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파우저의 <외국어 전파담>
365일 동안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영어를 공부할 수 있을까요?
1월 1일, 작성하는 가족 버킷리스트에 저는 늘 외국어 공부를 포함시켰습니다. 토익이나 토플 점수 획득하기, 일본어나 중국어 자격증 따기, 영어 연설하기 등등. 연말에 당초 목표를 달성했는지 체크해보면 늘 실망했습니다. 10년 넘게 끊임없이 시도했지만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좌절의 나날을 보내던 중, 방송인 '타일러 라쉬'가 '리*클래스'를 광고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타일러는 서울대학교에서 외교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여러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해박하고 명석한 인물로 알려졌습니다. 영어학습 프로그램인 '리*클래스'는 강의료가 꽤 비싼 것 말고 특이한 점이 두 가지 있었습니다. 아이패드를 무료로 제공한다는 것과 일 년 동안 매일 강의를 듣게 되면 강의료를 환불해 준다는 것입니다.
수강자는 인터넷이 접속되는 환경에서 학습 후 테스트를 치르고 공부했다는 증빙사진을 플랫폼에 올려야 합니다. 적어도 20분은 걸립니다. 이런 방식으로 공휴일, 명절, 생일, 부서 회식,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1년 365일 학습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저는 배팅을 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저의 성실성에.
'성실'로 말하자면 저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지만 제일 걱정되는 것은 학습하는 것을 실수로 '깜박'하는 것이었습니다. 매일 밤 10시 45분에 휴대폰 알람 설정을 해두고 하루하루 학습했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 십일, 백일, 이백 일, 아슬아슬하게 밤 11시 50분에 증빙사진을 게시할 때는 등에서 땀이 흘렀습니다. 다행스럽게 저는 술을 마시지 않기 때문에 술기운에 '될 대로 돼라', '뭣이 중한디'라는 기분을 제어할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1년을 다 채우고 저는 수강료를 환급받았습니다. 저의 성실함이 돈으로 환산되어 통장에 입금되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영어를 거의(?) 매일 공부하고 있습니다. 저의 영어공부 방법은 단순합니다.
먼저 영어 카드 작성하기입니다. 저는 인터넷 포털에서 제공하는 '오늘의 회화'를 이용합니다. 우선 해석만 보고 연습장에 영작을 해봅니다. 다음은 정답을 듣고 핵심표현을 익힙니다. 대화를 반복해서 듣고 암기합니다. 한글 해석만 보고 영어문장을 술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익히면 단어카드에 날짜와 내용을 옮겨 적습니다. 마지막으로 카드를 거꾸로 거슬러 15장을 가볍게 읽어보면서 기억을 다시 강화시킵니다. 이렇게 하는데 3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사진설명: (왼쪽부터) 영어문장 카드, 문장 외우기 연습장, 아이패드(리*클래스 수강 시 받음)>
두 번째는 팝송 가사 외우기입니다. 좋아하는 팝송을 골라 가사를 외우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점이 있습니다. 영어 발음을 뒤따라하는 것을 '쉐도우잉(shadowing)'이라고 하는데, 팝송 가사 공부의 '뒤 따라 말하기'는 노래하는 것입니다. 영어 공부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으니 얼마나 신나는 일입니까? 두 번째는 곡 하나를 암기하고 나면 영어로 이야기하듯이 대화를 이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사는 완결된 스토리를 담고 있습니다, 그것도 시적으로. 영시 한 편을 외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팝송 가사 외우기 공부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곡 하나를 네 파트 정도로 쪼갭니다. 먼저 듣기만 하고 문장을 내 마음대로 써 봅니다. 다음은 해석문을 보면서 문장을 맞추고 수정합니다. 계속 반복합니다. 나중에는 듣지도, 보지도 않고 영어문장을 술술 백지에 써 내려갈 수 있습니다. 최근 공부한 곡은 'One Call Away'(Cahrlie Puth), 'Love Yourself'(Justin Bieber), 'Someone like you'(Adele)라는 노래입니다.
제게는 영어 카드 쓰기, 팝송 가사 외우기 외에 부수적인 공부 방법이 세 가지 더 있습니다. 첫 번째는 엘베 기다릴 때, 엘베 안에서, 음식 기다릴 때 짜투리 시간을 활용하여 인스타에서 CNN과 BBC에서 방영하는 뉴스를 챙겨보는 것입니다. 인스타에는 주로 영상뉴스와 함께 읽기 쉬운 자막이 배열됩니다. 내용을 이해할 때까지 반복하여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매일 저의 메일함에 배달되는 Economist 저널을 보는 것입니다. 여섯 개 정도의 기사 중 한 주제만 읽습니다. 모르는 단어는 의미를 찾지 않고 그냥 읽습니다. 마지막으로는 휴대폰에 푸시 알람을 설정해 놓은 '블롬버거 뉴스 읽기'입니다. 블롬버거는 실시간으로 세계의 정치와 경제 동향을 알려줍니다. 이런 방법은 영어 공부뿐만이 아니라 제 삶에도 도움이 됩니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고 세계의 정치와 사회, 경제동향을 리얼타임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40년 넘게 영어 공부하고도 이런저런 자리에서 외국인을 만나면 불편합니다. 도대체 이제까지 뭐했나, 하고 반성합니다. 해외여행 중, 짧은 언어 실력으로 숙식은 해결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아닙니다. 40년 이상을 영어공부한답시고 책 사고, 학원 다니고, 미드 보고 별의별 짓 다해봤지만 여태껏 제자리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동기가 부족했습니다. 인간의 행동을 이끄는 것은 동기(motivation)입니다. 타일러가 광고한 리*클래스를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이패드 선물과 수강료 환급 때문이었습니다. 그때의 동기는 돈이었습니다.
다시 본격적으로 영어 공부를 하려고 마음먹은 동기는 별도로 있습니다. 저는 퇴사 후 해외에서 장기간 살기 위해 영어가 필요합니다. 제가 외국인과 유일하게 대화를 한 기억이 있습니다. 수년 전 가족과 함께 파리 여행을 갔을 때였습니다. 우연히 샹들리제 부근 공원의 벤치에서 쉬고 있는데 옆에 앉은 외국인이 말을 붙였습니다. 30분 정도 그와 살아가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아이들은 아직도 제가 영어를 꽤 하는 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영어 실력을 다져서 여행자가 아닌 이사 온 주민처럼 살다가 오려고 합니다. 먹고 자는 것을 해결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친구도 만들고 싶습니다. 현지인이 가는 음식점, 카페, 놀이공간에서 새로운 삶을 즐기고 싶습니다. 입과 귀를 한 껏 열어두고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그래서 영어로 소통하는 능력이 꼭 필요합니다.
저의 세속적인 목적과는 달리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사회적 자본을 획득하는 것이라고 로버터 파우저 교수는 강조합니다. 그의 말을 좀 더 들어보겠습니다.
일본에 살면서 한국어를 가르쳤던 미국인 로버트 파우저는 외국어에 대한 끝없는 관심의 원천은 바로 소통의 즐거움이라고 합니다.
'외국어가 어디에서 어디로, 누구에게 어떻게 전파되어왔는가와 그 오랜 역사를 오늘의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고, 많은 사람이 열심히 배우고 있는 외국어란 과연 어떤 의미인가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외국어 전파담>의 결론은 '외국어는 개인의 호기심과 필요에 의해 전파되는 것이 아니다. 그 전파의 과정은 시대에 의해 좌우되며 역사의 변화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문자의 탄생부터 사상과 철학을 습득하기 위한 라틴어와 그리스어의 전파, 르네상스 이후 교양으로서의 외국어 학습, 대항해 시대 프랑스어와 영어의 원주민 침략, 곧 이은 제국주의 시대의 언어 강요, 마침내 영어 패권시대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줍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언어 전파과정에서의 선교사의 역할입니다.
"기본적으로 선교활동은 침략이라는 패러다임에서 이루어졌고, 언어를 배우려는 이들과 가르치려는 이들은 본질적으로 불균등한 관계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110쪽)
"제국주의 확장의 선두에 자리 잡고 있던 선교사들이 주로 가교 역할을 했다. 이들은 새로운 땅에서 만난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의 사전과 문법 참고서를 집필했고, 새로운 언어의 특징을 연구.기록하기 시작했다."(139쪽)
성인이 된 이후에도 외국어를 모어처럼 구사할 수 있다는 '습득 이론'에 바탕을 둔 외국어 학습법의 발전사도 재미있게 읽은 부분입니다. 행동주의 심리학, 그 이후에는 인지 심리학을 바탕으로 한 교수법이 발달되었으나 지금은 발음이 아닌 소통에 주안점을 둔 사회언어학이 대세가 되었다고 합니다.
왜 외국어를 배워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마지막 페이지에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저자는 '모어가 아닌 추가 언어를 배운다는 행위는...궁극적으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교양 있는 시민으로서의 자질을 갖추기 위한 일종의 도덕적 행위여야 한다.'라고 하면서 '지난 수세기 동안 특수한 계층이 외국어를 통해 누려온 기득권의 재생산 대신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평화와 화해의 시대를 만드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또 다른 의미의 사회적 자본의 획득으로 외국어는 기능해야 한다.'라고 하면서 글을 맺습니다.
외국어의 전파과정을 선교사의 역할이 부각된 제국주의 침략 관점에서, 국가 간 불평등, 국민 간 사교육 시장에서의 불균형 관점에서 시간 순서대로 맥을 짚어 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자의 마지막 글 중에서 '도덕적 행위'라는 표현에 끌립니다. 타인의 언어를 배우는 것은 자기중심에서 벗어나려는 행위입니다. 퇴직 후에도 저는 외국어를 끊임없이 공부하려고 합니다. 나이 들수록 자기 중심적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외국어를 배우게 되면 조금이라도 자기중심에서 벗어나지 않겠습니까?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