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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점선 Sep 19. 2024

이런 게 그리움인가

어머니의 콩나물 시루

 그래도 시간은 가고 있다. 에어컨 없이 잘 수 있고 얼음물을 안 먹고도 그냥 시원한 물로 하루를 버틸 수 있다. 8월 7일이 입추였다면 지금은 9월 19일이다. 3일 뒷면 추분이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 추분이 지나면 낮의 길이가 짧아진다. 낮의 길이가 점점 짧아지다가 밤의 길이가 가장 긴 동지가 된다. 고대인들은 이날을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로 생각하고 축제를 벌여 태양신에 대한 제사를 올렸다. 이날을 생명력과 부활의 날로 생각하고 중국 주나라에서는 동지를 설날로 삼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창 너머에서 간간이 시원한 바람 한 줄기가 불어와 살갗에 닿기도 하지만 자다가 땀을 흘리며 일어난다. 거실로 나와 맨바닥에 바로 누워 잠을 청한다. 선풍기 바람은 싫고 몸에 닿는 것들은 금방 따뜻해진다. 장판 밑이 바로 시멘트기 때문에 이전에는 어른들이 입 돌아간다고 돗자리라도 깔고 누우라고 하셨다. 시원한 감촉의 요를 깔아도 덥다. 허리 부분만 요에 닿게 하고 맨발과 다리는 바로 땅에 붙인 채 누워 멀리서 들리는 풀벌레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어제는 자음을 정확하게 들어오려고 귀를 기울였으나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보통 시나 동시에서 흉내 내는 말로 “츠츠츠”나 “찌르찌르”나 등이 있다. 아무리 들어도 다른 발음이다. ‘드드드’ 같기도 하고 ‘듸듸듸’ 같기도 하다.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도 멈춘 조용한 새벽에 풀벌레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한잠 들려고 하면 일찍 일어난 남편이 깨운다. “어이, 방에 들어가 자지.” 겨우 잠들었는데 또 깨운다. 더위가 깨우고 사람이 깨우고 출근하려고 단장을 마치고 나오니 딸이 “어머니, 얼굴이 왜 그리 푸석하십니까?” 한소리 한다. “어젯밤 또 못 주무셨군요.”

 여름철이면 이렇게 더위 때문에 새벽에 일어난다. 팔목에 땀이 송알송알 달고 일어난다. 찬 물통을 안고 자기도 하고 삼베 이불을 둘둘 말고 자기도 했다.

 오늘 새벽에도 잠을 못 이루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다 콩나물 시루가 떠올랐다. 시골집에 살 때가 태어난 1960년도부터 초등학교 3학년 2월 말까지다. 1971년도까지 산 셈이다. 한겨울이면 장작을 많이 넣어 방이 그야말로 슬슬 끓었다. 어린 그 때도 더위를 많이 탔는지 한밤중에 더워서 윗목에 놓인 콩나물 시루를 안고 잠들곤 했다. 그리고 혹시나 안 뜨거운 자리가 있나 몸부림을 쳤다. 이리 저리 옮겨다니니 함께 자던 어머니가 질색하셨다. 어떤 때는 장농밑으로 밀고 들어가 아침이면 온 가족이 질색하였다. 놀림감이 되곤 했다. 시골집은 안방과 작은 방 두 칸이었고 가운데 벽을 뚫어 호롱불을 놓았다. 밤중에 바느질도 못하고 책도 읽을 수 없었다. 어머니 아버지와 내가 같이 자고 큰 방에는 할머니와 동생과 고모가 함께 잤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사랑을 나누던 소리를 잠결에 들었던 적이 있다. 애기가 깰까 봐 나지막하게 어머니가 “아야, 아야”하고 소리를 냈다. 우리 아들 같았으면 우리 어머니 왜 아프게 하냐고 자는 아버지까지 깨웠을 텐데 나는 그 때 그 소리를 들으며 자장가 삼아 다시 잠들었던 것 같다. 너무 오래되어 기억이 정확하진 않다. 

 하지만 더워서 콩나물 시루를 안고 잠들던 기억은 분명하다. 물이 담겨있는 큰 장독 뚜껑 같은 독은 그나마 시원했기 때문이다. 결혼 후에는 삼베 이불을 감고 잤다. 시골 짐에서 직접 짠 삼베는 할머니 말씀처럼 모시보다 고왔다. 결혼하는 고모들과 나에게 홑이불을 만들어 주셨다. 나는 다행히 한 장의 홑이불을 받았는데 베틀은 사라졌지만 삼베는 가지고 계시다가 이불을 만들어 주셨다. 무더운 여름철이면 삼베 이불을 감고 잤다. 냉감이 요즘 냉감 이불과는 느낌이 달랐다. 아무리 오래 감고 있어도 온도가 그대로였다. 요즘 냉감 이불은 조금만 앉아있거나 감고 있으면 뜨뜻해진다. 자연소재인 삼베는 그렇지 않았다. 거의 40년을 사용하다 보니 한쪽이 헤졌다. 손빨래를 잘 해오다가 요 몇 년이 세탁기에 넣어 돌린 것이다. 대학원이다 출근이다 바쁜 일과 때문에 손빨래가 쉽지 않았다. 다시 수선하여 사용하기 위해 옷장에 두었고 올해는 꺼내지도 않았다. 자다가 혹시 떨어진 부분에 발이 들어가거나 당기면 더 안 되기 때문이다. 

  더위를 무척 타는 것은 몸이 불었기 때문이 아니라 어릴 적부터 체질이었다. 어릴 적 콩나물 시루같은 찬 물건을 안고 자면 좀 시원할까? 가을이 가기 전에 삼베 이불을 수선하여야겠다. 할머니가 직접 짠, 아니면 어머니가 짠 것일 수도 있다. 세상에서 돈 주고 살 없는 귀한 삼베 이불이다. 오래되었고 아직 유효하다. 나도 오래되었고 아직 유효하다. 맨 다리로 거실 바닥 중에서 제일 시원한 곳을 더듬으며 제일 시원한 시간을 즐긴다. 어린 시절 나는 어리고 어머니가 젊을 때. 그립다.      

출처 :https://store.kakao.com/srgoldtime2/products/331160565?ref=share

어린 시절 시골 집에사 사용하던 시루와 가장 닮은 시루여서 퍼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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