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맞는 바지를 입는다는 건

최인철의 <굿 라이프>

by 필우

터벅터벅, 직장인의 월요일 발걸음은 납덩이를 매달은 것 같습니다. 저는 월요일을 상쾌하게 시작하기 위한 장치를 만들긴 했지만 요즘은 시들합니다. '해피 먼데이(Happy Monday)'를 위한 저만의 장치란 이런 것입니다. 일요일 저녁, 페이스북에 올린 독후감에 '좋아요' 숫자 확인하기. 월요일 아침, 늘어나는 숫자를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요즘은 거기서 거깁니다.


또 하나는 주식입니다. 주말에 묶였던 주식시장이 월요일 문을 열면 두근두근 가슴이 뜁니다. (얼마 되지는 않지만) 자산에 얼마나 변화가 있을까? 이번 주에는 제가 가진 종목 중 어떤 것을 팔아볼까, 하는 기대감에 설레기도 합니다. 요즘은 쳐다보기도 싫습니다. 주가가 바닥을 뚫고 지하로 내려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납덩이 맨 월요일을 보내고 있는 요즘, 이번 주 월요일은 달랐습니다. 아파트 문을 나서는데 콧노래가 나왔습니다. 직장 지하주차장에 차를 두고 계단을 오르는 데 에스컬레이터 탄 것처럼 가뿐합니다. 내가 왜 이러나, 뭘 잘못 먹었나, 필름을 되돌려 생각해보니 출근하기 위해 옷을 입을 때부터였습니다.


주말에 산 바지 때문이라는 사실이 번개처럼 내 머리를 스쳐 지났습니다.


날이 더워지기 시작한 5월에 여름 바지를 꺼내 입었을 때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바지를 입어보니 허리에 주먹 하나가 넉넉하게 들어갈 정도로 헐렁해진 것입니다. 몸무게를 줄여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올해 상반기 몇 가지를 실천한 결과, 4~5킬로그램 정도 살이 빠졌습니다. 혁대를 조를 때마다 바지춤을 잡지 않으면 스르르 흘러내릴 정도였습니다. 화장실에서 옷매무새를 고칠 때마다 신경을 써야 했습니다. 한 달 넘게 일바지(일하기 편하게 통이 크고 편한 고무줄 바지)를 입고 다니는 것처럼 불편함이 계속되던 차에 새 바지를 사자고 결심하였습니다. 드디어 바지를 샀습니다.


몸에 맞는 바지를 입는다는 게 이렇게 기분이 좋을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기분이 우쭐해집니다. 이런 맛에 사람들은 좋은 옷을 갖춰 입는 것인가 보다. 나는 옷은 깨끗하게만 입고 다니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이에 더해 자기에게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몸에 맞는 옷을 입고, 혀를 즐겁게 하면서 위에 부담이 없는 음식을 먹고, 가끔은 가슴을 울리는 시를 만나는 일, 그게 사는 맛이 아닐까요. 행복과 좋은 삶(굿 라이프)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최인철의 <굿 라이프>


"굿 라이프, 즉 좋은 삶으로서의 행복은 좋은 기분과 함께 삶의 의미와 목적 그리고 삶을 향한 품격 있는 태도와 자세까지 포함한다."


이 책은 행복에 관한 오해와 의미, 유전자와의 관계, 행복해지기 위한 삶의 기술, 의미 있는 삶과 품격 있는 삶에 대하여 저자가 10여 년간 제자들과 직접 수행한 연구결과에 기초하여 체계적으로 정리한 글입니다.


저자는 행복한 사람들의 삶의 기술은 두 가지라고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을 경험할 수 있는 마음의 기술인 '심리 주의자 기술', 쉽게 행복을 경험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환경주의자 기술'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는 '어떤 음식을 먹더라도 감사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애초부터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먹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책의 내용 중 품격을 이야기하는 글이 가장 와닿습니다. 특히 '자기 중심성'에 관한 이야기는 내게 생각거리를 줍니다. 저자는 심리학이 발견한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이 '자기 중심성'이라고 하면서 이것은 끼리끼리 모이는 '관계 편중성', 함께 모여사는 '지리적 편중성', 생각이 같은 사람끼리 어울리는 '의식의 편중성'으로 이어진다고 합니다.


"인간의 격格이란, 관계의 편중성이 가져오는 의식의 편중성을 인식하고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것에 있다. 일부러 부의 수준, 교육 수준, 인종, 성별이 다른 사람들과 자주 교류하려는 사람, 다양한 모임 속에서 자신을 깊이 넣어서 관계 편중성으로 인한 의식의 편중성을 극복하려는 사람이 품격 있는 사람이다. 의도적으로 자신의 지리적 한계를 벗어나려는 사람이 멋진 사람이다."


최인철 교수가 자신의 생각을 이 책에 담은 것처럼 독자들도 '삶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마련'한다면, '그 기준 이외의 것들에 대해서 자유로울 수 있기'때문에 굿 라이프가 가능하다고 저자는 강조합니다. 이 책의 결론이라고 봐도 좋겠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격을 갖추고 제 몸에 맞는 옷을 입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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