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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창환 Andy Sep 21. 2022

7분짜리 춤공연,
이렇게 그려 봤습니다

'2022 김포 들가락 발표회'에서 그린 '호걸양반춤'

▲ '춤패 연'의 <호걸양반춤> 공연 모습. 옛날 그림을 본따서 위에서 내려다본 시각으로 그렸다. 마카와 피그먼트 라이너로 그렸다. ⓒ 오창환


 
지난 18일은 김포 아트센터 광장에서 열리는 2022 김포 들가락 발표회를 그리러 갔다. 

1980년대 북촌과 을지로 재개발 지역의 한옥들을 김포시 운양동 모담산 자락에 이축한 샘재 한옥마을을 모체로 만든 창작 문화 공간이 김포 아트빌리지이고 그 안에 김포 아트센터가 있다. 김포 아트센터 안의 갤러리도 좋지만, 그 앞에 너른 마당이 있는데 그곳에서 공연이 이루어졌다.

김포는 중부지방에서 보기 힘든 김포 평야가 있는 곡창 지대다. 농사가 잘 된 만큼 농악 전통도 대단하여 1990년대 후반까지 마을 사람들로 구성된 풍물패가 동네마다 있었고, 김포시 체육대회를 하면 공설운동장에 각 마을마다 천막을 치고 두부국을 끓여 놓고, 풍물을 치며 기세를 올렸다.

지금 김포 들가락 연구회 회장이신 박희정 선생님이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농악을 채록을 했는데 그때까지도 연로하신 마을 상쇠들이 생존해 계셔서 놀랐다고 한다. 그때의 채록과 구술을 정리한 것이 '김포 들가락'이다(2022 김포 들가락 발표회 리플릿 참조).

김포 들가락 발표회는 2015년부터 가을걷이 풍물 잔치 형태로 매년 발표회를 해오다가 2020년과 2021년에는 코로나 때문에 영상 발표회로 대체되었다. 올해가 포스트 코로나 첫 공연이다.

이날 공연의 메인 프로그램은 김포 들가락 연구회 풍물동아리 '황금물결'의 판굿 공연이지만 다른 연희패들도 초청되어 공연을 한다. 그 중 한 팀이 '춤패 연'인데, 나도 춤패 연 회원이라 공연을 그리러 왔다.

'춤패 연'은 대학 때 탈춤을 추던 사람들이 모여 만든 춤패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 몸은 예전 같지 않지만 열정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게다가 춤을 공연할 수 있는 팀은 국내에 많지 않아서 공연 요청이 꽤 많다. 2018년부터 매년 김포 들가락 발표회에도 참여했었고, 올해는 호걸양반춤으로 참여했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는 봉산탈춤이나 양주별산대놀이 등 중부지방 춤을 많이 추었다. 중부지방 춤들은 기본적으로 '덩 덕기 덩더 쿵 ' 12분의 6박자 타령 장단이 기본이다. 가락이 빠르고 신이 난다. 도약이 많고 힘차다.

지금 우리는 남부지방 춤을 많이 춘다. 남부 지방은 '덩 기덕 쿵 더러러러 덩 기덕 쿵덕' 12분의 12 박자가 기본이고 부드럽고 아름답다. 도약이 상대적으로 적지만, 악을 타고 신명을 부리기에 좋다.

그래서 춤패 연 레퍼토리로 동래 학춤, 고성 오광대놀이, 진도 북놀이 등 남부 지방 춤이 많다. 나도 동래 학춤 주요 출연자로 한동안 공연도 많이 했다. '호걸양반춤'은 한량무의 조사(祖師)라고 일컬어지는 학산 김덕명 선생님의 춤인데, 이번에 우리가 추는 춤은 그의 제자인  최찬수 선생님 버전이다. 학교 다닐 때는 노상 상민의 춤만 추었는데, 이제 수십 년 만에 양반 춤을 추게 되었으니 이것도 업그레이드라고 해야 할까? 

5월에 호걸양반춤 연습을 시작했는데 9월 공연이 결정되면서 회원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처음 배운 레퍼토리를 소화하기에 빠듯한 일정이다. 우리는 보통 성산동 살판에서 주 1회씩 연습을 했는 데 그것 가지고는 어림도 없어서, 이수역 '더킹' 건대 입구 '휘모리'에서도 추가로 연습을 했다. 게다가 코로나에 걸리는 회원이 속출해서 힘들었고, 최종적으로 8인무로 결정되었다. 나는 연습 부족으로 출연진에서는 빠졌다.

양반춤은 의상이 멋지다. 갓을 쓰고 흰 도포를 입고 등장하기만 해도 관객들은 좋아라한다. 동래 학춤에서도 흰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날갯짓을 하면 무조건 멋있다. 호걸양반춤은 도포에 긴 조끼처럼 생긴 쾌자를 입는다. 쾌자 색은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색을 골랐는데, 색이 참 곱다. 공연을 앞두고 한 회원이 글을 올렸다.
   

호걸양반춤을 처음 배운 날 호기롭게 질러본 공연이 정말로 성사가 되었습니다.이제 이틀 남았습니다. 새로 맞춘 쾌자를 도포에 걸쳐놓고 보니 정말 흐뭇합니다. 연습 동영상을 보고 따라 춥니다. 이제 겨우 순서를 알 것 같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리더의 동작으로 다음 춤사위를 짐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과격해 보이지는 않지만 한번 추고 나면 온몸이 땀에 젖습니다.(중략)근데 가슴이 콩닥콩닥 설렙니다. 얼마나 오래 기다려왔던 기회인가요. 우리 신나게 한판 즐겨봅시다!!


공연은 3시이지만 우리는 12시에 모였다 김포 들가락 연구회에서가 준비해준 김밥을 먹고, 마지막 리허설을 했다. 그리고 다른 팀들도 각각 와서 리허설을 했다.


▲ 미리 주변 부터 그리시 시작해서, 공연 중에는 그림을 완성할 수 있었다. ⓒ 오창환


 
나는 일찌감치 관객석 중앙에 앉아 스케치 북을 펼쳤는데, 7분짜리 공연을 그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먼저 무대와 관객석을 그렸는데 이 공연이 우리 전통문화 행사이니 만큼 우리나라 전통회화에서 종종 보이는 버즈 아이 뷰(Bird's eye view)로 그렸다. 공연자들은 같은 동작을 하지만 그렇게 그리면 너무 단조로울 것 같아서 각기 다른 동작으로 그려 넣었고, 공연을 할 때까지는 완성할 수 있었다.

우리 공연은 김포 들가락 판굿 1,2 마당 다음이었는데, 등장만으로도 탄성을 자아냈다. 7분의 공연이었지만 모두 혼신의 힘을 다한 멋진 공연이었다. 

이번에 참여한 다른 팀들 공연도 모두 좋았는데, 특히 김포 들가락 판굿은 너무 신명 났다. 나이 든 분들과 젊은이들이 섞여서 공연하는 것이 인상적이었고 인원 수도 많았다. 풍물놀이를 할 때 어떻게 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장단을 바꾸는지 아는가?

풍물패 맨 앞에선 상쇠가 가슴께서 치던 깽쇠를 얼굴 높이까지 올리면 한 박자 먹고 다음 가락으로 넘어간다. 나도 학교 다닐 때 상쇠였던지라 판굿을 보던 내내 '아, 여기서 한 박자 먹고 다음 가락...' 이런 식으로 가락을 따라가다 보니 마치 내가 공연을 한 듯한 감동을 느꼈다.

'대동 진도북놀이'와 '단심대 엮기'를 끝으로 공연이 막을 내렸다. 참으로 멋진 공연이었고 우리가 이 공연에 참여해서 정말 좋았다. 공연 후에 긴 뒤풀이가 이어졌는데, 공연의 긴장을 털어내고 공연자와 뒷패가 모두 모여 즐거운 자리를 가졌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춤패 연은 뒤풀이도 꼭 공연 같이 한다. 길고도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모두들 집으로 돌아가면서 이렇게 생각 했을 것 같다. '내가 이 팀의 일원이라는 사실이 너무 좋다!'
             


▲ 호걸양반춤 공연 모습. 도포에 쾌자가 멋있다. ⓒ 오창환



태그:#김포들가락연구회#호걸양반춤#황금물결#춤패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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