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요리는 비프 웰링턴에서 끝났다

김훈의 <라면을 끓이며>

by 필우

'비프 웰링턴(Beef Wellington)', 요리 이름에도 품위가 있습니다. 영국에서 건너왔기 때문일까요? 겉은 페이스트리 반죽으로 만든 빵이 바삭하게, 속은 미디엄 정도로 익힌 소고기 덩어리가 육즙을 품고 있어서 '맛이 없을 수가 없는' 고급 음식입니다.


비프 웰링턴을 만들기 위해 아내와 마트에 갔을 때부터 예감이 좋지 않았습니다. 정육코너에서 고기를 고르는 제게 아내의 잔소리가 귓등으로 날아와 꽂혔습니다. 고기가 아깝다, 그렇게 비싸게 주고 소고기를 살 필요가 있느냐, 나의 요리 실력과 소고기를 얕잡아 보는 말을 이어갔습니다. 저는 아랑곳하지 않고 장을 다 보았습니다.


식탁에 재료를 한 바닥 펼쳐놓고 오후 3시부터 저녁식사를 준비했습니다. 고기 손질하고 재우고, 야채 다듬고, 페이스트리 반죽하고, 오븐 체크하고... 거의 7시가 되어서야 완성된 요리를 가족에게 내놓았습니다. 나쁜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모양부터 글렀습니다. 결정적으로는 반죽의 양이 적었습니다. 빵이 고기를 완전히 감싸지 못하고 허리만 두른 형태가 되다 보니 정체를 알 수 없는 요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아이들은 그런대로 아빠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 스테이크도 아니고 수육도 아닌 고기를 잘라서 먹어주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음식 만들기를 포기했습니다. 요즘은 싱크대 근체에 얼씬 거리지 않습니다.


요리는 종합예술이다.


어느 날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내가 나이가 들고, 식구들이 떠나가면 혼자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질 것이다. 식당에서 해결할 수 있지만 싱싱한 재료를 사서 집에서 내 손으로 만들어 먹는 것이 몸에도 좋고 정신 건강에 좋을 것이다. 그래, 지금부터 요리를 시작하자.


가장 먼저 시도한 것은 스테이크였습니다. 좋은 고기를 사서 미리 양념을 하고 냉장고에 잘 재웁니다. 아스파라거스, 통마늘, 양파와 같이 곁들여 먹을 수 있는 것만 잘 다듬으면 끝. 첫 요리는 성공적이었습니다. 가족 모두 맛있게 먹고 주말에 요리를 하는 제게 용기를 북돋워주었습니다.


제 요리는 짜장면, 새우볶음밥, 굴라쉬, 함박스테이크, 감바스, 월남쌈, 멘보샤, 동파육, 새우 피자, 김밥, 낙꼽새(낙지+꼽창+새우)로 이어졌습니다. 굴라쉬는 유럽 가족 여행 갔을 때 먹었던 그 맛이 살아나서 즐거웠습니다. 멘보샤는 살짝 그을린 부분에서 나는 바싹한 소리와 탱글한 새우살이 느껴져서 중국식당 부럽지 않았습니다. 겉보기엔 단단한 돼지고기가 입에 들어가자 요구르트처럼 녹아내리는 동파육도 일품이었습니다.


첫 시도에 실패한 음식은 김밥과 피자였습니다. 김밥을 말다 보니 깔아 둔 김과 밥에 재료를 척척 얹어 말아내는 김밥집 이모들이 위대해 보였습니다. 저는 아무리 말아도 모양이 나오지 않고 썰다 보면 김과 밥, 단무지, 우엉이 각자 도마 위에 널브러졌습니다. 피자는 왜 물이 그렇게 많이 나오는지, 빵은 익었는데 야채는 왜 풀 맛이 나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습니다. 세 번 정도 김밥 말고, 피자 굽다 보니 어느 정도 맛과 모양이 갖춰지긴 했습니다.


요리는 종합예술이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재료의 양을 가늠하고 측정하고 어떤 맛이 나올지 예측하기 위해 손과 머리를 집중해야 합니다. 촉감, 향, 입속에서의 느낌, 맛을 상상하며 음식을 배치하고 색깔을 맞춰내는 일이 종합예술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모든 요리사는 위대하다.


요리는 체력이다


3개월 이상 음식을 만들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요리는 종합예술다.'라고 외치고 다녔습니다. 요즘은 뭐 만들어?,라고 물어보는 동료에게 저는 '요리는 체력이다.'라는 말로 꼬리를 내립니다.


간단한 요리를 만든다고 할지라도 기본적으로 3시간 정도는 서서 이리저리 움직여야 합니다. 손을 움직이며 머리로는 다음 순서를 생각해야 합니다. 요리를 하기 전 장보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마트에 가면 사려는 재료가 모여있긴 하지만 그래도 카트를 끌고 1시간 정도는 매장을 돌아다닙니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세 달 넘게 매주 주말을 그렇게 보내고 나니 지치기 시작했습니다. 거기다 비싼 고기 사서 제대로 요리 못한다는 핀잔을 듣고 나니 당분간 접자, 라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딸로부터는 '프로 시작러'라는 별명을 한 번 더 듣게 되었죠. 늘 새로운 시작만 하고 그만둔다는 '칭찬'입니다. 저는 칭찬으로 듣습니다.


직장 그만두면 요리학원에 다니겠습니다. 기본 실력을 다져서 지금은 3시간 걸리는 요리를 30분에 끝내겠습니다. 냉장고의 재료를 이용해 15분 안에 요리를 만들어내는 '냉장고를 부탁해' 시리즈를 탐독하겠습니다.


잘 먹고살겠습니다. 잘 먹어야 잘 사는 것 아니겠습니까?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일. '먹는 것'에 집중하겠습니다. 돈 벌어 밥 먹고 사는 것의 중요성에 대하여 설파한 작가가 있었습니다.


김훈의 <라면을 끓이며>


믿고 읽는 김훈 작가의 글입니다. <라면을 끓이며>(문학동네)는 밥, 돈, 몸, 가족과 같은 삶의 원초적인 것들에 대해 쓴 김훈 특유의 솔직하고 담백한 글입니다. 책 속에 담긴 그의 삶은 그의 문장을 닮았습니다. 그 반대인가요?


저자는 첫 장에서 스승 없이 혼자서 수많은 실험과 실패를 거듭한 끝에 이루어 낸 자신만의 라면 끓이는 비법을 소개합니다.


우선, 면발의 탄력을 유지하기 위해 야외용 가스버너를 사용합니다. 대파의 서늘함과 달걀의 부드러움이 살아남고 국물이 면에 조화롭게 스며든 라면은 ‘인간 가까이 다가와 덜 쓸쓸하게 먹을 만하고 견딜만한 음식이 된다.’고 합니다. 음식을 요리하고 먹는 일이 엔터테인먼트가 되어버린 요즘, 김훈의 글은 지나치게 무거워 보이지만 라면을 대하는 그의 엄숙한 자세에서 무림고수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모두 5부로 되어있는 책의 내용 중에 ‘돈’에 대한 글이 가장 그 답습니다.

"아들아, 사내의 삶은 쉽지 않다. 돈과 밥의 두려움을 마땅히 알라.(중략) 사내의 한 생애가 무엇인고 하니, 일언폐지해서, 돈을 벌어 오는 것이다."(178쪽)


저자는 아들에게,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하고, 돈 없이도 잘 살 수 있는 척하는 것은 추악하고 안쓰럽고 남세스럽다고 하면서 이렇게 결론짓습니다.
"그러니 돈을 벌어라. 벌어서 나한테 달라는 말이 아니다. 네가 다 쓰라. 난 나대로 벌겠다.“(181쪽)


이 책이 산문집이라고 해서 막 읽히지는 않습니다. 기자 시절의 경험을 글로 쓴, 소방관에 대한 두 편의 글은 그들의 노고에 대한 감사와 함께 미안함을 가지게 해 주었습니다. 조그만 전세 아파트와 26세의 아내, 세 달을 갓 넘긴 아들, 노부모를 남기고 1999년 5월 여수 중앙시장 화재를 진압하다가 숨진 한 소방관의 죽음에 관한 글을 읽으며 저는 눈앞이 흐릿해졌습니다. 그는 16명의 생명을 구하고 혹시 있을지도 모를 생존자를 확인하러 다시 불구덩이 속에 들어갔다가 고립되었습니다.


"새벽 1시 30분께 화재는 진압되었고 서형진 소방사는 들것에 실려 지휘관 앞으로 운구되었다. "장비를 벗겨 주어라"라고 서장은 말했다. 대원들이 서형진 소방사의 무장을 해제했다. 공기호흡기, 도끼, 망치, 손전등, 안전모, 개인로프를 떼어주고 방열복을 벗겨주었다. 그는 그렇게 한평생의 멍에를 벗었다."(219쪽)


칠순을 바라보는 작가의 진솔한 이야기는 새겨들을만합니다. 목숨 보존하고 살아가는 것, 연장을 만들어 삶을 지속하는 것, 돈 벌어 밥 먹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나머지는 배경에 불과합니다.


서점에 들르게 되면 <라면을 끓이며>를 집어 들고 ‘돈’, ‘불자동차’, ‘소방관의 죽음’ 은 그 자리에 서서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적어도 일주일 정도는 허투루 돈을 쓰지 않을 것이고, 길에서 소방차를 보면 저절로 그들에게 감사의 미소를 보내게 될 것입니다.


*사진출처: 'unsplash.com'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