주었다. 또 그뿐인가, 자신의 음악 지식을 습득해 음악이라는 학문 속에서 희망을 찾아가는 이들의 미소를 바라볼 때의 그 뿌듯한 마음은 자신에게 큰 기쁨으로 다가왔다. 다른 유대인들에 비하면 자신은 얼마나 축복받은 사람인지 이 여성은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현재 살얼음 위에 위태롭게 서있는 자신의 상황에 감사함을 느끼며 이 전쟁이 빨리 끝나기만을 매일매일 기도하였다.
하지만 엘자가 위태롭게 서있던 살얼음판도 결국 무너지게 되었다. 새해를 맞이하여 조금은 풍족한 보급품으로 모처럼 행복했던 1943년 새해의 어느 날, 엘자와 줄리아 로테가 사는 베를린 프리데나우에 위치한 키르히슈트라세 24번지 아파트에 게슈타포가 쳐들어오게 되었다. 갑작스럽게 쳐들어온 이 경찰들로 인해 이 두 여성이 전쟁의 불안함 속에서도 꿋꿋이 쌓아 올린 소소한 행복과 희망은 한순간에 무너지게 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